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교육이 삶에 도움이 되는가
여전히 넌 공부보다 공을 차는 것을 좋아한다.
너희 엄마는 책을 더 보게 하고, 더 많이 뛰어놀 수 있게 하려는 나의 생각과 방향에 걱정이 많다.
그런 방식의 교육으로 잘된 경우는, 애초에 유별난 지능과 학습능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며 모두가 ‘선별된 떡잎’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전혀 동의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출생의 환경과 지원가능한 교육의 범위가 단기적인 학습결과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니까.
그런데 이런 상황을 상정함은, 결국 제도권의 교육에서 성과를 내고 좋은 학교, 유망한 학과에 진학하는 것이 초중고 교육의 유일성을 지니는 빛나는 결과물로 여긴다는 것인데 아빠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이 문제에 대해 한동안 네 엄마와 난 합의점을 찾기 위해 대화해야 하고 반드시 그럴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꽤나 피곤한 상황들이 지속될 테니.
여전히 엄마는 교육과 관련된 얘기를 할 때, 아빠의 상황을 빗대어 말한다. 부족함 없는 환경에서 자라 늘 좋은 교육, 그러니까 부모에게서 지원받을 수 있는 모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그 덕에 안정적인 금융권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으며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라고. 이 모든 것이, 모두가 거쳐야 하는 이 지독한 경쟁에서 살아남게 도와준 그놈의 교육 덕분이라고 말이다.
그렇기에 내가 받았던 교육이, 너희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이전되어 또래에 비해 높은 연봉을 받는 직업과 지위를 갖게 되길 너희 엄마는 간절히 소망하고 또 소망한다.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이 세상 어떤 부모가 이런 결말을 마다하겠는가.
그런데 너무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렇게 당장의 현실만 바라보게 되면, 스스로 ‘나’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도 오늘을 사는 것에 만족하여 깊은 고민과 거리를 두게 되는 습관으로 굳어질 수도 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지난 시간들을 돌아봤을 때 나는 누구이며 소명은 무엇이고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은 고민과 지난 시간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든다. 이미 늦어버렸다는 자괴감에 후회가 뒤따른다. 물론 그때라 하더라도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 결코 늦은 때가 아닐 수 있겠지만, 예전 같은 체력과 뇌의 기능은 그저 그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아빠는 지금 너희들이 더 많은 책을 읽고 생각하며, 자연스러운 생각들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들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집의 가훈을 ‘읽고 쓰고 생각하며 질문하라’라고 아빠가 정한 데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또한 어떤 일이든 내가 잘 마무리해 내기 위해서는 건강한 체력이 필수적이고 평소에 조금씩 이런 시간들을 쌓아두지 않으면, 쉽지 않은 상황을 맞이할 것이기에 지금 아빠는 밖에서 너희들과 공을 차는 시간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라 여기고 있다.
앞으로도 무엇이 옳은 교육의 방향이고 방법인지에 대한 다양한 논의는 끝없이 이어질 것이라고 본다. 가장 마음 아픈 것은, 정권이 변함에 따라 제도가 바뀌기도 하며 학교의 교육은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중심이 바로 서지 않은 교육의 목적은, 학생들을 도구화하는 데에 일조할 것이고 천편일률적인 사고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는 똑똑한 바보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래서 난, 너희들에게 이런 교육이 옳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설령 그 방향에 대해 이견을 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 엄마의 결정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묵묵히 응원할 것이다. 어떻게든 너희들만의 길을 찾고, 그 길 위에 놓인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해 가고 또 무너지면서 의미 있는 ‘삶의 교육’을 체험해 가길 말이다.
여전히 어떤 학원이 이름나있고 용한 곳인지를 고민하는 너희 엄마에게 ‘결국 공부는 학생이 하는 것’이라 난 말한다. 이어 ’ 좋은 것을 많이 줄 수 있는 곳에서 성공의 확률이 높은 것‘이라는 내 아내의 답을 듣게 되고 우리는 오늘도 쉽게 풀리지 않는 고민들을 이어간다.
제도권 내에 완벽하게 스며들지 않아도 삶이 무너지지 않음을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 부단히 읽고 쓰고 생각하고 질문하면서 교육의 객체가 아닌, 떳떳한 주체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온전히 그러지 못했으나 너희들만은 대세에 순종하기만 하는 아이들이 아니길 소망한다. 가장으로서 해야 할 모든 책무를 다하겠으나, 이 나라 교육 시스템의 노예가 되지 않길, 간절히 진심으로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