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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ilhee Jul 01. 2024

보이는 일기장

일기의 사전적 의미는 날마다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적는 개인의 기록.


의미에 충실하게, 약간은 불성실하게 매일 기록을 남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유치원에서 그림 일기를 발표하던 기억이 있다. 스케치북의 한 페이지에 그림 그리는 칸과 글 쓰는 네모칸이 같이 있는 모양새 말고, 한 페이지는 그림만 다른 페이지에는 글만 쓸 수 있도록 한 일기장을 좋아했다. 쓰고 싶은 말이 많았기도 하고, 많이 써 가면 칭찬을 받을 것 같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다른 기억에는 우리 집에 놀러왔던 친구가 미워서, 친구가 돌아간 다음에 책상 밑에 들어가 노트 맨 뒷장에 ㅇㅇㅇ랑 ㅁㅁㅁ 미워! 라고 적었던 것이 있다. 차마 친구한테 대놓고 말은 못하겠고 분은 풀리지 않아서 예쁘게 적지도 않고 박박 적었던, 인생 최초의 유사 데스노트였을 것이다.


학교에 들어간 후 친한 친구들끼리는 작은 자물쇠가 달렸거나 비밀번호로 열어야 하는 교환일기를 쓰기도 했다. 우리 중에 한 명이라도 배신하면 더 이상 비밀이 아닌게 될 테고, 혹시라도 누군가 이 일기장을 탐낼 수도 있기에 속마음을 무장 해제할 수 있는 안전한 수단은 아니었다. 


아마 그 시절의 교환일기는 일기라기보단 너와 내가 친하다는 증거이자 편지에 가까웠을 것이다. 


더이상 학교 숙제로 일기장을 제출하지 않아도 되었을 즈음 나의 기록은 소홀해졌고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견뎌냈던 재수생 때 다시 시작됐다. 학원에서 나눠준 플래너 작은 칸에 오늘의 반성과 내일의 다짐을 적어가며 사건은 쓰지 않고 감정만 남겨뒀던 1년의 기록.


그렇게 한동안 아무도 보지 않는 일기장에서조차 솔직하게 모든 것을 드러내지 못했다. 

내가 사라졌을 때 누군가 이 기록을 보면 어떡하지? 내가 사라진 이유를 잘못 판단하면 어떡하지? 하는 이상한 걱정은 물론 나중에 내가 봤을 때 그 사건을 기억하지 못했으면 좋겠어서 슬프다, 힘들다, 재미있었다, 하는 감정만 남겨두고 사건은 휘발되어 버린 몇 년간의 기록을 뒤로 하고. 


그러시면 안되는 거였어요, 하고 말하지 못했던 그 날의 모든 사건과 감정을 종이 위에 쏟아내 보았던 날. 

꼭 상대방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모두 한 것 같은 기분에 속이 풀렸던 그 시간 이후로. 

조금은 더 과감하게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글은 나를 위로한다.


보이지 않는 일기와 보이는 일기를 번갈아 쓰며 남긴 기록은 기억이 된다. 그 기억은 또 자산이 된다.

자물쇠 없는 교환일기장에 일기를 쓰는 마음으로 누구나 볼 수 있는 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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