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문화
2011년 대학을 다니면서 공유 하우스를 살았던 독일에서 익숙해야 하는 것은 나의 물건을 아무곳에나 내버려 두어도 사람들이 손을 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내가 어쩌다 버린 쓰레기 하나도 바닥에 며칠 동안도 그대로 두어서 깜짝 놀란적이 있었다. 2008년 2월에 난 독일에 공부를 하기 위해 갔다. 베를린에서의 일년동안의 공유하우스는 대학시절 4년을 더 경험하였다.
독일에 살면서 독일 사람들은 정직하고 가정적이다. 라는 말을 참 많이도 들었다. 내가 겪은 한국의 시간들은 정직이라는 단어보다 이기적인 사람들이 자신들의 안위만 채우는 그런 세상의 시간들의 기억속에서 있던지라 본의 아니게 난 사람들과 사는 공유하우스(WG)에서 나의 방문의 열쇠가 없음을 의아해했었고 혹여 내가 없는 사이 나의 물건들을 도둑을 맞지 않을까 긴장을 했던 시간들이 자주 있어서 한동안 집에 오면 확인하는 습관도 있었었다.
환경에 익숙한 상호관계의 습관들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라고 문화적 차이에 대한 적응해야 하는 시간을 나의 습관이 어서 빨리 맞물려 나가기를 고대하면서 살기로 했다. 무엇보다 내가 경험한 것들로 인해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편견이 되어 잣대가 되면 안 된다 여겨 나만의 혼란의 시기에 만난 생활이라 그들과의 생활들은 곧 나의 경계하는 마음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듯이 난 방문을 열어나도 걱정이 없어졌고 내가 밖에 나가 있어도 깜빡하고 물건 하나를 안 가져왔다고 같이 사는 친구들한테 내 방에서 가져와달라고 부탁하는 행동까지 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한국에서 가족들이 독일의 나의 집에 놀러 왔고 새해에 일주일 정도 모든 집이 자기들 부모님과의 시간들을 보내려 고향에 갔을 때 우리 가족들을 위해 1층과 2층의 빈방들을 모두 사용해도 좋다는 친절이 나로 하여금 독일 사람들의 따뜻함에 무장해제케 하였다. 공유 하우스에 대한 개념이 한국에 없었을 때 독일에서의 자연스러운 이런 문화는 문화적 차이에 대한 낯섦보다 친근하고 참 효율적이다 여겨 금방 익숙함으로 여유로움으로 안정을 찾았다. 하루는 겨울 장갑 한 짝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는데 두세 시간 후에 그 자리 근처에 다시 가서 찾아보니 찾아가라고 나뭇가지에 나의 잃어버린 장갑한 짝을 걸어놓았던 것을 보고 웃음이 나기도 하였다. 또 U-Bahn을 기다리면서 목도리를 자리에 두고 탔는데 잊어버린 목도리를 다시 찾으러 가야 되지만 내가 볼일이 더 급해 일을 보기로 하였다. 왜냐하면 그 자리에 가면 내 것이 그대로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는데 역시나 한나절 뒤에 갔어도 그 자리에 목도리가 있어서 찾았다.
물론 독일의 모든 곳이 이런 건 아니다. 북적거리고 사람들이 많은 도시는 도난 사건들도 많다고 하지만 내가 사는 동네는 노인들이 밀집해 살고 있는 그런 치안이 잘 되어 있는 그런 동네라서 그리고 노인들은 연금을 받으며 아주 여유로운 생활들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동네는 집들이며 거리들이 너무 깨끗하고 아기자기하였다.
난 여기서 나의 트라우마였던 늦은 밤 누군가 나의 뒤를 따라오는지 뒤를 돌아보는 습관도 없어졌다. 작업실에서 밤늦게까지 있다가 집에 가는 일이 너무 많아 처음엔 긴장을 하고 집에 가곤 했지만 어느 날부터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고나서부터는 바뀌게 된 것이다.
한국인 학교 친구들은 학교 근처에 사는 사람이 많이 없다. 놀 때도 없고 저녁 8시이면 모든 상점들이 닫혀 저녁의 거리가 삭막한 외진 시골 동네라서 학교 근처가 아닌 차를 타고 도시에 사는 친구들이 많았다. 독일은 한국과는 달리 해가 지면 밖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가 않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 중에는 지겨워서 독일 생활을 청산한 사람도 봤었다.
독일인들은 패션의 테러범들이 대부분이다.
말 그대로 사람들은 옷에 관심이 없어서 스타일이 좋지 않다. 청바지와 티 하나면 된다. 때와 장소에 맞추어야 하는 그런 옷들은 이들에겐 없다. 미술관이나 회사를 출근하는 사람들은 정장보다 청바지와 티를 입은 사람들이 많다. 저명한 교수님이든 지나가는 노숙자든 우리는 한눈에 그들의 옷차림으로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옆 나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디자이너들이 브랜드를 위해 올해의 유행 코드를 모델들과 함께 선보이면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는 들썩이고 지구 곳곳은 트렌드로 열광하다 독일에 도착하면 폭탄 맞은 양 푹 꺼진다. 그 정도로 세상의 의상 트렌드에 관심이 없다. 한국 유학생들은 처음에는 멋쟁이라고 사람들 사이에서 알려지지만 적응을 하고 나면 독일인과 비슷한 수준으로 변한다. 스타일리시한 수고를 그 어느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인데 그래서 가끔 한국을 가게 되면 공항 게이트에서 나오는 꾀죄죄한 사람들은 90% 이상은 독일 유학파라는 말도 있을 정도였다. 웃픈 현실이지만 사실이다.
나도 오랜만에 한국을 가서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제일 먼저 들은 건 스타일이었다. 기껏 편해서 입고 온 옷을 갔다 버리고 싶어서 가족들은 새 옷 사러 가자고 쇼핑을 하러 다녔고 머리를 하러 미용실을 가면 머리가 왜 이렇냐며 진지하게 물어보면 독일은 미용 기술이 너무 없다고 하면 변신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주신다. 예전 나의 겉모습을 치장하면서 신경을 썼던 내가 너무 초라해 보였는지 친구도 자기 옷이나 가방을 주곤 하였다.
독일에서는 작업할 때 앞머리도 방해가 되어서 그냥 질끈 고무줄로 올백으로 머리 묶고 생활하는 게 습관이 되었고 이 옷을 입을까 저 옷을 입을까 신경 안 써도 누구 하나 가십거리로 지적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 전날 입은 옷을 입어도 되고 커피가 튀어도 그런가 보다 넘어가는 것이 말 그대로 아무렇지 않은 그런 나라이다.
교수님이 타고 다니는 차는 전혀 으리으리하지 않다. 20년도 더 된 차에 에어컨이 없어서 돌려서 창문을 여는 차를 끌고 다니는 분도 봤다. 벤치에 앉아있으면 노숙자분들은 0.50€를 달라는 이유를 정확히 말하고 한 손에는 맥주를 들고 다닌다. 독일은 물보다 맥주값이 싸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의 직업에 맞춰 이런 구색을 해야 한다.라는 자체의 개념이 없다. 체면치레 자체가 없다.
그래서 난 독일의 이런 문화가 세상에서의 상처 받았던 나의 내면의 갈등의 깨어진 유리조각들이 더 이상 나를 아프게 하지 못하게 사라지게 만들었던 문화였다. 이들은 남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검소하고 정직하며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의견화하고 철학적으로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난 이런 문화를 사랑하게 되었다.
낡은 관습과 제도로 사람들의 영혼을 갉아먹는 문화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이유가 무엇인가에 답을 찾은 듯 이들의 정직함과 검소함이 너무 일상인 이들의 문화에 소속되어 있기 위함이라고 나를 젖어들게 하였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한국은 내가 알던 한국이 아니었다. 지하철에는 누가 잊어버린 물건을 하루가 지나도 그 자리에 있고 커피숍에서는 비싼 노트북을 놓고 잠시 자리를 비우고 다시 와도 그대로 물건이 있고 자신의 소지품들로 긴 줄을 대신하는 그런 문화로 바뀌어 있는 한국이 적응이 안되지만 바랬던 문화라 반갑기 그지없었다.
시대는 한국의 미투 운동으로 개념 있는 생각이 세상의 잣대가 되어 회사에서나 공공 기관에서의 터부시 되는 여성들의 인권의 목소리로 높여주었고 갑질로 을이 보이지 않는 고통을 언론이 꼬집어 주고 촛불시위로 국민의 목소리들을 모았다
추락할 것 같다며 한국이 싫다고 지구 반대편에 왔지만 나를 성장시키며 나의 낡은 생각과 습관이 무엇인지 관찰하며 독일에 착륙한 나의 발자국이 나의 생명이 되어줄 거라 믿으며 오늘도 시대를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