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오는 길에 너희 엄마의 카톡
“오늘 커피 한잔도 못 마셨어ㅠ”
아이스라테를 좋아하는 너희 엄마가 커피 한잔 못 마셨다는 의미는, 오늘 하루 많이 힘들었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내 아내를 위한 커피셔틀은 한 여름에도, 한 겨울에도 내게는 중요한 일과 중 하나인데 늘 커피를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그 길에서의 내 마음은 풍요롭다. 그게 뭐가 되었든 받는 사람의 행복한 미소가 내 눈앞에는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 난 내 아내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한다. 결혼 10년 차의 사랑이 의리가 되어감도 느끼긴 하지만, 신혼 당시 너희 엄마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실루엣도 나에겐 여전히 사랑스럽다.
매 순간 아내가 원하는 것을 다 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래서 더 미안하다.
나는 일에 빠져 있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중요한 시기에 많은 것들을 놓치기도 했다. (이 얘기하면 너희 엄마는 또 서러워하겠지만, 둘 다 아주 어렸을 때 한 번씩 응급실에 간 경험이 있었는데 두 번 모두 난 일 때문에 동행할 수 없었다. 다행히 당시 가까운 곳에 할머니가 계셨기에 너희들과 함께해 주셨다.) 종종 이런 얘길 할 때면 사실 난 할 말이 없다. 어쩌면 너희 엄마는, 아이스라테의 낭만 대신 아빠로서의 자리를 지켜주길 원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낭만이 가득한 결혼 생활을 선물해주지 못했음을 알고 있다.
둘 다 은행원이던 시절, 103일간의 짧은 연애 끝에 결혼을 하게 되었고 이후 지금까지 큰 다툼 없이 너희 둘을 건강하게 낳아 잘 키우고 있다. 그래도 연애 시절엔 나름 이것저것 챙겼던 것 같다. 프리지아를 좋아하던 너희 엄마에게 꽃을 선물하거나, 편지를 쓴다거나 하는.
엄마와 난 그렇게 서로에 대한 서운함과 아쉬움을 남겨두고 조금씩 늙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다시 낭만에 대해 그리워하는 시절에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고. 우리의 지금과, 함께하는 누군가에 대한 애정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붙잡아두고자 하는 마음으로 발전되고, 이내 기억에 남기고 싶은 추억이 되기도 한다. 살아가며 이런 순간들이 매일 반복된다면 어디서든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선 삶의 여유도 필요하고 타인에 대한 이해와 인정과 용서 또한 중요하다. 때로는 모든 것을 소유하려는 욕심보다 가장 가치 있는 존재와의 기억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낭만을 가진 이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인위적인 것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남이 가득 담긴 그런 낭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