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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나샘 Apr 12. 2021

봄, 나의어린 추억을담다

조팝나무의 하얀 꽃이 필 무렵

봄의 시작을 알렸던 벚꽃이 지고  어느새 꽃이 진 자리엔 싱그러운 잎이 돋아났다.

꽃들이 경쟁하듯 앞다투어 피어나고 아리따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많은 꽃들 중에서 유독 눈길이 가는 꽃이 있다.

바로 "조팝나무"이다.


어린 시절 나는 논과 밭 산으로 둘러싸인 그야말로 지천이 나무와 풀로 뒤덮인 시골마을에서 자랐다.

4월이 되면  하얀 눈을 닮은 조팝나무의 꽃이 온 시골 동네를  덮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태껏 나는 이 꽃의 이름을 "싸리꽃"으로 알고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해마다 이 나무로 마당을 쓸 빗자루를 만드셨을 때 싸리빗자루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팝나무라는 사실을 몇 년 전 알았다.


어릴 적, 조팝나무의 추억이 한아름이다.


나의  국민학교 이름은 "두월 분교"라는 곳이었다.

학생수가 많지 않았기에 국민학교에서 분교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시골이라 아이들이  많이 적었다. 우리 반은 여자 4명, 남자아이 7명 총 11명이었다.

전체 학생수는 30명 내외였던 걸로 기억한다.


이 학교를 가려면  우리 동네에서 산 하나를 넘어야 했다. 시멘트가 전혀 깔리지 않은 자갈이 가득한 흙길을 1시간 정도 걸어야 하는 거리에 있었다. 어린 나이에는 그 거리가 너무 멀고 힘들었다. 뛰다가 많이도 넘어졌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돌이켜 보니 학교 가는 그 길목에서 나는 많은 추억상자를 만들 수 있었다.

산딸기 따먹기, 개울물에 발 담그기, 가재잡기, 다슬기 잡기 등등



봄소풍을 가는 날이다.

시골이라 봄소풍 장소는 언제나 산과 들이었다.

매일 보는 산과 들이라도 좋았다. 친구들과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엄마가 정성스레 싸주신 김밥과 간식을 싸들고 룰루랄라 신나게 봄소풍을 즐겼다.

온통 초록으로 물든 산과 들에서 보물찾기, 장기자랑을 하였다.

쑥스러움과 부끄러움이 많았던 나는 노래 부르기가 최고의 장기자랑이었다.

보물 찾기와 장기자랑이 끝나고 자유놀이시간이 되면 우리 반 여자 아이들 4명은 산에  흐드러지게 핀 조팝나무의 하얀 꽃을 손으로 쭉 훑어

서로의 머리 위에 뿌려주며 놀이를 했다.

여기저기 들꽃과 조팝나무 꽃을 모아 꽃다발을 선물해 주기도 하였다.


"야, 눈이 온다"

"00야, 나 좀 봐봐"

"너, 머리에 눈꽃으로 덮였어"

"00야, 이거 니 선물이야"

"깔깔깔, 호호호"


11살 4학년  어린 소녀들의  봄소풍은 해맑은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그때의 아련한 봄소풍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가슴 한편에 따뜻하게 남아있다가 조팝나무 꽃이 소담스럽게 필 때쯤이면

그때의 추억이 스멀스멀 올라와 마음의 온기를 채운다.



주말 딸아이와 가까운 공원으로 나들이를 갔다.

각양각색의 봄꽃들로 공원이 가득 물들어 있었다.

가슴이 뛰고 설레기 시작했다.

한아름 핀 조팝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딸아이와 어릴 적 추억을 되살릴 겸 떨어진 조팝나무의 꽃을 담아 눈 놀이를 하였다.


딸아이는 나보다 더 좋아하고 신나하였다.

아빠, 오빠의 , 엄마의 머리에도 뿌리며 놀이를 즐겼다.

그 옆에 눈처럼 떨어지는  벚꽃잎을  잡아보는 놀이도 하였다.

손으로 잡았다며 좋아하는 딸아이를 보니 나의 어릴 적 추억이 더 생생해졌다.


1학년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쭉 같은 반이라 단짝이었던  나의 친구들아, 잘 지내고 있니?

너희들과 함께한 추억이 너무 많아서 내가 서울로 이사오던 날 엄청 울었었지?

부모님께 나 서울로 안 간다며 떼를 부렸던 것이 생각난다.

서울로 전학 온 나는 1년 넘게 향수병에 헤어 나오지 못했었어.

많이 힘들었단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서울 아이가 되어가더라.



어느 곳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너희들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20대 중반까지는 연락을 하고 지냈었는데...

아이 낳고  이사하고 직장 생활하며 각자의 삶을 살다 보니 잊고 살았구나.


다들 나처럼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있겠지?

그립고 또 그립구나.

꿈 많고 순수하고 수줍음이 많았던 11살의 소녀시절 그때로 돌아가고 싶구나.


조팝나무가 흐드러지게 필 때쯤이면 난 늘 어김없이 그때로 돌아가게 되는 것 같아.

하얀 눈꽃처럼 맑고  투명했던 우리 그때의 봄.

잊지 않고 소중히 간직 하마.


자연스레 사진첩을 펼쳐 보이며

 어릴 적 해맑던 소녀들의 추억을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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