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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로: 바쁘게 살아간다는 행복

퇴근 후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는 기분이란

by Johnstory

매번 월요일은, 대게 쉽지 않다.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할 때 보통 회의라는 것을 하는데 이 회의가 생산적이기는 참 어려워. 돌이켜보면 아빠가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16년 전에도 팀장님이란 분을 쫓아 들어가 입도 뻥긋 못하고 자리에 앉아 열심히 메모하는 척 고개도 들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어.


이런 회의를 대체 왜 하는 것인지 당시에는 궁금해할 겨를도 없었어. 아마 너희들이 직장생활을 한다면, 그때는 아빠의 ‘라테’와는 사뭇 다를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너희 시대의 이와 유사한 조직문화가 존재할 수 있으니 나름의 답답함도 있을 수 있겠다.


모든 회의가 그런 것은 아닌데, 생산적인 시간이 되기 위해서는 회의를 주관하는 사람과 참석하는 이들 모두 어느 정도의 준비가 필요해. 아빠 회사는 매주 일요일 저녁 한주를 마감하는 각 부서들의 문서가 공유되고 있어. 대게 아빠는 중요한 내용들 위주로 파악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 대해 미리 생각하곤 하는데, 어떤 경우에는 예정된 아젠다가 아닌 다른 이슈들을 다루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특정 사유로 취소되기도 해.


뭐 이유야 어쨌건 주간의 결과와 주요 현안을 파악하는 것은 내가 일을 주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해. 적어도 너희들만의 관점을 갖고 일을 대했으면 좋겠어. 이 얘기가 조직의 규칙을 무시하라는 얘기는 아니야. 내가 일을 잘 파악하면 할수록 나만의 의견이 뚜렷해질 거야. 그럴 때 그런 얘기들을 너만의 논리로 잘 표현했으면 좋겠어. 지금 너희들의 눈높이로 엄마 아빠에게 생각을 얘기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러려면 나부터 집에서 너희들의 생각을 잘 들어줘야 할 텐데, 늘 이건 반성하게 되는 점이네. 이런 아빠의 안 좋은 습관이 고쳐질 수 있을까? 언제쯤 가장의 의무를 핑계로 집에서도 너희들의 상사인 양 행동하는 것을 개선하게 될까. 너희들은 내 생각보다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자라고 있는데 말이지.


그런 미안한 마음을 녹여보고자 아이스크림 몇 개를 집어 계산대 위에 올려놓는다. 그 순간 너희들이 좋아할 그 모습에 오늘 있었던 모든 일들이 먼저 눈 녹듯 사라지는 경험을 했어. 신기하지? 언제쯤 너희들은 부모가 될까. 아니, 너희들이 결혼은 하게 될까.


도무지 감도 오지 않을 먼 미래의 이야기라 서글픔 대신 생소함이 앞선다. 이렇게 바쁘게 살아가는 모든 날들을 되도록 촘촘하게 기록하고 어느 날 너희들에게 한 권의 책으로 선물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어떤 기분 좋은 일들보다 세상 뿌듯한 일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어. 적어도 너희들에겐, 어느 땐가 아빠의 기록이 묵직한 의미로 다가갈 수 있을 테니 말이야.


우리 그때까지 조금은 철없는 모습으로 지금처럼 함께하자. 너희들이 부여해 준 부모라는 이름이, 아빠라는 직업이 내게는 분주하지만 가장 큰 행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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