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다섯 번의 사계를 지나며 얻게 된 교훈은 무엇이었나
<마흔다섯 번의 공부>의 연재를 성실하지 못하게 진행했다.
매번 시작에는 굳은 의지와 포부와 설렘이 있지만 과정에는 처음 수준의 강도를 지속하는 것이 내겐 어려운 일이다. 이번만 그런 것은 아니고, 난 그렇게 살아왔음을 돌아보게 된다.
그럼에도 끝을 볼 수 있게 되어 다행스럽다. 돌이켜보면 난 새로운 시도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지만 그 선택을 꾸준히 지속해 나가는 힘은 부족했다. 천천히 오래 달리는 훈련을 해야겠다 마음을 먹은 것도 나의 신체적 지구력이 업무나 개인생활의 지구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면 지난 45년의 시간 동안 나를 곤란하게 했던 끈기부족으로부터 벗어나볼 수 있지 않을까.
그 와중에도 꾸준히 무언가를 어딘가에 쓰고 있는 나의 아주 작은 진전들에 박수를 보낸다.
새벽바람이 제법 쓰고 춥다.
곧 집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해야 하는 시절이 오고 있다. 결혼 초기, 십 년 전 즈음 아내는 첫째를 낳고 트리를 설치했다.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에서 적당한 크기의 트리와 오너먼트 몇 가지들을 사 왔다. 18평 집 작은 거실 한 구석에 트리는 우리 부부와 첫째 딸아이의 겨울을 비춰주었다.
십 년이 지나, 우리는 네 식구가 되었다.
고심한 끝에 아내의 전략대로 생애최초 특별공급 청약을 넣었고 34평 내 인생 첫 자가로 이사를 했다. 평생 쓸 수 있는 운을 집에 다 썼다는 얘기를, 우리 부부는 지금도 한다. 벌써 2년이 지났다. 모든 면에서 안정이 되었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입는 것도 먹는 것도 그대로다. 가끔은 희망적이고 때로는 절망을 느끼기도 한다. 대게는 잔잔한 일상이다. 마흔다섯 번의 사계를 지나며 나아지는 것은, 격한 감정의 동요가 현저히 줄어드는 것이다. 이게 꽤 도움이 된다. 아주 가끔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 훌쩍이게 되는 순간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의욕과 무기력이 교차되는 시간을 보낸 사십 대 중반의 가장은 이전보다 좀 더 유연해졌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담담하게 받아낼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어른이 되어감을 느꼈고 이는 인생의 어떤 법칙들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싹이 나고 자람에 있어 '무엇을 심느냐'가 무엇을 수확하게 되는가의 근본이라면 그것은 비단 노동뿐 아니라 우리의 생각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내가 늘 갈구했던 것은 자유였다.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자유로움을 누리는 삶을 원했다.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일을 하고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사람들과 평온한 시간을 보내는 그림을 그려왔다. 나의 시간을 내어주고 급여를 받는 일이 아닌 내가 가진 지극히 개인적인 고유성을 통한 보상을, 언젠가는 받겠노라 생각했다. 거창하게 아티스트라 불리진 못하더라도 나만의 이야기를 하고 나만의 삶을 관찰하고 나만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대중의 퍼실리테이터가 되기를 기대했다. 그래서 나는 매일 그런 결과가 펼쳐지길 기도한 것이 아닌, 이 과정에서의 현실적 어려움들을 이겨낼 용기와 힘을 달라고 기도했다. 내가 뿌리는 씨앗이 근본이었고,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결과에 대해 걱정할 것은 전혀 없다고 믿었다. 한때는 그 씨앗은 적극성이 되기도 했고, 옳은 마음이 되었다가 불도저 같은 추진성으로 변화하기도 했다. 내가 심는 그것은 나와 가족이 처한 환경과 상황에 따라 변했다.
씨앗을 뿌린 후에 이 씨앗을 뿌릴 수 있는 생의 기회를 부여받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들에 집중했다. 내가 지금 무엇을 심고 있는지 계속해서 생각했다. 좋은 일도 있었고 힘든 일도 겪었지만 감사한 삶이었다. 지나온 45년의 시간은 그러했다.
새벽이 지나면 아침이 온다. 어둠이 걷히면 밝아지는 세상을 볼 수 있는 자연의 섭리는 만물의 이치이다.
기다림도 필요했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음의 감탄이 절로 커지는 것은 우리 인생의 당연한 진실이고 진리의 영역이다. 이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 받아들이게 되면 거침없이 나아갈 수 있다. 지금의 걱정과 절망과 두려움도 끝이 있음을 알게 되면 많은 양의 고민들이 덜어진다. 지금 내가 어둠 속을 걷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곧 빛을 보게 될 때가 다가옴을 알아야 한다. 고통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은, 이내 치유의 시간을 맞이하고 그 상처들을 시간의 흐름 속에 아물게 될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단지, '시간'이라는 도구를 활용하여 내가 바라는 결과를 품고 있는 씨앗을 뿌리고 단단히 심어두면 된다. 감사의 마음과 더불어 말이다. 먼 곳에서 바라본 지난 시간들은 하나의 풍경을 이루고 있지만, 이 풍경은 매우 단편적인 하루하루의 누적과 조화로 이루어져 있다. 삶의 진리와 진실에 대한 믿음만 있다면 우리는 계속 나아갈 수 있다. 무엇을 생각하고 먹고 마시고 있는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는가. 바로 이것들이 지금 내가 뿌리고 있는 씨앗의 총합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품고 있는 결과대로 된다.
그러니 생각과 말과 행동의 씨앗을 무작위로 뿌려대지 말자. 내가 기대해도 좋을만한 가치와 미래를 품고 있는 것들만 뿌리자. 그것이 열매 맺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자연의 이치이다.
가진 것이 많아질수록 챙겨야 할 일들이 늘어난다.
지난달 차를 구입했다.
2년 전 생긴 인생 첫 자가에 이은, 인생 첫 차가 생긴 셈이다. 마흔다섯이 될 동안 차 한 대 없이 어떻게 살았냐고들 묻곤 했는데, 아주 가끔 불편함이 있었을 뿐 사는 데에 지장은 없었다. 덕분에 차량을 소유하며 들어가는 비용들을 절약할 수 있었고 집을 사는 데에 활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두 아이의 기억이 유아기 때의 그것과는 다른 인지 수준에 이르렀다. 보고 듣고 관찰하고 경험하는 것이 꽤 오래 지속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난 이전과는 다르게 편히 이동할 수 있는 것에 대한 방법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 덕에 편리해진 것은 날씨에 상관없이 우리 가족이 어디든 가볼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 생겼다는 것이고, 불편해진 것은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전과는 다른 이동에 대한 비용, 관리에 대한 비용, 소모품 교체에 대한 비용, 주차에 대한 비용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내가 직접 해야 하는 시간에 대한 비용.
소유가 늘어나니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일들도 늘어났다. 우리는 결국 무(無)로 돌아갈 텐데 살아있는 동안 소유가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들이 생겼다. 소유하지 않았다면 하지 않았을 일들이 소유함으로 발생하는 셈이다. 대게 그 소유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필요의 도구로 말미암은 것일 텐데 소유를 하게 되기 생겨나는 문제들 또한 새롭게 피어났다. 지금 내 삶의 패턴을 본다면 노트와 만년필, 연필, 글을 쓸 수 있는 노트북과 작은 책상 하나와 책 몇 권과 늘 입게 되는 옷 두어 벌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그 외에는 있어도 잘 쓰지 않거나 그 빈도가 극히 적은 것들일 것이다. 둘러봐도 그런 것들을 너무 많이 그리고 오래 이고 지고 살았다. 불필요한 소유가 늘어나니 당연하게도 필요한 소유를 돌볼 시간이 줄어든다. 나를 돌보고 가족을 챙기고 나와 함께하는 이들과 나눠야 하는 소중한 대화와 교감의 기회를 잃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무엇이 진정 내가 가치 있는 소유인지 식별할 수 있는 혜안이 있다면 나의 오늘은 어제와는 다른 의미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살아온 만큼의 시간이 앞으로 내게 남아있다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모습 그대로 살아가길 원하는가
나는 또다시 새로운 계절을 기다린다.
지난날 열심이었던 어제 덕분에 오늘을 잘 살아볼 수 있어 감사한 마음으로 내게 다가올 새로운 계절을 기다린다. 매년 반복되는, 다를 것 없는 시간이지만 매 순간 내게 온 계절이 전해 준 의미는 매번 결코 같지 않았다. 이 계절이 지나가는 것은 내게 어떤 의미일까. 새로운 계절에 서 있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나는 내가 지난 계절보다 더 본질에 가까워지는 삶을 살게 되길 원한다.
나만의 기준과 원칙을 지키고 세상이 전해주는 자연의 이치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한 마음과 깨달음을 구할 줄 아는 겸손한 마음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의미 있는 것들을 세상에 남기고 그것들을 우리 아이들 또한 너무 늦지 않게 깨닫게 되길 바란다.
본질에 집중하게 되면 그 본질에 가까워지는 수단과 방법은 다양할 수 있음을 인정하면, 누군가의 성공스토리 한 두 가지에 집착하는 실수를 피해 갈 수 있다. 참고할만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수용하되, 나만의 과정을 존중하고 신뢰하길 바란다. 그 과정에서 매일 행하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쌓여 내 인생의 열매가 됨을 알고, 매 순간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진중히 생각해보고 실천한다면 내가 바라는 삶의 모습이 반드시 펼쳐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