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오리와 새끼 오리들>

육아휴직234일차

by 허공


2021년 9월 23일, 추석 연휴가 끝나고 첫 날이었다. 아침에 공주들을 등원시키고 난 뒤 곧장 장을 볼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섰다. 집에 쌀과 계란이 똑 떨어졌었다. 전날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더니 명절 음식이 있으니 싸가라고 하셨다. 먼저 어머니 댁에 갔다. 어머니는 후라이팬에 전을 부치고 계셨다. 음식이 냉장고에 있어서 한 번 더 조리하고 준다고 하셨다.


잡채, 전, 과일, 유과를 받았다. 양가에서 명절 음식을 받으니 며칠 동안은 음식 걱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와 잠시 이야기를 하다가 돌아가신 외할머니 이야기가 나왔다.

“너희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날에 뵈러 갔을 때 이미 눈이 노랗게 되셨었어, 오래 못 사실 것 같았어, 그 때도 정신은 멀쩡해서 이틀 뒤에 다시 오겠다고 하니 뭐 하러 오냐고 하셨어”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난 집에서 늦잠을 자고 있었다. 부모님이 할머니를 뵈러 가자고 했지만 가지 않았다. 그게 할머니와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기회였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불을 박차고 부모님을 따라나섰을 텐데.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있다. 부모님이나 어르신들에게는 효도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외할머니는 어렸을 적 어머니가 출근을 했을 때 우리 집에 와서 형과 나를 자주 돌봐주셨다. 밥도 차려주시고, 같이 드라마도 많이 봤다. 할머니는 드라마를 참 좋아하셨고, 나는 신문을 보고 TV프로를 외우다시피 하여 할머니와 같이 방학 내내 드라마를 봤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몇 번 오셨는데 오실 때 김치를 담가 오셨다. 내가 할머니를 마중나가 김치 통을 들고 함께 집으로 왔던 기억이 난다.

집에 와서 연휴 때 밀린 빨래를 하고 밥을 먹다보니 어느 새 아이들 하원 시간이 되었다.

“사랑아 오늘 코 어땠어?”

“콧물도 나고 재채기도 했어”

“응? 콧물이 나?”

“응, 여기”

사랑이는 전날부터 코가 막힌다고 했지만 콧물을 나지 않았었다. 지금 시기에 감기에 걸리면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고, 등원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사랑이의 코를 보니 맑은 콧물이 한 쪽 코에 맺혀 있었다.

“안되겠다, 사랑아, 행복아 병원가자”

원래는 아이들과 함께 놀이터에서 놀려고 했지만 바로 병원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랑이는 어린이 집 오빠에게 받았다며 요플레 통에 들어있는 작은 달팽이를 보여주었다.

“사랑아, 달팽이는 놓고 가자”

“싫어, 가져 갈래”

“씽씽이 타고 가기에는 좀 불편할 것 같은데”

“으으응, 가져 갈 거야”

결국 사랑이는 달팽이가 들어있는 요플레 통을 들고 퀵보드를 탔다.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을 갔다. 예전에는 병원에 사람들이 많았지만 확실히 마스크가 대중화 된 이후 감기 환자가 줄어들었다. 사랑이는 1분도 기다리지 않고 진료를 받았다. 푸근한 인상의 여 선생님이 진료를 해주셨다. 다행히 감기 초기 증상이라 약을 처방받고 나왔다.

“사랑아, 약 잘 먹고 푹 쉬어야 내일 어린이집에서 가는 소풍 갈 수 있어”

“응”

사랑이와 행복이에게 맛있는 과자를 하나씩 사준 뒤 집으로 출발했다.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가는 길은 차가 다니는 도로가 군데군데 있었다.

“정지, 정지, 천천히 천천히, 고고, 턱 조심하고”

아이들은 마치 엄마 오리가 새끼 오리들을 데리고 다니듯이 아빠의 지시대로 조심해서 건넜다. 나는 아빠니까 아빠 오리와 새끼 오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아, 감기 빨리 던져버리고 신나게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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