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의 쓸모에 대하여
살아있기에 시작은 했다.
언젠가 끝이 있겠지만, 그때가 언제인지는 모른다.
앞으로 남은 삶을 살아가면서도 영영 모를 것이다.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냥저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도 괜찮은 것이었다. 부족한 것도 없었다. 넘쳐서이기 때문이 아닌, 지금의 그러니 아등바등할 이유도 없었다. 내 몸을 피곤하게 하여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가끔은 이조차도 핑계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내게 주어진 지금의 상황들을 무리하게 해석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간절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적당한 움직임 만으로도 내 삶을 그럭저럭 잘 이끌어왔다. 물론 이 마저도 누군가의 눈으론 버거워 보일 수 있는 여정일 수도 있겠다. 삶의 관찰과 해석은 객관적일 수 없으니 말이다.
시간을 아끼며 살라는 얘기를 숱하게 들었어도 정작 나는 그것을 어떻게 실행에 옮기는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7년 전에는 30분 단위로 기록할 수 있는 바인더를 구입해 수년간 잘 사용해 왔다. 어느 순간 시간을 다스리고 지배하려는 취지에서의 시작이 나를 압도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이후부터 나는 무지의 몰스킨과 A4 크기의 그리드 노트를 일상과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30분 단위의 일정을 관리하고 병적으로 기록에 매몰되어 있던 상황에선 내가 나를 들여다보기가 어려웠다. 적어둔 일들을 처리하는 것에 온 신경이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를 돌아봤을 때 체크박스의 V마크가 가득한 날엔 기분이 좋았다. 나는 이런 삶을, 당시엔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랬을 수도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열심이었다.
당시 나만의 비즈니스를 하고 있기도 했었고, 일정관리부터 해내야 하는 모든 일들이 경제적 이득과 연관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해야 했던 일, 그래서 해낸 일, 그럼에도 끝내지 못한 일들의 나열이 아주 잘 살아온 시간들의 전부라 생각했던 시간은 더 중요했던 나의 감정 그리고 문득문득 떠오르는 영감이 가득한 생각들이 점점 멀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 순간부터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간절함은 삶의 필수적인 것임이 아니며 그것이 없는 삶 또한 잘못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간절함이 빠진 나의 하루는 오히려 평온을 되찾고 고요 속에 머무는 시간이 늘었다. 나의 생각을 어떤 기준에 의해 필터링하지 않고 편하게 쓸 수 있었다. 어제보다 더 열심히 살지 못한 것 같다는 오늘의 자책으로 많은 것들을 멈춰버릴 이유가 없었다. 완벽하지 않은 것이라 내놓지 못하고 쌓아둔 글감들을 부족하기에 소중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 여기며 용기를 내어볼 수 있었다. 점점 이런 생각들의 끝에, 어딘가에 속해 누군가의 지시대로 움직여야 하는 인생의 방향에서 멀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 또한 받아들인다. 나의 삶의 옳고 그름이 어디 있겠는가. 사회적, 법적 정의의 보편타당한 테두리 안에서 나의 삶을 누리면 그뿐 아니겠는가. 그것이 간절함을 전제로 하고 있지 않다고 내 삶이 아니겠는가. 그조차도 생각지 못한 채 매일의 반복을 생계의 필연성이라 받아들이며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간절함 대신 감사함을, 진심을 담아내는 것이야말로 잃지 말아야 하는 태도이고 용기다.
젊은 시절, 대학입시에서의 성공에 대해 간절했고 그 후론 취업에 간절했고 이상적인 배우자를 만나게 되는 미래에 간절했고 부모와 자식들의 건강에 간절했다. 넘치는 간절함으로 잃어버린 일상의 사소함이 어쩌면 내게 더 큰 의미였을지도 모른다. 기억도 나지 않는 지난날들의 평범했던 순간들이 다가오지도 않은 내일의 간절한 소망에 가려졌을지도 모른다. 간절함은 말 강도에 비례할 것이고 빈도에 반비례할 것이다. 간절하다 말하는 나의 입이 부끄럽지 않아야 할 것이고 대게는 '간절하다'는 말 조차 하지 못할 정도의 간절함으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간절함이 필요한 순간은 예고 없이 찾아올 확률이 높고, 그 마음이 저 높은 곳에 닿게 되는 경우는 오늘의 일상과 지극히 평범하고 티끌처럼 사소한 순간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고 감사해왔는지에 대한 총합이 흡족할만한 경우에라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살아있음으로 모든 것을 얻었다 여기게 되면 모든 순간에 진심을 다하지 않을 수가 없다. 누군가에게는, 단 하나의 간절함이었을 그 생을 나는 아무 감정 없이 누리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면 오늘의 삶은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