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을 꾸준히 쓰다 보니 퇴사한 은행원 연재의 결말은 '실패'에 대한 기록을 향해간다.
처음의 의도는 이것이 아니었다. 높은 연봉과 스톡옵션을 받으며 C-Level의 경험을 하게 된 스토리는 나름 빛나는 경력의 한 줄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보편적인 성공(?) 스토리처럼 지난 과거들을 회상하며 내가 잘해왔던 일들을 하나하나 기쁜 마음으로 복기해보고자 했다.
오래가지 못했다.
어떻게 돌려서 생각해 봐도 나의 결론은 실패였다. 안정을 찾지 못하고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 네 번째라 하면, 아무리 내 나이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좋게 보일리 만무하다. 두 아이를 둔 외벌이 가장이라는 환경을 생각하면 더더욱 무책임하단 비난을 피하기도 어려울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감정에 의한 선택은 더더욱 아니었으며, 장기적으로 함께할 수 있는 사람과 조직에 나의 오늘과 내일을 맡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와중에 나는 나의 직감을 따랐다.
그러면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동일한 상황들을 피할 수 있는 선택이 될 수 있는가?
다가오지 않은 일들을 섣불리 예측할 수 없지만 하나 분명한 사실이 있다. 우리의 생각과 능력과 희망과 꿈에 대한 긍정의 역치가 높아질수록 언제든 새로운 환경으로 옮겨갈 수 있고, 그렇게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물질적 풍요도 중요한 요인이겠으나 심리적 만족과 안정감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래서 뿌리를 내리기가 수월하다. 매일이 불안한 상태에서 업무가 지속된다면 작은 성취조차도 얻기 어려울 수 있기에 환경에 대한 면밀한 관찰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만약 이러한 과정을 쳇바퀴 돌 듯하고 있다면 잠시 멈춰 서서 방향에 대한 고민도 해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인의 의견을 묻거나 경험이 많은 이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는데 가급적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내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누구에게 운전대를 맡긴단 말인가. 나의 직감과 영감을 가장 중요시해야 예상치 못한 어려움도 나의 지혜로 극복할 수 있다. 타인에 의해 이끌려간 곳에서 자신의 총명함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실패의 역사이든 경험의 단층이든 중요한 사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는 무언가를 겪었고 배웠을 것이고 느꼈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의 배움이 남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배움은 다음 단계의 나의 행보에 있어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고,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스스로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볼 수 있는 혜안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지난 시간들을 내가 잘 정리해 두고 꺼내보며 핵심적인 것들을 기억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만 있다 하더라도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실패에 대한 기록이라고 하더라도 내게는 기록 그 이상의 충분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