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종교적으로 조예가 깊거나 심취해 있던 사람은 아니다.
너희 엄마와 결혼할 때 혼배성사를 보고, 이후로 너희 둘을 낳고 코로나가 터졌기에 성당에서 미사를 보는 것은 나에게 소원한 일이 되기 쉬운 환경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부모님과 식사를 할 때면 제법 어색하지 않게 식전기도를 할 수 있고, 제사 때에도 너희 할아버지가 주도하시는 주기도문을 곧잘 외곤 한다.
초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의 권유로 성당에 처음 가게 되었고 5학년 9월 되던 무렵 첫 영성체를 받았다. 당시 함께 어울리던 또 다른 친구는 이제 말 놓기도 어려운 신부님이 되었고 병원사목위원회에서 소명을 다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난 냉담 중이나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의심을 품은 적은 없다. 때론 고통이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은 순간도 있었지만, 결국 난 내가 원하는 곳, 원하는 위치에 서있을 수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나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많은 경우, 운이 좋다는 생각이 아니면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도 있었고 누가 봐도 끝이라고 생각된 지점이 행운의 시작이었던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했던 생각은:
신과 함께 있다
나의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현상이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으려면 ‘시간의 흐름’이 시작과 끝 사이에 반드시 존재해야 하고, 그 과정이 잔인하리만큼 혹독함으로 점철되는 일반적 현상이어야 할 것인데, 원인과 결과 사이의 시간차가 매우 적어 인위적인 노력 자체가 끼어들기 어려운 찰나일 때도 있다.
그렇기에 내가 간절히 원하던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 운이 좋다는 생각과 더불어 ‘신과 함께 있다’는 강한 느낌을 받게 된다. 너희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감정이 꼭 영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막연한 생각이라 해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힘의 존재에 대해서는 겸손함과 더불어 감사함을 갖는 것이 너희들의 삶을 사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날, 나의 시도는 준비에 비해 대범했고 여물지 않았으나 결과는 나의 헛된 소망 그대로였음에 절로 머리가 숙여졌고 탄식하듯 감사함을 내뱉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에 두려움 또한 존재한다. 나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 많은 경우 오로지 나의 것만은 아닐 수 있기에 말이다.
신과 함께 있다. 생각과 말과 행동에 무거움을 느끼고, 많은 이들에게 친절을 베풀며 선함을 좇는 삶이 되길 스스로 염원하고 모든 일에 감사할 줄 아는 태도를 유지한다면, 적어도 지금 너희들의 아빠인 나보다 조금은 더 안온하고 순탄한 인생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갖게 된다.
서두르지 말고 꾸준히 너희 들이 옳다고 믿으며 스스로 간절히 원하는 그곳으로 꾸준히 걸어 나가길 바란다.
God does not hurry.
Think far away and think de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