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배하려다 슈도가 불평했다. “맥주 다 떨어졌다. 깡통이네. 더 살 돈 없어?”
멤브레인이 입을 내밀었다. “없어. 아무렴 어떠냐? 앞으로 채우면 되지. 맹세에는 돈 안 들어.”
셋은 빈 맥주캔을 들고 건배했다. 부딪히는 손에 힘이 들어가 캔이 찌그러졌다.
“근데 그 동안 누가 죽으면 어떡해?” 슈도가 물었다. “내기가 없어질지 나머지 둘이 내기를 계속할지 그것도 정해야지.”
브레인은 그럴 리가 있냐고 구박했다. “평균 수명이 이렇게 긴데 일찍 죽기야 하겠어.”
멤브레인은 잠시 생각하다가 그런 경우에도 내기를 계속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래야 안 잊지 않을까.”
슈도는 피식거리며 덧붙였다. “우리 중에 둘이 죽으면 혼자 내기하면 되겠네. 그것도 재미있겠다.”
셋은 찌그러진 맥주캔을 동시에 쓰레기통에 던졌다. 딱 하나만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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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사님이 이긴 거네요. 500만원 받으셨어요?” 이대리의 천진한 물음에 윤이사는 싱긋 웃었다. “글쎄요.”
“이사님이 브레인 아니에요?” 이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요.”
정과장도 혼란스러웠다. 다른 사람인가? 이사한테 애가 있던가? 자기 이야기를 잘 안 하는 사람이니 모르겠다. 경우의 수를 따져 봐야 하나.
“근데 이사님. 서울 하늘에서 목성 위성이 보여요? 그것도 쌍안경으로?” 이대리의 분연한 따짐에 얄미운 미소만 말없이 돌아왔다.
정과장은 이사를 째려봤다. 그런 상황에 나방이 등장하는 건 너무 작위적인데. 저분 일 안 할 때는 소설 쓰고 있는 거 아닐까. 20년 후 주인공은 사기꾼 아닌가. 같이 일한 지 오래 되었는데도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너무 따지지 마요. 머리 아프니까.” 윤이사는 계산서를 집었다. “가죠. 이 집 맥주 맛있네.”
눈에 졸음을 이고 있던 이대리가 냉큼 일어나며 맞장구쳤다. “그쵸 이사님. 맥주는 거품이 적당히 있어야 좋더라고요.”
맥주 맛만큼이나 기분좋은 귀가였다. 택시를 기다리면서 과장은 밤하늘을 봤다. 이맘때 목성이 보인다고? 과장은 모르겠다고 중얼거렸다. 하늘은 맑았지만 뭐가 별인지 인공위성인지도 구분할 수 없었다.
- 끝 -
[뱀발]
‘Pseudo’는 가짜, 모조, 거짓의 뜻을 가진 단어다. 접두어로서 ‘Pseudo-‘는 '위(僞), 의(擬), 가(假)'의 의미로 사용된다. Pseudomembrane은 ‘위막’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바나나 장면을 좋아한다. 파이는 표류기를 이야기하면서 오랑우탄이 바나나 더미를 타고 바다를 표류했다고 진술하지만 조사관은 믿지 않는다. “바나나는 물에 뜨지 않아요.”
그런데 세면대에 물을 채우고 바나나를 넣어 봤더니 물에 떴다! 물론 소설 속의 설정이다. 실제로도 뜰까? 글쎄다.
거품을 거품이라고 하지만 꺼지기 전까지는 실재하는 실제다. 거품의 막이 잘 터진다 해도 위막은 아니다. 이야기가 있어서 세상이 좀 더 재미있다. 거품이 있어야 맥주가 맛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