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차림을 알게 될 두 아이에게 부쳐
1.
오늘 하루도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기적이고, 나는 오늘도 이 기적을 경험하는 중이다.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2.
새벽 5시 10분. 정신을 맑게 해 주고 나를 정화해 주는 기분을 선물하는 물 한잔을 마신다. 뜨거운 물과 찬물을 적절하게 섞어 음양탕으로 마시고 있다. 물 한잔에도 감사한 마음이 생기는 것을 보니 어제보다 조금은 더 나은 하루를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보인다.
3.
지금의 나는 어제의 숙취로 두통이 있고 속이 좀 불편하며 몸도 피곤함을 느낀다.
4.
관찰자인 나는 이렇게 말한다. 그대로 두어라. 이 피곤함과 약간의 불편함은 네가 아니다. 너는 의식이고 알아차림 그 자체이며 변화하는 존재이다. 따로 떨어트리고 오로지 존재하는 너 자신만을 느껴라. 불편한 생각들도 너와는 무관한다. 흘러가는 물에는 늘 때가 끼기 마련이다. 그러나 늘 그것은 바닥으로 가라앉고 언제나 깨끗한 상태로 정화된다. 잠시 혼탁해졌다고 물이 흐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물은 물이듯 너는 너다.
5.
일시적인 잠시의 혼란과 무질서는 진짜의 네가 결코 아니다. 그러니 그대로 내버려 두어라. 만약 의도적으로 너 자신을 밝게 하기 위해서 방법을 찾는 것이라면, 깨끗한 물을 계속 부어보는 방법도 있다. 좋은 생각, 긍정적인 생각과 마음을 계속해서 떠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인위적인 노력에 불과한 것이니 시간을 두고 기다리는 편이 더 나은 것이다. 내버려 두어라. 다 지나간다. 두려움과 슬픔과 분노의 마음과 기분은 좋은 일로 인해 쉽게 감정이 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도 휘둘리지 말고 그대로 두어라.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가는 것을 붙잡지 말아라. 모든 것은 자연의 법칙을 따른다. 나고 지는 것은 하늘의 이치이며 이는 거스르는 법이 없다.
6.
작은 것 하나하나에 연연하지 말고 사계절의 흐름을 보라. 364일의 흐름 속에 있는 '지금의 나'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라. 내가 살 수 있는 때는 어제도, 내일도 아니다. 바로 지금 오늘뿐이다. 과하면 넘치고 부족하면 메마른다. 늘 적당히 GOOD ENOUGH의 마음으로 살아라. 항상 지금처럼 알아차리는 순간을 놓치지 말아라. 다시 말하지만 존재하는 너는, 의식 그 자체다. 그 의식은 지금의 에너지를 품고 산다. 그러니 지난 일에 대한 후회와 미래의 두려움은 오늘을 살고 지금을 살아야 하는 너의 에너지를 계속해서 고갈시킬 것이다. 생각은, 불현듯 떠오르는 좋은 것들에게만 허락하고 나머지는 늘 여백으로 두어라. 비움의 상태로 그저 스치듯 흐르게 하라.
7.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은 기쁨이다. 알아차린 후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외부의 사건과 상황과 환경은 모두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런 것들에 휘둘리거나 통제하려 들지 말아라. 그 변화에도 너의 의식은 변함없이 고요의 상태로 제 자리를 유지하고 있으니 어떠한 경우에라도 너의 의식을 소음과 소란에 취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아라.
8.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단지 운동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몸이 네게 하는 말들을 잘 알아차릴 필요가 있다. 휴식을 요청해 오면 휴식을 취해라. 동기부여 영상과 모닝 루틴의 압박 속에서 너의 의식을 받치고 있는 몸이 하는 얘기를 귀 기울여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모두가 달린다고 너까지 나가서 달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는 길은, 더 많이 달리고 더 빠르게 달리는 것에만 있지 않다. 어제보다 한걸음 더 나아갔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움직임을 놓을 수는 없으니 볕이 좋은 때에 나가 지금의 계절을 느끼고 가끔은 찬 바람이 네 얼굴을 스치고 지나갈 때 지난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을 기다린 끝에 기어이 도달한 오늘에 이르렀음을 축하하고 격려해 주어라. 이 또한 지나갈 계절이다. 계절을 잊고 하는 것은 지금의 나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춥거나 덥다고 불평하기보다 곧 지나갈 이 계절을 조금 더 안아주도록 하자.
9.
새벽 6시가 조금 넘었다. 이렇게 새벽에 일어나 일기를 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있음에 감사한다. 명상도 하고 독서도 할 수 있는 지금, 다른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10.
인생 아무도 모른다. 야구가 인생이라면 인생도 야구라 하지 않았던가. 9회 말 2사 만루의 상황이 종종 회자되는 이유는, 그때부터 쓰인 역사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적이 아니며,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는 것이 여러 차례 증명되었다. 어떤 일이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 시기의 새로운 역사를 써낸 곳의 현장에는 아마도 이러한 모습들이 있었을 것이다.
[야구장, 주명, 양 팀의 선수, 꽉 찬 관중석, 감독과 코치진들. 9회 말 2사 만루. 6:3으로 너의 팀은 지고 있다. 네가 타석에 섰다. 무엇이 보이는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가을밤이라 공기가 차자. 반드시 홈런을 쳐서 이 게임을 이기고 싶다. 영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야구는 팀 스포츠라는 기본을 다시 떠올려본다. 어쩌면 내가 좋은 성과를 내고 그것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지금 내 눈에 보이고 들리는 것 모두의 합으로 만들어지는 당연한 시나리오일 뿐이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오히려 차분해진다. 호흡도 안정되고 관중석의 환호성도 서서히 볼륨이 낮아지고 있다. 이 넓은 야구장에 투수와 나만 존재한다. 공 하나에 집중한다.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다. 딱 그것 하나만 본다. 나를 향해 날아오는 공, 그것 말이다. 투수가 던졌다. 공이 나에게 온다. 이는 격하게 환영해 주기를 바라는 어떤 의식 같기도 하다. 평소보디 공은 천천히 온다. 마치 슬로모션처럼.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몸은 알아서 반응할 것이다. 마치 자로 잰 것과 같은 타이밍에 배트를 휘둘렀다. 천천히 맞고 허공을 가르며 장외를 향해 날아간다. 마치 만화 속 한 장면 한 장면처럼 재생되는 순간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다. 1루와 2루 그리고 3루를 어떻게 돌았는지도 생각나지 않는다. 홈을 밟는 순간 그제야 외부의 미친듯한 함성에 귀가 얼얼해진다. 그렇게 역사가 쓰였다.]
11.
어떤 상황일지라도 경기는 지속되었다. 삼진을 당하고 땅볼을 치더라도 나는 타석에 섰다. 관중석의 야유가 있어도, 팀의 실망스러운 눈빛을 받으면서도 나는 계속 내가 있어야 하는 자리에 섰다. 그게 야구다. 그게 인생이다. 내가 서야 할 곳은 어디인가. 그것을 알고 있는가. 지금 너는 계속 벤치에만 앉아 있는 것은 아닌가. 선즉행이라 한다. 기회가 오면 그 자리에 서고, 기회가 오지 않는다면 그것이 올 때까지 네가 해야 할 일들을 해야 한다. 휴식이라는 핑계로 너의 책임과 의무를 내려놓지 말아라. 균형이라는 핑계로 회피하고 도망치지 말아라. 차라리 네 모습 그대로 부딪히고 주저앉아라. 이것은 어떤 한계를 시험하거나 넘어서려는 시도가 아니다. 그저 이 생에서 부여받은 일들을 흐르는 대로 하나둘 해나가는 것이다. 지금처럼 관찰하는 의식으로 존재하며 스스로 행해야 하는 때에 숨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느리고 어리숙해도 너만의 방식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