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시간 단식의 기록
11월 24일 월요일 저녁식사를 다소 늦은 시간(8시 반)에 마쳤다.
월요일은 두 아이 모두 학원에서 늦게 끝나는 날이라 식사가 좀 늦는 편인데 이날은 그나마 양호한 시간에 마무리가 되었다. 최근 들어 속이 좀 불편하고 종종 두통도 발생하며 새벽에 달리거나 운동할 때 몸이 무거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런 불규칙한 식습관으로 나의 체중은 많이 늘어나 있었다. 마흔다섯에 벌써부터 몸이 이런 상태라는 게 부끄러웠지만, 누구를 탓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모두 내가 자초한 일이었기에. 운동량에 비해 먹는 것이 많고 또 잘 먹는다는 취지로 과식을 했던 지난날을 어찌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또한 오며 가며 생각 없이 집어먹던 간식도 적지 않았음을 왜 모르겠는가.
외부로부터의 충격은 없었으나 이렇게 가다가는 정말 큰일 나겠구나 라는 날카로운 생각이 머릿속에 꽂혔고, 나는 가능한 날만큼 물 만으로 몸을 정화하자 마음먹었다. 그리고 내 몸에 어떤 변화들이 일어나고 어떤 현상들이 발생하는지를 기록하기로 했다. 관련된 영상도 찾아보고 일전에 읽고 블로그에 비공개로 정리해 둔 데이브 아스프리의 <<최강의 단식>> 독서노트도 다시 참고해 보았다. 관련 문헌들이야 늘 차고 넘친다. 중요한 것은 실행이다. 의지의 유무와 정도를 따지지 말고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함은 너무 잘 알고 있으니, 일단 시작했다.
첫째 날(11/25 화요일)
07:20 기상, 물 한 컵
09:35 물 한 컵 / 배고픈지 꼬르륵 거린다. 이제 겨우 공복 13시간이 막 넘었을 뿐인데..
10:25 러닝을 가야 하나 망설여졌다. 결국 미세먼지 농도와 비 이슈로 러닝은 패스
12:00 끓인 물+상온 물 섞어서 한 컵 / 이때부터 매시 정각마다 일어나서 10분간 걸었다
12:24 왼쪽머리 두통이 살짝 오기 시작했고 오전에 비해 배고픔의 강도가 세졌다. 공복 16시간째다.
14:30 아내가 고생한다며 안마를 해줬는데, 배고픔보다 더 고통스럽다.
14:46 따뜻한 물 한 컵
15:30 19시간 경과, 오전 대비 체중 -1kg
16:00 조금 어지럽고 힘들어서 거실에 누웠다
17:00 소금물 레시피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고 바로 마시기 시작, 알려준 양으로 만들어 마셨는데 전혀 짠맛이 없다. 집에 천일염이 있어 다행이다. 24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단식 후 보식은 순댓국, 소머리국밥 등을 추천한다. 이 상태로 내일 오전 8시 반까지 가면 36 Hour 단식 성공이다. 상태보고 더 진행할 것인지 여부 결정하기로.
19:00 책 읽고 글을 쓰다 집중력이 고갈된 느낌이라 거실로 나왔다. 약간 피곤함이 느껴진다.
20:30 24 Hour 단식 성공! 인생 첫 하루 단식(물만 마시면서)을 성공했다. 약간의 두통만 있을 뿐 기운이 빠지는 느낌은 거의 없었다. 표현하기가 좀 어려운데 장기가 살아있는 듯한 느낌-뭔가 쪼그라들었다가 하는 그런 미세한 운동이 느껴지기도 했다. / 체중 -1.3kg
21:00 취침
배고플 때 소금을 아주 약간 집어 먹었다. 소금이 이렇게나 맛있는 줄 전혀 몰랐다. 물만 마시면서 했다면 오히려 건강에 더 안 좋을 수 있었는데, 확실히 소금물을 마신 이후로 화장실도 덜 가는 것 같아 분명히 수분이 보호되는 것 같았다. 다른 무엇보다 24시간 단식을 성공했다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저녁에 아내와 두 아이가 박수를 쳐줬다. 어찌 되었건 내일 아침까지는 단식을 할 수밖에 없으니 오늘 밤 잠만 잘 잤으면 좋겠다.
둘째 날(11/26 수요일)
04:30 두통으로 뒤척거리다 기상, 물 한 컵
*어제의 HRV는 37ms, 보통은 42~47ms 정도였는데 단식으로 인한 자율신경계의 변화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함, 또한 최근 이러저러한 스트레스도 한몫했을 것 같음.
04:48 화장실 다녀옴(그러나 단식한 탓인지 큰일은 실패)
05:08 양치, 가글. 전반적으로 상태는 나쁘지 않고 기운 없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입냄새가 평소에 비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신체의 감각기관들이 조금 더 예민해진 것 같다
06:00 속이 약간 울렁거리는 느낌이 있었다. 순댓국 생각이 났다.
06:07 소금물 한 컵
08:20 샤워, 큰일보기 성공, 체중 -2.6kg
13:00 이때까지 소금물 3컵(기록을 놓쳤다), 아내가 오전 모임 갔다가 사온 대형 에이드에 음식에 대한 욕구가 꿈틀거렸다.
14:30 배고픔의 크기가 커진 것인지, 단지 음식에 대한 욕구 탓인지 이쯤에서 그만할까 하는 생각이 커지고 시간이 더디 가기 시작함.
15:30 중간 확인차 체중 측정했는데 +0.1kg! 이건 물인가??!! 배고프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지만 참는 중. 이때 하는 거 없이 집안만 돌아다니면 뭔가를 집어먹을 것 같은 위기감으로 해야 할 작업들 진행. 대부분이 글쓰기 및 음악감상 :)
17:05 소금물 2/3 마시고 한 컵 새로 떠옴
18:10 소금물 한 컵. 아마 48시간 되는 시점까지 이게 거의 마지막 물 한 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함. 여기까지도 올 거라고 생각 1도 안 했는데, 그것도 물만 마시면서... 칭찬해주고 싶다!
18:20 양치
20:30 단식 종료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못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만 움직임을 최소화해서 일할 수 있는 재택근무의 환경이나 나처럼 집안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면 조금 힘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바깥 산책 정도는 괜찮다던데 혹시나 모를 유혹에 대비하기 위해 난 집안에서만 이리저리 걸어 다니고 움직였다. 일단 나에겐 하루라도 성공하는 것이 목표였다. 1차 목표를 달성했고, 이제 2차 목표인 48시간 단식에 도전 중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준으로(14:43) 대략 6시간이 남았다. 1일 차에는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갔는데, 오늘은 확실히 더디다. 몸이 어느 정도 적응을 했다는 생각과 배고픔의 크기가 어제와는 또 다른 양상으로 펼쳐지고 있기에 마지막 6시간이 아마 최대의 고비가 될 것 같다. 만약 48시간 단식에 성공한다면 다시 상태를 보고 72시간 단식으로 바로 이어가려 한다. 무리가 따르는 것 같다는 몸의 신호가 있다면 바로 그만하려 한다. 내일 오전 8시 반까지만 진행되어도 60시간 단식에 성공한 셈이니 첫 도전치고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른 무엇보다 단식을 통해 내가 얻고 싶었던 것은, '안 좋은 생활 습관들의 정리 및 정화'였다.
불필요하게 많은 음식들을 먹으려 하고, 수고로움 없이 편하게 배달음식을 주문하고, 배가 찼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먹고 마시던 습관들을 버리지 않으면 지금의 불만족스러운 몇몇 상황 속에서 평생 허우적댈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 단식의 진행이 보통때와는 다른 마음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스스로 위기의 순간을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이 필요했다. 어제 두 아이와 아내는 라면을 끓여서 김밥과 함께 식사를 했고 단식으로 예민해진 나의 후각은 나를 주저앉게 만들 수도 있었다. 오늘 아내가 마시면서 들어온 그 에이드도 마찬가지였고.
평소에 음식을 조절하고 규칙적으로 정해진 소량만을 식사함을 원칙으로 했다면 힘들게 하지 않았을 단식이었겠지만, 이 과정도 내게 의미가 있다. 단식 과정에서 <<절제의 성공학>>을 다시 읽으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단식을 하며 읽으니 이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고 밑줄을 치는 문장도 조금은 달랐다. 음식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성공할 수 없다는 다소 과격하면서고 고전적인 단언이 내 마음에 더 강렬하게 남았다.
사실 단식의 성공보다 더 중요한 한 가지 깨달음이 있었다. 우리는 시작하기 전에 무엇을 이룰 수 있을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단식의 처음은 24시간을 하면 엄청난 성공이다란 생각에서 36시간, 48시간으로 조금씩 그 기준을 늘리면 매시간을 처음 겪는 배고픔을 다른 쪽으로 관심을 전환해 가며 이룬 결과였다. 사실 이것을 안 했다고 내 인생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다만 지금의 나의 모습을 어떻게든 변화하고 싶다면 무엇이든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꼭 단식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아주 작은 성취다. 누군가의 눈엔 정말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그 정도의 성취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난 나와의 고된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이 되었고 이다음엔 무엇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한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쁘다.
+1주일 경과한 오늘 오전, -3kg 상태를 유지 중이다. 48시간 단식 이후 먹는 양이 많이 줄었고 배고픔도 큰 어려움 없이 버틸 수 있게 되었다. 이전처럼 1시간 이내로 주 4~5회 러닝을 진행하며 12월 한 달간 아내와 약속한 7kg도 마저 감량해 봐야겠다. 한해를 보람된 일로 마무리할 수 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