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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um Mar 22. 2021

디자인 마패로 독일 미술대학에 가다

카를수루헤야 안녕

2007년 한국에서 독일을 오기 위해 독일어 학원보다 더 중요한 미술 유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형편상 비싼 유학원을 다닐 형편이 안되었기에 다른 학원보다 비용이 저렴한 한 학원을 다니게 되었고 상담을 하고 바로 학원 생활을 하게 되었다. 원장은 한국의 유명한 미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의 미술 대학교를 다녔다는데 학교는 졸업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스킬이 탁월해 한국의 입시 미술 선생님으로 더 맞지 않나 했지만 나의 경제적 여건에 맞는 학원이라 고민 끝에 계속 다니기로 하였다. 왜 독일 미대 졸업을 하지 못했냐는 질문에는 돈이 없어서 그냥 한국에 왔다는 말만 믿고 거기에 다니면서 상황을 지켜보자고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독일의 미대 정보를 배우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독일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한 탓에 선생님만 믿고 디자인과를 공부한 것을 계속 살려서 대학을 가야 한다는 선생님의 조언대로 디자인  독일 대학에 맞는 마패를 선생님과 같이 만들기 시작하였다. 32살의 도전은 곧 기술적인 그림 스킬을 마스터하면서 기본적인 기초 그리기 과정을 밤을 새우며 연습을 하기 시작했고 너무 즐거운 탓에 그림 그리면서 살아가려는 꿈을 서서히 키우기 시작하였다. 드로잉이나 수채화, 아크릴, 유화 등 기본적인 과정은 금방 끝내고 얼마 남지 않은 나의 독일 가는 날에 맞춰서 마패 준비에 정신없는 날의 연속이었다. 3달을 남겨두고는 독일어 공부도 해야 했기에 시간을 더 아껴 쓰면서 내 마음은 이미 독일에 가 있었다.

나의 수능성적과 대학 졸업 증명서와 고등학교 졸업장 등의 서류 준비와 영어로의 번역과 공증과정은 생각보다 까다로워서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다니던 학원에서의 마패는 한국에서 독일에 보낸 방식이었고 한두 번의 불합격 소식은 신뢰가 없어지기 시작하고 독일에 가서 시작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선생님의 계획된 날짜에 독일에 몸을 실었다.

학원의 소개로 베를린의 공유 하우스인 WG에서 시작한 독일의 삶은 디자인 대학을 가야 했기에 대학에서 요구하는 B2를 따기 위해 독일어 학원을 바로 등록하고 독일어에만 몰두하면서 입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학원에서 가지고 온 마패를 믿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어에 더 집중하자고 하며 공부에만 집중하였던 것이다. 그러다 1년을 지낸 베를린에서 동생이 있는 카를수루헤로 가게 되었고 그 도시에서 어떤 한국인 미술 전공자를 만나게 되었고 나와 같이 대학을 준비하는 입시생이었다. 더군다나 부산 사람이라서 더 반가웠던 것이다. 우리는 매일 만나서 서로의 대학 갈 정보들을 공유하고 여러 가지 얘기 끝에 한국의 전공과는 달리 회화과에 원서를 넣을 수 있는 정보를 얻게 되었다.

너무 기뻐서 디자인의 세계에 오랫동안 있다가 딜레마에 빠진 나에게 단비와도 같은 소식에 열심히 준비해 마패를 미술 대학에 넣기로 하였다. 1년밖에 안 남은 입시 일정은 어학 비자가 끝나기 전에 합격을 해야지 한국에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에 엄청난 부담이 오지만 그래도 여러 학교에 마패 베라퉁(Beratung)을 다니며 다시 마패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한국에서 돈을 주고 배우고 가져온 마패는 보내는 학교에 거의 다 떨어지고 겨우 하나 붙은 대학은 정보가 너무 없는 그런 대학이라서 모든 디자인 마패가 아닌 회화에 맞는 마패로 방향을 틀었다.

여러 지인들의 한국에서 가지고 온 마패로 독일 입성기를 공유하기 시작했고 학원에서 내가 배운 마패 과정은 독일 유학 마패를 가르치는 자질에 전혀 검증도 안된 사람이 가르치는 학원이었다.

왜냐하면 카를수루헤에서 알게된 미술 대학을 다니는 한국인 여자분도 미술을 공부하고 싶어서 독일에 왔으나 비전공인 한국에서의 졸업장으로 마패 학원을 통해서 독일을 왔는데 자기가 원서를 넣은 모든 대학에 다 붙고 나서 고른 지역이 여기 카를수헤라고 하였다. 역시 유학미술학원으로 검증된 곳에서 제 돈을 주고 해야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이미 벌어진 일에 내가 배운 한국학원 선생님을 탓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시간과 돈을 허비하였던 것에 안타까워할 수는 없었다.


한국에서 미술을 전공한 사람들은 유학원을 거치지 않고 마패를 만드는 것을 파악하고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정보와 마패방향을 파악하는게 나을듯해서 나의 사정을 알리고 도움을 받기로 했다.

난 독일에 있는 친구들에게 배우기로 하였다.


독일에서의 또 다른 도전은 마패의 올 수정으로 내가 꿈꾸던 화가의 길로 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다시 에너지 정립에 나서고 한국의 학원 원장을 탓할 시간과 에너지가 아까워 일 년밖에 안 남은 나의 어학 비자 안에 합격통지를 위해 순수미술 공부를 위한 나의 길에 그 어떤 방해를 없게 하면서 또다시 나만의 감각으로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하였다.


베를린에 있을 때 나에게 잠시 들른 한국의 미술 유학원 원장은 독일에서 기적처럼 붙은 독일 미대를 다니다가 허세로 차를 구입해서 생활고에 시달려 한국에 갔다는 선생님이 때늦은 고백을 하였다. 호기심에 베를린에서 대마초까지 피워 선생님의 자질을 의심할 무렵 독일어가 안되니 잦은 연락이 와서 나를 통해 독일의 동태를 살피려는 그 분과의 연락을 그만두게 되었다.




학교마다 실기 시험과 마패와 서류 접수 일정이 다 다르기 때문에 학교들의 겨울 학기 원서 일정을 파악을 하고 새로운 마패를 위해 친구들에게 배운 마패들을 보고 파악하고 또 파악하였다.

독일의 음악이나 미술 디자인 분야인 예술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빠르면 12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학교마다 입시 일정이 한 달에 한 개 많으면 한 달에 2개나 3개가 겹쳐 있다. 같은 날짜인 경우는 없어서 대학에서 요구하는 마패를 준비해서 일정에 맞게 우편으로나 집접 가서 접수하면 되는 구조이다.

욕심을 내서 여러 곳을 할 수도 있지만 학교마다의 원하는 마패의 색깔이 다르기 때문에 합격을 위해서는 교수의 추천이 중요하기 때문에 학교의 교수들과의 일대일 인터뷰가 너무 중요하다. 교수들의 이메일은 각 학교 홈페이지에 가면 각 과의 공지란에 올려져 있고 교수들의 색깔을 파악해서 한 교수한테 배우고 싶다면 자기소개와 함께 마패를 사진을 찍어서 메일에 첨부해서 보내면 된다.

확인한 교수의 답장에 인터뷰가 이루어진다. 독일의 교수는 선 하나하나도 어떤 생각으로 무슨 미학적 관점으로 그림이 나왔는지를 간과하기 때문에 마패의 중요함을 언제나 강조하였다.

학교마다의 마패는 20장 안팎 정도이고 마패를 준비하는 과정은 3-5개월 정도로 한 장 한 장의 아이디어가 너무 중요하고 콘셉트가 중고 난방이 아니라 마패 전체적인 주제로 인한 다양한 시각과 관점으로 이루어진 이미지여야 함을 수많은 마패를 불합격당하고 알게 되었다. 난 불합격할 때마다 매워지는 자연스러운 그림의 방향을 발전시키고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그림의 여러 가지 나만의 색깔로 표현된 20장의 마패를 완성하였다.


1월부터 시작하는 함부르크 대학을 시작으로 원서를 넣을 수 있는데 베를린과 드레스덴이나 라이프치히 등 1월과 2월에 독일의 부부 지역의 일정이 있고 시간에 따라 점점 중부지역으로 내려오다가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카를수루헤는 4-5월 정도에 이루어진다. 만하임과 뒤셀도르프까지 몇 번의 불합격 소식은 나의 자존감과 희망을 내려놓게 하고 이대로 한국에 가야하나 하고 포기를 하고 한국행 비행기를 사야겠다고 마음먹은 날 집을 나서고 아래층 편지함에서 마지막으로 7월에 지원했던 Alanushochschule 미술 대학교인 학교에서 합격 통지가 오고서 안도감을 얻을 수 있었다. 관공서에서 허락해 준 어학비자를 학교의 Zulassung을 보여주고 학생 비자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휴.. 한국에서의 뒤늦은 직장인 만학도로서의 유학 도전과 기껏 돈과 시간을 들여 준비해온 마패는 다 떨어지고 전공을 바꾼 도전으로 스스로 만든 마패 도전기를 생각하면서 난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며 카를수루헤 거리를 거닐며 zentrum에서 동생과의 맛있는 외식을 하자고 늦게까지 학교에서 연습하는 동생을 불러서 작지만 따뜻하고 독일에서 가장 치안이 잘 된 도시라고 유명했던 카를수루헤를 느끼고 있었다. 여유로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쩜 저렇게 큰 5유로짜리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을까 나도 먹어봐야지 하고 먹고 싶은 아주 큰 아이스크림을 시키고 금세 없어진 아이스크림을 보고 이제껏 당 충전을 못했던 나에게 주는 선물이야 라며 맛있는 아이크림과의 달콤한 시간들로 카를수루헤를 기억에 담아보기로 하였다.


외국인에게 어학 비자 2년을 준다고 선택한 베를린 도시에서 카를수헤로 이사를 하고 여기서 귀한 사람들을 만나서 내가 원하는 그림 공부의 길을 열어준 그런 과정들은 필연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예전 동생이 돈을 잃어버린 사건으로 인해 내가 이사를 오게 된 상황에 대하여 감사해하며 난 삶을 대할 때 진심과 열정으로 대할 것을 약속하였다.


2010 Karlsruhe in Deutsch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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