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편안해지는 초록을 좋아한다.
습도가 높아 쉽게 불쾌해지는 여름을 싫어했다.
그래서 여름 초록은 좀 다르다는 것을 잘 몰랐나보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기 전 이미 본격적으로 더웠던 태국에 다녀왔다. 셀프로 여름을 한 달 늘린 셈이다.
생기 있는 여름, 이라는 표현에 공감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에게 여름이란 '축 늘어짐'에 가까웠는데
무성한 초록과 처음 보는 원색의 꽃은 여름을 다시보게 해줬다.
그리고 또, 한여름에 교토에 다녀왔다.
일본의 습도는 이미 경험해보았지만 기억 속 초록을 다시 보고 싶었다.
길을 잃은 줄도 모르고 너무 좋다고 사진을 잔뜩 찍었던 아라시야마 그 초록이 떠올라서, 아기자기한 문구에 꽂힌 김에 3박 4일을 온전히 교토에서만 보냈다. 혼자 갔는데 아침 8시부터 움직였는데 시간이 모자랐다.
아무래도 가장 좋았던 곳은 조용했던 호센인
교토에서 17번버스를 타고 종점 오하라까지 가면 조용한 시골마을이 나온다.
교토역에서 타야 앉을 자리가 있다고 했지만 그냥 가와라마치 앞에서 타도 한 명 앉을 자리는 있었다.
1시간 20분쯤 가서 내린 후 구글맵대로 따라가다보면 길을 잃기 쉽다. 갑자기 가정집 같은 곳이 나와서..
우편 배달하시던 분이 지나가다 알려주셔서 감사히 길을 따라갈 수 있었다.
좀더 고요했다면 더 일어나기 어려웠을 료안지. 정원이 참 예뻤다.
습한 날씨엔 오락가락하는 비가 한 몫했는데, 물기 가득한 초록은 생명력을 전달해주기 최적이었다.
땅에 뿌리내려 살고 있는 식물들에게 날씨란 어떤 의미일까.
궂은 날씨를 피해 몸을 옮길 수도 없지만 계속해서 살아가는 식물들에게.
심지어 내리쬐는 햇빛과 불어오는 바람과 내리는 눈비를 양분 삼아야하는 식물들에게 날씨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에 해당하겠지
양분이면서 한편으로는 시련이기도 할 날씨를 감내하면서 또 더 단단한 잎과 줄기를 만들어내면서
한 계절을 지나고 일년을 지나고 또 더 큰 나무가 되겠지
언제부터 초록이 좋았을까.
왜 문구가 좋을까.
지금 좋아하고 있는데 계기와 이유가 중요하겠냐마는.
언제 봐도 미간에 힘을 풀고 웃게 되는 초록이지만 여름 초록은 조금 더 쨍하다.
돌아오는 주기가 점점 더 짧아지는 것 같아 걱정이지만 그래도 반년 정도는 겪지 못할 계절이니
실컷 여름의 초록을 만끽하기로 하면서.
다음엔 어느 초록을 수집하러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