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언제 성장할까?
어떠한 기회로 또는 자연스럽게 삶을 살아가면서 인간은 성장한다고 한다.
이 성장은 몸의 성장일수도, 마음의 성장일수도, 역량의 성장일수도 있다. 어쨌든 나아간다는 것.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고 이 세계는 참 맑고, 그렇기에 더 단단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무언가를 대신 해줘야하는 대상이 아니라, 할 수 있게 해줘야하는 대상이라는 것도.
<노을 건너기>의 공효는 훈련의 일환으로 어린시절의 본인을 만나러 간다.
우주에 나가면 멀미가 나고 잡생각이 많아지는데, 그 때 본인을 괴롭히는 건 외로운 본인 자신이라는 훈련의 설정이 재미있었다. 훈련을 마친 뒤 공효는 어린 공효를 안아주고 돌아온다. 언제든 불러도 된다고 하면서, 나는 너를 좋아한다고 하면서.
두고 왔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 안엔 내면의 아이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수록 어렸을 때의 모습이 나오는 게 그래서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봤다.
내 기억 속 나는 애어른이란 말을 많이 듣고 또래보다 키도 크고 말도 잘 듣는 애였는데,
그럼 나중에 나이 들어서도 그런 애가 될까 궁금하다.
<조금 더 사랑하는 쪽으로>는 안미옥 시인과 자녀인 나무의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다.
나무의 말을 읽다보면 어떨 땐 직관적이고 또 철학적인 아이의 말이 나보다 나은 것 같다.
그리고 그 말이 맞다.
곰곰 생각해봤을 때 내 마음 끝은 결국 아이일 때의 마음과 다르지 않아서.
공효가 어린 공효를 두고 왔고 그 공효는 외로울 때 어른 공효를 부를 것이다.
그런 것처럼 우리 마음 속에도 스스로와 화해했거나 또는 그렇지 않은 어린 우리들이 있을 것이다.
가끔 희한한 포인트에서 삐져나오기도 하는 어린 나는 여러 모습을 하고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다양한 시간대의 나를 만나고 이해하는 게 성장의 과정인가보다.
어린 시절의 내가 부르더라도, 걔가 날 붙잡고 있는 게 아니라 걜 달래주고 다시 나아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