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김에 밥을 붙여야 안 떨어지죠”

육아휴직 206일째

by 허공

2021년 8월 26일

며칠 전부터 사랑이가 ‘김밥’을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엄마는 약속도 지키지 않는다며 울고불고 난리였다.


출근을 한 아내 대신 미리 낮에 장을 봤다.

김밥 김과 당근은 집에 있었다. 계란을 사고, 단무지, 햄, 어묵을 샀다. 제일 중요한 밥도 미리 해 놨다.

아내가 일찍 퇴근해서 집에 왔다. 이미 아이들을 하원 시켜 잠자리 4마리를 잡은 뒤 방생시키고 집에 있었다.


“와, 엄마다”

“엄마 김밥 먹고 싶어요”

“그래그래, 엄마 손 발 좀 씻고”

엄마가 오자마자 아이들은 김밥을 만들고 싶다고 외쳤다.

계란을 풀어 고명을 만들고, 아내는 미리 준비한 재료들을 김밥 만들기 좋게 자르고 다듬었다. 밥에는 들기름을 넣었다. 큰 상에 재료들을 펼쳤다.


“와, 내가 만들래요”

“그래, 김을 놔주고 밥을 반절만 넣어 줄테니 나머지 재료를 넣어봐”

아이들은 직접 김밥을 말아 입에 쏙 넣어 먹었다.

“맛있어요”

“엄마, 나 짜증도 안내고 약속도 잘 지키죠?”

사랑이는 야채(당근)도 먹고 짜증도 안낸다며 셀프칭찬을 하였다.

“그래, 우리 사랑이 약속 잘 지키네”


“아빠, 김에 밥을 붙여야 안 떨어지죠”

5살인 행복이, 내가 김밥을 만들었지만 김이 풀어져 버리자 김 끝에 밥을 묻혀야 터지지 않는다며 훈수를 두었다.

“호호호호, 우리 행복이 똑 부러지는 것 봐”

아내는 행복이를 보고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어 그래. 이야 우리 행복이 똑똑하다”

행복이는 아빠를 좋아한다. 말하는 것을 보면 나중에 똑순이가 될 것 같다.

아이들은 김밥이 맛이 있는지 평소보다 밥을 더 많이 먹었다. 아내와 김밥을 만들어서 서로 입에 넣어 주었다. 꼭 비싼 음식이 아니더라도 가족이 같이 모여 음식을 나눠먹는 맛이 있다. 김밥은 그런 면에서 참 좋은 음식이었다. 특히 엄마를 좋아하는 사랑이는 엄마와 함께 음식을 먹는 게 너무 행복해 보였다.


“이거 아버님 좋아하시는데 좀 가져다 드릴까”

“그래, 그럼 오늘 바로 가져다 드릴께”

저녁을 먹은 뒤, 아내가 장모님이 해 주신 고추멸치조림을 아버지에게 가져다 드리자고 하였다. 우리 집 바로 5분 거리에 아버지 집이 있어 종이 가방에 음식을 담은 통을 들고 집을 나섰다.


“아버지 집에 없어요?”

아버지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 밖에 없었다.

“생수 사러 마트에 갔다.”

어머니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알고 보니 아버지가 저녁을 드시지 않고 생수를 사러 간다고 한 뒤 30분이 넘게 집에 오지 않았던 것이다.

“평생 엄마가 물 사왔는데 이제 와서 물 사온다고 한다.”

“저녁 밥 차리기도 힘들어”

어머니는 아버지가 지금껏 물을 사오지도 않다가 밥 먹을 시간에 물을 사러 간다고 나가자 짜증이 나셨다.

“아니, 그 연세에 왜 물을 무겁게 사와요, 배달시키거나 정수기 사용하면 되지”

나는 어머니께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마침 그 때 아버지가 오셨다.

“왔니? 마침 잘 됐다 물 좀 날라라”

아버지는 무거운 물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타이밍이 딱 맞게 집에 가서 물을 베란다로 날랐다.

“엄마, 아빠! 앞으로 물 배달시키거나 정수기 쓰세요, 뭐하러 생고생을 해요”

70이 넘은 나이에 무거운 생수통을 끌고 다니시다니, 사서 고생이시다.


아버지는 시계 자영업을 하시고 어머니는 교사로 일하시다가 몇 년 전 은퇴하셨다. 어머니는 은퇴를 하시고도 아버지가 계속 일을 하기 때문에 일상이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하시는 듯했다. 평생 아버지가 퇴근하면 밥을 차리는 게 지겨우신 것이었다. 이제 아버지도 일을 그만두시고 집에서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면 좋은데, 또 한편으로는 갑자기 일을 그만두면 팍 늙어버리시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나이가 들어도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직도 어머니 아버지는 티격태격 하신다.

어머니, 아버지 티격태격 하셔도 좋으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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