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나리 무침 특유의 향긋한 향을 사랑한다. 미나리 무침의 재료는 정말 별 것 없는데, 미나리와 맛소금, 참기름 약간이 전부다. 젓가락으로 한 움큼 집어 뽀얀 밥 위에 얹어 먹으면 입 안 가득 향이 퍼진다. 막 베어와서 싱싱한 미나리의 풀향은 씹을 때마다 고소한 쌀향과 어우러진다. 아주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이 맛과 향을 사랑한다. 우리의 첫 만남이 언제였나. 우리의 첫 만남을 떠올리면 정수리를 달구는 따가운 햇빛이 느껴지고 자글자글 코까지 와닿는 민물냄새가 난다.
여름이 다가올 즈음이면 안동시 금계리의 하천에선 물냄새와 풀냄새가 뒤섞였다. 여름보단 봄에 가까운 계절에 졸졸 흐르는 냇가 옆으로 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미나리는 무수한 풀 중 하나였다. 마을에 사는 누구도 미나리를 재배하려고 따로 시간을 내진 않았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 미나리가 났던 자리에 또 미나리가 나고, 마을 사람들은 슥슥 베어갈 따름이었달까.
아 반찬으로 뭐 먹지
그런 생각이 들면 냇가까지 걸어간다. 그날 딱 먹을 만큼만 베어 집으로 가져온다. 어차피 나물무침은 금세 쉬어버린다. 많이 가져가봐야 말짱 도루묵이다. 처리만 어렵지. 마을 사람들은 도시로 가족들을 떠나보내고 둘셋이 모여사는 것이 전부였다. 한 지붕에 두엇남짓 되는 사람들이 먹으면 또 얼마나 먹겠나. 먹을 양 이상을 가져가지 않으니 냇가의 미나리가 동날 일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쑥덕쑥덕 썰어오면 되는 미나리를 ‘사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런데 도시의 마트에선 미나리를 한 단 묶어 팔고 있었다. 당시의 충격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물론 시골이라고 모든 걸 자급자족하는 건 아니다. 당연히 마트 식자재가 훨씬 큼직하고 먹음직스럽고 벌레가 먹던 티도 안 난다! 나도 마트 농산물, 좋아했다!
그런데 미나리는 아무리 눈을 비비고 새로 봐도, 그냥 냇가에 난 것과 똑같이 생겼다. 아니 이건 사람들이 단체로 사기를 당하는 게 아닌가. 미나리를 돈 주고 사 먹다니. 충격적인 사실은, 지금 내가 미나리를 돈 주고 사 먹는단 것이다. 도시엔 정말 하천도 얼마 없고 이것저것 자라게 두지도 않았다. 게다가 물비린내는 차원이 달랐다. 조금은 고소하게도 느껴지는 시골의 물비린내와 달리, 마치 머리카락과 먼지가 한데 어우러져 내려가지 않아 생긴 악취 같은 물비린내란. 여기서 나는 것은 먹을 수 없겠다 싶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왜 다 같이 시냇가를 아껴주지 않는 걸까. 서로 조금만 더 아껴주면 냇가가 엄청난 선물을 줄텐데. 아쉬움이 가득했다. 더운 여름엔 물속에 머리를 집어넣고, 야트막한 물줄기를 따라 양손으로 바닥을 짚고 기어 다니기도 하면 얼마나 시원한데! 그걸 모르다니. 안타까웠다. 그 강이 얼면 썰매도 탈 수 있고 쾅쾅 얼음을 깨서 낚시하는 즐거움도 있는데 말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작은 공간에서, 너무 많이 쓴다. 필요 이상으로 쓰고 버린다. 그게 모여 강과 산과 바다를 아프게 하고 있는데도 멈추지 않는다. 먹을 수 있는 미나리는 고사하고, 민물에서 나는 모든 것들을 믿고 먹을 수 없게 되어버린 요즘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얼마나 곪았길래 강은 더 이상 누군가를 먹여 살리지 못하게 된 것일까. 그리고 멈추지 않는 세상 속에서 얼마나 더 골병이 들까 걱정이 앞선다. 나의 미나리 이야기가 추억 속 한 조각이 되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