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의 초등학교 입학과, 첫째의 3학년 개학을 앞두고
아빠는 가끔씩 너희들과 엄마가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이 사실에 대한 해명을 하기 위해 여러 번 글을 썼다 지웠다 반복했지만, 이 이상 더 간단하고 분명한 표현을 하기가 어렵더라. 말 그대로 모든 것이 닿지 않는 곳에서 나를 찾고, 나만을 생각하고, 나의 내일에 대해 속박 없는 환경에서 순수한 바람을 알아내고 싶었다. 여전히 그러하고.
부모 된 책임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러나오는 마음까지 포괄하는 것이라면, 난 부모의 자격에 한참은 미달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너희들 옆에서 주말 동안 두 권의 책을 읽었어. <<내 인생 5년 후>>와 <<결국해 내는 사람들의 원칙>>이란 책인데, 느슨해진 아빠의 삶에 좋은 자극제가 되었다고 생각해. 책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하게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으니 그건 패스. 대게 이런 류의 자기 계발 서적을 읽다 보면 공감이 되면서도 가슴이 답답해지곤 한다. 그래도 이번 주말은 정신없었던 1-2월을 정리하는 주간으로 의미 있게 보냈어.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에 소개된 100여 곡의 클래식을 들으며 책도 읽고 너희들의 공부도 봐주고(사실 공부 안 하는 너희들에게 짜증을 냈다는 게 더 맞는 얘기겠다) 여러 가지 생각들을 노트에 정리했다.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과 맛있는 반찬에 행복함을 느끼고, 엄마가 좋아하는 아이스라테와 휘낭시에를 사러 가는 주말이 주는 평온함에 감사합니다 를 되뇌는 아빠는 요즘, 이다음 단계에 대한 생각을 적극적으로 많이 하고 있어.
그런 복잡함으로 '일시적 혼자됨'을 추구하며 삶의 우선순위를 냉정하게 되짚어보고 싶었다. 사실 이건 앞으로도 큰 변화가 없을 것 같으니 5년 정도 후, 우리의 달라진 일상을 대할 때 그리고 너희들이 나의 생각을 이해하고 너희들만의 길이 조금씩 분명해질 때 같이 얘기를 나눠봐도 좋을 성싶다.
아빠는, 내가 꿈처럼 바라던 삶이,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어. 평범함에서 어긋난 모든 것은 일탈로 간주되던 시기에 튀는 행동과 독특함으로 채워진 나의 모습을 아마 너희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감당하기 어려웠을 거야. 부모의 생각과 의도와 강제된 사고의 주입을 통해 '나만의 생각'을 하는 방법론에 대한 것은 아주 어린 시절의 교육에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었다.
그랬음에도 지금의 난, 정말이지 어쩌면 그런 너희들의 조부모의 넘치는 사랑과 관심 덕에 우리 네 가족을 책임질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여력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했어. 물론 그간의 감사함을 외면하고 싶다거나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전혀 아니니 오해 없길 바라.
다만 너희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것은, 앞으로의 삶에 정해진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닌데 매 순간 그런 모습을 강요하게 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거라는 사실이다. 나 또한 그러했지만 부모가 기대하는 완벽한 모습으로 난 자라지 못했고, 나의 생각과 부모의 생각의 차이가 커질수록 나의 어긋남은 점점 세력을 확장했다. 그때 난 좀 더 분명히 나의 생각을 당시 수준의 지식과 논리와 근거로 이성적인 대화를 시도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아마 나 역시도 그런 시기를 부모의 입장에서 너희 둘과 마주할 수도 있겠지. 정말이지, 피하고 싶은 순간이다. 너희는 그저 너희들의 삶을 살아야 할 텐데, 그러려면 내가 알려주어야 하는 것은 우리 집의 가훈에 따르는 삶일 것이다. '읽고 쓰고 생각하고 질문하라'
https://brunch.co.kr/@johnstory/98
너희들 스스로 생각하고 정리하고 글을 쓰고 또 새로운 것을 읽으며 유익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한다면 외형적인 기품을 갖추는 것 이상으로 삶의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아빠는 확신하고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너희 엄마와 나는 많은 의견 대립이 있을 수도 있겠지. 그럼에도 지금처럼 많은 책들을 읽고 너희들만의 세계를 키워간다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너희 둘을 엄마와 아빤 변함없이 응원할 수 있을 것 같다.
마흔 중반이 된 아빠는 여전히, 지금도, 앞으로도 내가 살아내고 싶은 삶을 꿈꿔갈 거야.
그러려면 부단히 독서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꾸준히 써내려 가야 해. 그리고 어느 순간 아빠가 바라는 삶들로만 채워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 때 독립이란 걸 해보려 한다. 그럼에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몇 번의 선택과 결정과 수많은 실패들로 인해 적절한 때를 기다릴 거니까. 그리고 그때까지 난 최선을 다할 거야. 그러니 너희들도 내일 시작하는 새로운 환경과 학교, 친구들과 누리는 하루하루를 감사하게 생각하며 의미 있는 너희들의 세계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어느 누구에게도 속박되지 않은 자유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 잘 해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에 충실해야 함은 변함없는 진리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