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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들때 Jul 21. 2022

완선 언니처럼 늙어갔으면 좋겠다

그냥저냥 그럭저럭 밋밋하게

완선 언니처럼 늙어갔으면 좋겠다. 완선 언니가 누구냐고? 이런. 날씬한 허우대로 룰이 있는 듯 없는 듯한 춤을 흐느적대며 무대를 장악하던 원조 섹시 댄스퀸. 특유의 흰자가 더 보이는 듯한 눈으로 '오늘밤은 어둠이 무서워요'란 가사말의 노래를 부르던 탓에 '당신이 더 무서워요'란 유머를 낳기도 했지만, 8090 그 시대는 정말 그녀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가수 김완선 말이다. 그럼 언니라고 부를 만큼 친하냐고? 아니다. 그랬음 좋겠지만 아쉽게도 전혀. 2022년인 올해 기준으로 그녀의 나이는 54세이다. 나보다 거의 10살 위인 셈이니 언니라고 불러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지극히 개인적이고 일방적인 팬심을 담아서 말이다.


어느날인가 TV를 보는데 그 언니가 나왔다. 54세라는 나이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여전한 미모와 몸매를 가지고 말이다. 안 그래도 늘 감탄하면서 보아왔던 터라 궁금했던 점을 고맙게도 MC들이 묻는다. '대체 어떻게 그렇게 유지할 수 있냐'고. 완선 언니는 말한다. "무지하게 미친듯이 관리합니다"라고. 순간 약간은 위로가 되었다. 그래,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타고난 것만이 다라면 어디 나같은 사람은 언감생심 꿈이나 꾸겠는가. 요렇게 짧고 통통한 팔다리로 날 낳으신 부모님 원망이나 괜스레 해보며 끝날 일 아니겠는가. 저렇게 늘상 적게 먹고 무려 저녁 5~6시 이후엔 아무 것도 먹지 않고(세상에, 원래 그때부터가 본격 먹방 타임 아니온지?) 수시로 운동하는 루틴을 지켜야만 가능한 거였다니, 최근 부쩍 뱃살이 붙고 먹는 양과 무관하게(라고 우겨본다) 몸무게가 느는 것이 저렇게까지 관리를 안한 결과라는 점을 증명해주는 듯 하여, 약간은 위로 되면서 그럼 난 연예인도 아니니 뭐 쩔 수 없지, 라는 합리화 끝판왕의 결론을 내리게도 해주었으니 역시 완선 언니는 언니다.(읭?)


식탐 많고 먹는 것 좋아하는 나로선 그런 자기관리만으로도 이미 존경심 한 가득인데, 사실 이 날의 백미는 그 다음에 있었다. 나이듦이 주는 선물에 대한 그녀의 말에 말이다. "사는 게 너무 행복하지도, 너무 불행하지도 않게 느껴지는 것이 좋다"라며, 덤덤이 읖조리던 그 말.



아보면 나 역시 지금보다 젊었을 땐 너무 좋았다. 그러다 또 너무 싫었다. 혹은 너무 기뻤고 너무 슬펐다. 변화무쌍한 감정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질질 끌려갔고 이리저리 휘둘렸으며, 그에 따라 내 인생도 하늘을 날아갈 듯 했다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기 일쑤였다. 좋은 일, 기쁜 일은 내 인생에서 당연한 것들이었지만 싫은 일, 슬픈 일은 '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가 되었다. 그에 따라 나란 인간의 가치도 달라져 어떨 땐 귀하다 여겨졌지만 어떨 땐 너무 별볼일 없어 쉽게 우울하거나 불안해졌다.


그렇게 행복은 내 것, 불행은 네 것이라는 태도로 안될 싸움에 맹렬히 분투하며 화려하기 짝이없는 그래프를 그려댄 시절을 지나, 점차 나의 그래프도 완만해진 시절이 왔다. 물론 불쑥 치솟는 그래프의 날들이 여전히 있지만, 밋밋한 그래프로 사는 것의 편안함과 감사함이 더 소중함을 알아채기 시작한 건, 얼추 40대 들어서였던 거 같다. 그냥 그렇게 알아채게 된 것 같진 않다. 내 생각이나 계획과 무관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확인하게 된 날들, 그 일들이 당혹스럽고 좌절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지나고 보면 그 일이 있어 다행이었음을 인정하게 된 날들, 내가 잘나서였는 줄 알았는데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함께 했기에 가능했던 일임을 깨닫게 된 날들, 생각보다 내가 혹은 내 옆사람도 별볼일 없지만 별볼일 없단게 귀하지 않은 건 아니란 걸 알게 된 날들. 그런 숱한 날들이 쌓이고 쌓인 것이었다. 법정스님도 그런 면에서 말씀했던 것 아닐까. "삶을 전체적으로 받아들여라"라고.


그래서, 나이 들어 좋은 게 뭐가 있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 역시 완선 언니와 같은 생각이다. '사는 게 너무 불행하지도, 너무 행복하지도 않게 느껴지는 것'. 아니, 솔직히 난 아직은 완선 언니보다는 한참 하수다. 그래서 지금의 나로 다시 정정한다면 사는 게 너무 불행하지도, 너무 행복하지도 않다는 걸 '인정하게 된 것'이다. 늘어나는 뱃살과 몸무게를 보며 '아, 이제 나이 드니 살도 더 잘 찌는구나' 원망스런 탄식을 내뱉을 지언정, 그렇다고 다시 화려한 그래프의 시절도 돌아가겠냐 누가 묻는다면 '굳이?'라고 약간은 소심하게, 그러나 살짝은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는. 그러면서 나도 더 훗날엔 완선 언니처럼 사는 게 너무 불행하지도, 너무 행복하지도 않게 '느껴지는' 것이라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걸 바래보는. 그게 오늘의 내가 가지고 있는 나이듦에 대한 입장이다.



그런 면에서 내 강아지 단지는 더 일찍 깨달은 듯 현명해보인다. 가만 보면 이들처럼 밋밋한 삶도 없다. 먹고 자고 까불고 산책하고 또 먹고 자고 까불고 산책한다. 그런 밋밋함으로 이 녀석은 우릴 대한다. 그 날 있던 복잡스런 일들과 그로 인한 기분따위 아무 상관없다는 듯 이리 오라며, 어제와 똑같이 반긴다. 너네가 와서 그냥 그게 좋다, 그 뿐이라며. 그런 밋밋함이 주는 안정감이 썩 크다. 위로가 고맙다. 그래서 는 오늘도 이 녀석의 배에 얼굴을 부벼댄다. 내 요동친 감정의 찌끄러기도 함께 밋밋해져 다시 그냥저냥 그럭저럭 괜찮은 날이 되라며. 그러면서 다시 다짐 살짝 해보는거다. 오늘은 이 녀석 옆에 두고 며칠 미뤄뒀던 꼼지락 요가라도 30분 해야겠다, 라고. 완선 언니처럼 늙어가겠노라, 말하려면 너무 튀어나온 뱃살은 좀 민망하니까.


너의 밋밋함이 주는 위로란 말야. 때로 백마디 사람 말보다 낫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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