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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발견

by Johnstory

테이블에 앉았다.



모니터를 바라보며 순간 스치고 지나간 것들에 대한 글을 쓰려 노트북을 가져오는 사이 무엇을 쓰려한 것인지, 붙잡지 못한 탓에 날아가버린 기억을 소환해 내려 애쓰고 있다. 그렇다고 그 글이 좋은 글이 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는데 놓치고 보니 왠지 더 값진 소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커진다. 단 한 번도 준비가 잘 되어 있는 순간에 나타난 적이 없다. 내 마음에 차는 글감이라는 것은 말이다. 조금만 나의 시선을 움직여보면 일상적이나 가슴 두근거리는 대상에 대해 담담하게 써내려 갈 수 있을 텐데 의미부여라는 필터로 인해 그 순수한 것들은 가치 있는 대상에서 제외한 채로 살아왔다. 이제 다시 그런 것들을 둘러보고 있는 셈이다.



의식이라는 것, 몰입이라는 의도적 연습과 노력을 통해서 말이다. 이 행위는 꽤나 진지하고 차갑고 이성적이지만 동시에 매우 추상적이며 관념적인 것이다. 드러나는 것은 현재 나의 시선이 머무는 것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일 뿐이다. 또 다른 해석은 잊고 지내온 것이 무엇인지 내게 뒤늦게 알려준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 여기던 것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런 시선은 자연스럽게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닌 듯 보인다. 적어도 나와 같은 의식의 세계를 마주하고 놀라움과 흥분되는 마음이 일렁이는 평범한 사람에겐 말이다. 의식이 주도하는 조금은 특별한 시선에서 기존의 피동적인 시선으로의 이동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의식의 나에서 몸이라는 형체를 가진 나의 시선으로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무의식이 반영된 본능이 앞설 때 조금 높은 곳의 시선은 종종 무시당하고 그 순간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이 의식(조금 높은 곳의 시선)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다시 내가 고요함을 맞이하여 치우치지 않은 상태의 모습으로 차분해질 때 그때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새로운 시선을 발견하게 된 날, 두려움과 더불어 안온함을 느꼈다. 이질적이었다. 나의 행동을 누군가가 지켜보며 감독하는, 하지만 지적하지는 않는 어떤 관리자 같았다. 그러면서도 나의 이성은 중간값에 머무르게 되었다. 어느 곳에도 치우치지 않은. 기쁨도 슬픔도 설렘도 두려움도 사라지고 오직 상황 만을 바라보고 있는 '나'만 존재하는 기분이었다. 마치 날이 좋은 어느 날 오후, 호수 옆 벤치에 앉아 윤슬의 미세한 떨림을 관찰하고만 있는 것처럼 말이다. 경이로움을 느낄 법도 한데 현상만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모습이 생소했다. 감정이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일렁였다. 또 다른 시선이 내게 분명히 존재함을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그간의 나로선 쓸 수 없었던 내면 깊은 곳의 이야기들을 조금씩 풀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의도적인 노력으로 그 의식에 닿아야 하는 수고로움이 아직은 필요하지만 덕분에 차분함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발견한 이 시선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중심을 잡을 수 있게 해주는 균형추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저 바라보는 것 만으로 내게 필요한 메시지들을 조용히 건네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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