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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에 대하여

by Johnstory

내 기억에 남아있는 어린 시절은, 아마도 국민학교 2학년 때부터일 것 같다.



당시 학교까지 거리가 꽤 있었기에 아파트 단지 앞에 스쿨버스가 왔었고 창 밖으로 손 흔드는 나의 엄마와 헤어지는 것이 싫어 훌쩍대며 울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크면서 전혀 다른 성향의 사춘기를 보내긴 했지만 당시엔 그랬어. 집을 떠나는 것이 그렇게 유쾌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공간에 대한 것도 있겠지만, 그곳은 늘 나를 지켜주는 부모가 함께하던 곳이었으니 이 공간을 벗어나는 것은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이 펼쳐질 환경으로 나를 던지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싶어.

그런데 지금도 그렇지. 여전히 난 집에서 업무를 보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선호한다.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고 많은 야외활동을 하길 원하는 너희의 엄마와는 전혀 다른 성향이지. 10여 년 정도 살면서 엄마와 싸운 기억이 거의 없는데 한두 번이 이런 성향의 충돌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만큼 나로서는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싶은 심리적, 물리적 공간의 확보가 주는 의미가 매우 크다고 생각해. 너희 둘은 어떤 성향의 어른이 될까 많이 궁금해지는구나.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환경에 대한 이질감, 낯선 기분은 시간이 지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회사를 오래 다니고 다른 곳으로 옮길 때의 기분도 아마 오늘의 너희들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어. 이전보다는 더 나았으면 좋겠다는 희망과 설렘, 또 한편으론 조직생활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 새로운 누군가를 만난다는 사실에 대한 기대감과 두려움 등 이런 모든 감정들이 오늘의 너희들과 함께할 것이라 생각한다. 집에 빨리 가서 엄마 아빠를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 수 있겠고.


창 너머로 보이는 3월 초 첫새벽의 공기가 느껴질 정도의 한기가 어느 순간 너희들 삶에도 파고들 테지만, 이내 밝아오는 새로운 아침으로 위안이 되고 또 살아 낼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 그런 너희들을 옆에서 지켜보고 싶다는 마음을 '건강하게 오래 살기'라는 투박한 표현으로 일기장에 적어본다.

오늘의 입학식을 앞둔 막내는, 한동안 엄마 아빠의 그늘이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다. 개별적으로 많은 보살핌을 받던 어린이집 시절과는 사뭇 다른 환경의 선생님들을 마주하게 될 테니 말이야. 그래서 초등학교는 매번 1학년 신입생들에게 안정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제공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턱없이 짧은 그 시간에 너와 우리는 이 생활의 흐름을 잘 가꿔갈 준비를 매일같이 해나갈 것이라고 생각해. 모든 것이 처음일 네가 이 과정을 가능한 힘껏 살아내주길 바란다. 내가 외면하고 싶었던 실체 없는 두려움들이 너를 비껴갈 리 만무하겠지만, 너의 반응은 온전히 네 선택에 맡겨져 있으니 나보다는 현명하길 기대해 본다.



오늘이 너희 둘 삶에 부여할 의미는 너무나도 다양할 텐데, 어떤 끝은 시작과 맞닿아있고 그 새로움은 마냥 행복할 수는 없을 것이며 그 또한 언젠가 끝이 있을 것이란 사실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 끝에 다다르기 전에 지금보다는 여물어있을 3학년과 1학년, 아직은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미숙한 삶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응원할게. 그리고 지금의 시작이, 너희들만의 이야기들을 써 내려갈 아주 좋은 시기라는 사실을 곧 알게 될 텐데 혹시라도 그 끝맺음이 네가 원하던 모습이 아니라 해도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생이 책 보다 재미있는 이유는, 많은 경우 그 끝을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이고 그 주인공이 '나'라서 일 텐데 이왕이면 각자의 이야기에 푹 빠져드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욱, 살아볼 만한 이 생에서의 학창 시절은 분명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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