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고 있는가.
그것은 매 순간 내 삶을 사랑하게 하고 있는가.
누군가 해준 그 한마디, 당신은 자신의 생각보다 너무 괜찮은 사람이라는 그 말이 티 내지는 않았지만 낮아진 나의 자존감을 위로했다. 그리고 돌아본 나의 모습은, 정말이지 생각보다 아주 괜찮은 것이었다. 안되고 힘들고 부족하고 어려운 것들만 찾아본 나의 시선에 묻혀 지낸 탓에 도무지 깨달을 수 없었을 뿐, 상상외로 아주 괜찮은 존재였다. 그리고 이는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이들에게도 적용될 귀중한 진실이다.
태어남과 동시에 누군가의 꿈이고 희망이었다. 모든 생명의 탄생이 축복받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적어도 그날의 하늘과 땅과 바람과 태양은 새로운 하루로 생명의 시작을 맞이해 주었다. 그날이 있어 오늘이 있고, 지나온 숱한 날들 가운데 나는 여러 번 혼자가 되기도, 그러다 주저앉기도 했으며 다시 누군가의 손을 잡고 일어나 걷고 달리기 시작했다. 가장 비참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적어도 나의 부모와 여동생은 나의 편에 서주었고 그럴 자격이 없었음에도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 주었다. 그런 순간들이 모여 나는 또 하나의 새로운 가정을 이루게 되었고 나와 아내를 적당히 닮은 두 아이의 아빠로 살아간다. 그러니 어찌 나의 지금이 괜찮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여도 그것이 실패한 삶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더 잘 되고 싶었다. 이십 대 무렵의 계산이라면, 지금쯤 나는 더 높은 곳에서 더욱 풍족하고 넘치는 삶을 살았어야 한다. 철들지 않았을 무렵(그렇다고 지금의 내가 완벽히 철든 어른이라 말하긴 어렵겠다) 나는 나의 마흔을 그렇게 점쳐보았다. 그러나 이 또한 상대적인 것이니, 예상에 비하여 미치지 못함을 불평하기보다 현재의 부족함이 없다는 팩트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겠다. 필요라는 것은 늘 새롭게 생겨날 수 있고, 그 한계가 없기에 무한한 욕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런 사실을 알아채고 자기반성을 하게 될 무렵, <월든>을 다시 일게 된다면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사치에 가까울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나를 더 나답게 만들어주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은 반복하여 탐독해야 하는 서적 몇 권과 노트, 연필, 만년필 정도 될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와 집, 집의 크기, 타도 다니는 차, 하고 있는 일과 연봉 등을 불특정 소수와 비교하며 결핍을 느끼는 사치는 빠르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들이 내가 아주 괜찮은 사람이기에 누릴 수 있는 행운은 아니다. 그것과는 아예 거리가 멀다. 다만 지나 온 나의 시간에 충분히 성실했고 함께한 이들을 존중했으며 관계에서의 진실성을 유지하며 매일의 내가 올바른 곳을 향할 수 있도록 노력했기에 지금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다다른 곳은 아니다. 내 발이 닿는 어디에도 그런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한걸음엔, 내 부모의 걱정과 기도 그리고 내 아내와 아이들의 염원이 모두 담겨있다. 나의 시간이 여유 있었던 것은 아내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고, 나의 주머니 사정이 넉넉했던 것은 부모의 가르침과 아내의 검소함 때문이었다. 그래서 난 사회에서, 직장에서 꽤나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볼 수 있었다.
누군가 내게 손을 내밀어준 적이 있었다면, 그로 인해 힘든 시간들을 안주삼을 수 있을 만큼 만족스러운 오늘을 보내고 있다면, 난 생각보다 꽤나 괜찮은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친구들의 연락을 피하고 숨고 싶던 시절에도 말없이 기다려준 이가 있다면, 그리고 그랬던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친구가 있다면, 난 생각보다 꽤나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아무 말 없이 처진 어깨로 사무실을 나설 때, 술 한잔 사달라며 조르던 팀원들이 나와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면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불행히도 나 스스로만 그 사실을 알지 못했을 뿐. 기억나지 인연들이 내게 건네준 따뜻한 말 한마디와 손길 덕분에 나는 이렇게 살고 있다. 13년 전, 일주일에 한 번 들르던 구둣방 아저씨도 매번 나를 위로했었다. 이제 손주까지 보게 된 그도, 나도 인연의 힘으로 일구어진 세월에 신세를 지고 살아간다. 우리는 모두, 괜찮은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