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는 고집쟁이>

육아휴직232일차

by 허공


2021년 9월 20일, 추석 전날이었다. 아이들은 아침부터 친할머니 집에 간다고 노래를 불렀다.

“할머니네 갈래”

하지만 점심을 먹지 않고 미리 가면 어머니가 밥을 2번 차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랑아, 점심 먹고 오후에 가자”

몇 번의 실랑이 끝에 결국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오후 3시, 큰 도로 건너편의 어머니 댁으로 걸어갔다. 아이들은 한복을 차려입은 채 퀵보드를 타고 갔다. 햇살이 따가웠다. 도로 하나 건너 어머니 댁, 생각해보면 양가가 다 같은 지역에 살고 있다는 것은 엄청난 복이다. 연휴 때 도로에서 버리는 시간만 해도 얼마나 긴가?

“어서 와라 우리 공주들, 이쁘게 하고 왔네”

어머니가 현관문을 열고 아이들과 우리 부부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이리 와서 절 해봐, 선물 줄게”

아이들은 옷을 벗고 놀려다가 할아버지가 절을 하라는 소리를 들었다. 사랑이는 벗었던 윗저고리를 다시 입고 할아버지 앞에 다소곳이 앉아 절을 했다. 행복이는 부끄러운지 엄마 품에 고개를 넣고 숨어 절을 하지 않았다. 6살 밖에 안 된 사랑이는 새초롬한 표정을 짓고 마치 20살처럼 손 모양을 하고 절을 했다. 어머니, 아버지와 우리들은 사랑이의 절하는 모습을 보고 깔깔 웃어 댔다.

절을 하고 나서 준 아버지의 선물은 바로 공주 인형이었다. 공주 인형 2개와 갈아입을 옷들이 상자 안에 가지런히 들어있었다.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인형 옷을 갈아입혔다. 여자 아이들은 어릴 때 역시 인형을 좋아한다.

저녁을 먹기 전에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가려고 했다. 그런데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사랑이가 가져온 옷이 마음에 안 든다고 옷을 가져달라고 한 것이다.

“사랑아, 네가 스스로 옷을 고른 거자나, 마음에 안 들어도 입어야지”

“싫어, 가져다 줘”

사랑이는 결국 옷을 가져다 달라며 나가지 않았다고 했고, 행복이와 나만 먼저 놀이터로 가고 아내가 옷을 가지러 집으로 갔다.

결국 행복이는 놀이터에서 실컷 놀았지만 사랑이는 엄마가 가져온 옷을 기다리느라 조금 밖에 놀지 못했다. 고집이 센 사랑이는 놀이터에서 잠시라도 깔깔대며 미끄럼틀을 타고 놀았다.

저녁을 먹고 거실에 있는 도중, 아내가 장모님에게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장모님의 어머니, 사랑이의 상 할머니가 요양원에 계신데 열이 나서 병원에 가셨다는 전화였다. 할머님은 사정상 요양원에 계시는데 코로나 때문에 그동안 면회가 되지 않았고, 이번에 면회가 가능해 방문할 예정이었다. 괜찮을 거라고 아내를 다독였지만 걱정이 되는 눈치였다. 아내 또한 할머니를 뵌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저녁 식사를 하고 어머니가 예전에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썼던 일기장, 군대에서 썼던 수양록, 옛날 사진들을 들고 오셨다. 초등학교 때 쓴 글을 쓰니 웃음이 나왔다. 형과 매일 싸웠던 이야기, 어머니가 컴퓨터 코드를 감추었던 이야기, 공부를 열심히 해서 효도를 해야겠다는 이이야기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았다. 군대에서 쓴 글들은 위에서 볼 수도 있어 내 속마음을 다 적지는 않았겠지만 거의 매일 일기식으로 글을 썼던 것 같았다. 아내는 내 글을 보며 깔깔대며 웃어댔다.

그 중 4월 23일 토요일에 적었던 동시를 적어본다.

푸르고 푸근 산은

자기가 이 세상에서 제일

자랑하지만

물감의 초록색은

너보다 네가 더 진하니

내가 제일

둘이 싸우면

온 세상이

초록색으로 물들은다.

지금 거의 매일 글을 쓰니 작가라고 스스로 생각은 하지만 재능이 있냐 라고 물으면 고개를 저을 것이다. 매일 글을 쓸 수 있냐고 물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일 테니까.

“아버지, 앞으로 90살까지 일하실 거에요?”

“에이? 무슨 말을”

아버지에게 술을 한 잔 따라드리며 말했더니 아버지는 무슨 말을 하냐고 하셨다. 시계 자영업을 하시는 아버지, 70살이 넘으셨지만 아직 현직에 계신다. 건강하게 일을 하시는 모습이 좋기도 하지만, 퇴임하신 어머니와 여행도 다니고 행복한 시간을 만드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그건 아버지가 선택할 문제시다. 건강만 하시면 된다.

할머니가 쉬고 싶다고 했지만 사랑이의 떼로 인해 아이들은 어머니 댁에서 자고 가기로 했다. 정말 사랑이의 고집은 못 말린다. 추석 연휴는 이렇게 하루하루가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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