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이야기의 탄생을 예견하며
저는 오랜 시간-이라고 말하고 보니 이 개념은 무척이나 상대적이네요-그러니까 대략 20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판매하는 행위를 지속해 왔습니다. 어쩌면 광의의 판매라고 하는 것은, 비단 영업직에 속해있는 이들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해당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각자 스스로 나의 사랑을 찾기 위해, 직장을 찾기 위해 나를 판매하고 있는 셈이니까요. 표현이 조금 불편하긴 합니다. 나를 표현하고 드러내는 행위를 '판매'로 눙치는 것이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기술은 결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여러 각도의 구상이 필요하고 전략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을 실행해야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대부분이 이 단계를 눈앞에 두고 주저합니다. 많은 시간 고민하느라 시간을 보내놓고 막상 그대로 실천하려고 하니 이런저런 걱정이 스며드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 판매의 기술은 곧 실행의 기술과도 일맥상통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다가오는 해에는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들을 해왔습니다. <<퇴사한 은행원>> 시리즈를 나름 계획했고 봄 여름 가을 겨울에 이어지는 계절의 이야기에 빗대어 글을 쓸 수 있었던 경험은 유익했습니다. 그러다 일상의 생각과 깨달음, 독서 후 밀려드는 감정들에 대한 기록 말고 가장 오랜 시간 나를 채워주었던 일들에 대한 기록을 하나하나 펼쳐보고 다시 수집해 가면서 재기록하는 경험은 어떨지 궁금해졌습니다. 일에 대한 정리를 해야겠다고 느낀 겁니다. 판매라고 부를만한 행위를 했던 첫 기억이 2001년 봄이었고 영업인으로서 마지막 커리어가 2024년 12월이었으니 25년 정도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십 대 후반에 은행원이 되어 급여소득자 로서의 삶을 산건 18년 정도이니 이 정도의 시간이면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들을 '일의 정리'라는 명목으로 한번 시도해 봐도 괜찮은 것 아닐까 싶었습니다. 비록 내가 카네기의 제안을 받아 성공의 법칙을 20년간 집대성한 나폴레온 힐이나 9년간 사람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며 당대 제일의 관상가가 되었던 미즈노 남보쿠와 견줄 수 있는 인물은 아직까지 아니지만, 절대적인 시간의 누적에 젖어든 땀과 눈물이 있으니 해볼 법한 일이라 스스로를 다독여 봅니다.
당장 지난 시간들의 기록과 기억과 감정을 더듬어 일을 중심으로 판매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걱정도 됩니다. 더군다나 제가 해온 판매라고 하는 행위가, 영업이라고 하는 업무의 영역이 사무업무에서 적용되는 일종의 원칙과 흐름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띄고 있을 수도 있기에 두루두루 도움이 되는 기록이 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 구상을 해야 하나 여전히 고민입니다. 그래도 있는 그대로의 서술이 '이런 식으로도 가능하겠구나'라는 여지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누군가는 1인치의 틈새로 판매에 성공하는 짜릿한 경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혹은 전혀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시선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시도를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이 글을 쓰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별 것 아닌, 그러나 나만의 고유한 일버릇이 기술이 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음은 행운이고 기적입니다. 더군다나 이 모든 과정이 애초에 짜인 각본대로 움직인 결과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매 순간의 선택 그리고 스스로 내린 결정이 만들어낸 내 여정이 축복받은 것임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과정이 늘 행복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이제는 정말 영업은 그만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었고요. 세일즈 조직의 총괄을 맡으며 이 일을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매일 이어졌음을 이제야 고백해 봅니다. 그럼에도 지나온 조직들은 최고의 성과를 내며 꾸준히 성장해 온 것은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움직여준 팀원들 그리고 회사가 나가야 하는 방향대로 지도편달 하기 위해 불철주야 애써준 매니저들 덕분이었습니다. 머무는 곳마다 유능한 구성원들과 한 조직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일터에서 누렸던 최고의 호사였습니다.
매일, 매주, 매월 계속하여 도전적인 과제가 내려오는 조직의 특성으로 체력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괴로운 시기도 꽤 길게 이어졌지만 그럴 때마다 어디에선가 나의 등을 두드려주는 누군가도 나타났습니다. 동기가 있었고 선배가 있었고 후배들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순간이 또 다른 영업의 과정이라고 여겼습니다. 언젠가 헤어질 것이고 또다시 만날 수 있기에, 다시 만나고 싶은 이들에겐 꼭 다시 같이 일해보고 싶은 사람으로 남길 바랬습니다. 첫 직장에서부터 지금까지 모든 조직마다 한두 명의 사람들이 꼭 남았습니다. 헤어짐 후에도 찾아줄 수 있고 그리워해줄 수 있고, 술에 취해 보고 싶어 전화했다고 말해주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무언가를 판매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은 사람으로 남길 바라는 작은 소망들이 있습니다. 그래야 꼭 필요한 때에 도움을 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새로운 관계가 연결되고 또다시 헤어지고를 반복하며 흰머리가 늘고 체중도 많이 늘었습니다. 그래도 생각과 마음만은 달라진 것이 없는 예전 그대로의 나 자신임을 상기시키며 결코 늙지 않는 나의 의식에 고마움이 커집니다.
26년 전 이사를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이곳의 모습처럼, 주위의 환경들은 많이 변했지만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관악산과 청계산 그리고 수많은 은행나무와 단풍나무들은 늘 여전합니다. 내 스무 살 시선에서 바라보던 가을의 모습이 지금도 다르지 않음은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나의 마음은 26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안도감을 전해줍니다. 웃픈 결과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마흔 중반에 선 가장들은 한 번쯤 생각해 봤을 법한 일이기도 합니다. 십 년 뒤에도 이 정신만은 그대로 나아가길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늘 이런 환경 안에서 무언가를 판매하는 것에 대한 상념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 나 자신에게 그간의 기록은 어쩌면 다른 사람이 아닌, 내게 주는 선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다양한 시나리오들이 오늘의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느낍니다. 한때 영업이라는 분야를 떠나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도전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긴 시간 배우고 익힌 기술이 판매일 것인데 이것을 버리고 다른 일을 해보자 하니 왠지 내 것이 아닌 옷을 걸치고 있는 기분이 들어 금세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곤 다시 영업이었습니다. 스스로 내가 이 일을 아주 잘한다고 여기던 때도 있었고, 그런 생각이 얼마나 건방지고 위험한 생각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처음부터, 바닥에서부터 시작한 것도 어쩌면 영업이 아닌 내게 주어진 이번 생의 삶을 더 잘 살아보고자 마음먹었기 때문이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책에서 배운 것이 아닌 나의 판매는 매우 엉성했습니다. 일을 시작한 초반에는 엉성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되어가는 모양새인지 현재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옆에 앉은 팀장님을 어깨너머로 관찰하고, 선배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또 많은 고객들에게 혼나보기도 하면서 조금씩 단단해질 수 있었기에 이만큼 올 수 있었습니다. 영업을 하며 해볼 수 있는 역할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아니라는 마음속 외침이 있어 한편으론 다행입니다. 더 전진해 볼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20년 정도의 시간 동안 영업이라고 하는 행위의 패턴, 방식 등이 변화하고 다양해졌으며 기존의 것들은 사라지거나 아니면 또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방법들 가운데 나는 과연 어떤 기술들을 선택하고 활용했나 돌이켜보면, 애석하게도 나의 스타일을 설명해 줄 만한 교과서적인 방법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물론 생명보험사에서 가르치는 영업의 AtoZ 도 무적의 공식은 아닙니다. 늘 예외는 있고 꽤 오랜 시간 쌓여있는 경험치들의 확률적 해석과 판단으로 만들어진 '나름의 원칙'으로 보는 것이 무방할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 안에서 니즈를 파악하여 내가 가진 제품 혹은 서비스가 솔루션이 될 수 있는지의 접점을 파고든다고 모든 판매가 성공으로 마무리되지는 않습니다. 또한 보이는 것이 중요하기에 잘 차려입고 호감형의 외형을 가진 세일즈맨이 아니더라도, 눌변의 평범한 사무직 같아 보이는 영업맨이더라도 계속해서 좋은 성과를 낼 수도 있습니다. 영업의 성과는 대수의 법칙에 의해 분석되고 일반화되어 영업조직에 퍼져 나갑니다. 그런데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해본 동료는 동일한 성과를 내지 못합니다. 마치 어떤 확률 게임에서 생존할 사람들만 남을 수 있도록 교육시키고, 누가 누가 살아남는가를 지켜보고 또 다른 인물들을 영입해 오는 그런 영업조직의 모습에 나 역시도 속해 있던 것은 아니었는지 씁쓸해집니다.
그러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그 성공하는 확률에 포함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판매의 환경, 세부적인 상황, 판매자와 구매자의 성향, 제품 및 서비스의 특성 등 고려해야 할 변수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개인적 경험을 '원칙' 또는 '법칙'이라는 말로 간결하게 전리하는 것은 기만에 가까운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만의 현장에서 생계의 목적이든 꿈의 실현이든 혼신을 다해 활동하고 있는 판매인들에 대한 모독과도 같은 행위이기에,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의 기록을 통해 스스로 확인한 작은 통찰의 순간으로 남기려 합니다. 아마도 그것이 나 자신이 스스로 일하며 터득한 '기술'이라 칭할 만한 것이겠지요.
영업인의 세월 동안 절반이 조금 넘는 시간은 직접 판매를, 나머지의 시간은 그 경험을 토대로 조직을 구축하고 시스템을 만들며 조직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들을 연구하고 적용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무엇보다 보람 있던 순간은 시간을 들여 트레이닝한 이들이 그들도 스스로 알지 못했던 역량을 발휘하고 좋은 성과를 거두며 일의 보람을 느껴가던 순간이었습니다. 그 어떤 보상과도 비견할 수 없습니다. 판매라고 하는 것은 판매를 하는 사람 그리고 사는 사람 모두의 인생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예술과도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인생은 바뀌어가고 있음을 떠올리니 다시 가슴이 설렙니다. 그것이 바로 영업의 매력이겠지요. 이 일을 많이 미워했으나 동시에 말할 수 없이 사랑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영업의 방법을 떠나 일을 대하는 태도, 더 나아가 가치 있는 삶에 대해 깊게 생각할 수 있게 해 준 나의 일에 고마움을 전하며, 다가오는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이 기술의 경험에 대해 차분히 써보려 합니다. 읽은 분들의 시간이 아깝지 않은 기록이 되길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