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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들때 Aug 07. 2022

결혼 20주년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선물하기로 했다

잘 사는 것처럼 잘 죽는 것도 선물이기에

우리는 동갑내기 부부다. 딱 서른 되던 해에 결혼했으니, 결혼 20주년이 되는 해에 쉰 나이가 된다. 원체 달달스윗함과는 거리가 있는 부부이긴 하지만 결혼기념일을 그냥 거른 적도 없긴 하다. 소소하게 밥이라도 한끼 맛있는 걸 먹으려 했고 작은 선물 하나 툭, 기념일을 핑계로 주고받기도 했다. 물론 남들처럼 눈물바람 콧물바람 쏙 빼놓는 이벤트에, 혹은 꽃다발이나 돈다발이거나 작게 반짝이는 보석들에, 아니면 큰 돈 들여 어디 가는 여행에, 그렇게 화려한 결혼기념일과는 굉장히 거리가 먼 그저 촌스럽고 그냥 소박한 수준이었지만 말이다.



아, 그래서 평년에는 그럭저럭 보내되 5년 단위로는 가까운 해외여행이라 다녀오 했었다. 그래서 5주년, 10주년이 됐을 땐 결혼기념일이 있는 한국의 한겨울을 피해 가성비 좋은 동남아 어느 따뜻한 나라들로 피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었다. 15주년을 맞이한 올해는 코로나로 그것도 어려워 '방콕' 여행을 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더랬다. 얘기는 흘러흘러 결혼 20주년 얘기도 나오게 됐다. "벌써 우리도 5년 뒤면 20주년~", "날 만난 걸 영광으로 알아~" 등등 농담반 진담반 이야기가 오간다. 그러다 나는 불쑥, 평소 생각하고 있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결혼 50주년이 되는 날엔 딴 거 말고 병원 가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쓰고 오자"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생명의 연장을 위한 특정 치료 방법 여부에 대한 본인의 의사를 서면으로 미리 밝힌 공적 문서. 의학적 치료에 관한 의사 결정 능력이 있을 때 자신의 연명 치료에 대한 의향을 미리 남겨, 죽음을 앞두고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게 하려는 취지에서 2016년에 법제화되었다. 본인의 자발적 의사에 따라 본인이 직접 작성하여, 법에 정한 의료기관/보건소/보건의료원/보건지소 및 건강생활지원센터 등 지역보건의료기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관한 사업을 수행하는 비영리법인 또는 비영리단체 및 법에 정한 공공기관에 등록하여야 효력이 발생한다. (출처: 다음백과)



남편도 그리 놀란 반응은 아니다. 평소에도 죽음을 앞두고 가능하다면 인위적인 연장은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제발 그럴 수 있다면! 그 얼마나 복된 일일까) 받아들이잔 전제에, 일치된 가치관을 갖고 있던 까닭일 터. 다만, "나도 생각은 같은데, 굳이 그걸 꼭 쓰는 행위를 해야 할까?"란 질문은 돌아왔다. 나의 대답은 물론 Yes. 번거롭게, 형식적으로 느껴질지 몰라도 그걸 쓰는 행위는 첫째는 자기자신을 위한 것이고, 둘째는 배우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마지막으로는 우리 둘 외에 '가족'으로 얽혀있는 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내가 그런 판단이 필요한 상태가 됐어. 당신이랑 난 서로 그런 얘기들을 평소 해와서 잘 알고 있어. 그러니 당신은 '이 사람이 평소 연명치료를 안하고자 했다. 그러니 뜻대로 해주자'라고 말해. 그렇다고 우리 언니나 오빠가 쉽게 동의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지만 만에 하나 아니라면, 안 그래도 힘든데 더 복잡해지지 않을까?"



남편도 이내 고개를 끄덕거리며 수긍한다. 그리고 우리는 약속했다. 쉰이 되는 그해 결혼기념일엔 어느 볕좋은 시간을 골라 천천히 산책삼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오기로. 그 무슨 여행도, 급선물도 아닌, 그러나 뭣보다 귀하디 귀한 종이 한장 서로에게 선물하기로.



그런 마음에 든 데는 관심사인 죽음에 대한 생각들의 연장선상이기도 하지만(나는 박사학위논문도 '죽음'을 주제로 다루었다), 몇 해 전 돌아가신 외조부님의 임종 전후로 마주하게 된 엄마의 모습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생전 온화한 성품에 부지런하고 깔끔하기 그지 없었던 외조부님은 그 성정답게 아흔이 훌쩍 넘은 연세에도 있음직한 병치레를 제외하곤, 손주뻘인 나보다도 또렷한 기억력과 판단력을 보이며 정정하셨더랬다. 그러다 97세, 98세 들어 부쩍 앓이를 많이 하시더니 돌아가시기 전 한 1년이었던가, 그 때부터는 아예 모든 게 외부의 수발로만 가능한 상태로 지내시게 됐다. 그렇게 소위 연명치료의 수준으로 병상에 누워 지내시다가 결국 돌아가신 그 때, 외조부의 연세는 99세였다. 고인에게 '때가 되어 잘 가셨다'는 말처럼 실례되는 말이 없다지만, 2020년 통계청 기준 한국 남성 평균수명이 80.5세인데 견주어 봐도 감히 아주아주 애달픈 정도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연세셨다. (죄송해요, 외할아버지)



그런데도 엄마는 외할아버지가 딱 1년만 더 계셨음 했다. 비쩍 뼈밖에 안 남은 신체 여러 기관에 꽂힌 호스로 그저 숨이 들어왔다 나가는 상태, 엄마가 그리도 사랑하고 의지하셨던 바르고 따뜻했던 '아버지'의 의식은 이미 확인될 수 없는 상태였음에도. 엄마는 상관없이 외할아버지가 조금만 더 계셨음 했다. 비록 그런 상태의 육신일지언정, 언제든 찾아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존재가 이 땅에 있고 없고는 엄마에겐 너무도 컸기 때문이다. 딱 1년만 더 계심 100세가 되니 그래도 100세 이 땅에 계시다 가셨다, 하면 어쩐지 적잖이 위로도 되는, 어떻게 보면 '엄마의 아빠'를 위한 것보다는 '엄마 자신'을 위한 마음이기도 한 그 바람을 애써 속이려 들지도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 여러 머리 큰 손주들이 보기엔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대한 의구심이 살짝씩 있다 하더라도, 그 합리적이면 합리적이다 할 생각이, 그저 얼마간이라도 곁에 더 계셔주셨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보다 과연 또 더 옳다 할 수 있을까. 엄마는 그런 마음이셨지만, 또 다른 자식인 몇째 이모는 또 다른 마음이셨다 한들 과연 또 무엇이 옳다 할 수 있을까.



정답 없는 그 물음 앞에,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나에게 맞는 죽음의 방식을 미리부터 생각하고 할 수 있다면 준비하는 것일테다. 더욱이 아이가 없는 우리 부부에겐, 엄마와 이모삼촌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런 걸 대신 결정해줄 자식이 없다. 또, 있었다 한들 우리는 아마 그런 걸 대신 결정하게 두지 않는 방식을 택했을 게다. 그러니, 온전히 서로가 서로를 책임져야 하는 우리 부부에게 쉰을 맞이한 20번째 결혼기념일의 선물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것만큼 뜻깊은 일이 있을까? 물론 또 그때 어찌될진 모르지만, 결혼 15주년을 맞이한 45세 동갑내기 부부는 그렇게나마 단정하게 늙어갈 마음의 준비를 같이 슬쩍해보는 거다.



그 옆에서, 우리 강아지는 며칠 전 10살이 되었다. 여전히 산책을 제일 좋아하지만 근래 확연히 산책 길이 다르다. 조금 오래 걷는다 싶으면 속도가 더뎌지고 오르막길을 만나면 버거워한다. 그 길이 무엇이든 제 몸 상태가 어떻든 토끼처럼 깡총대던 시절은 갔다. 이젠 산책 끈을 버티며 '잠깐 쉬어가겠노라' 우뚝 서곤, 조금 있다 거북이마냥 느릿느릿 걸음을 다시 옮긴다. 이 녀석도 이제 천천히 제 몸에 적응해가는 거겠지. 단지야, 우리 그렇게 같이 가보자. 그나마 단정하게 늙어갈 수 있게 지금을 올곧게 살면서.




잠을 자는 시간도 부쩍 더 늘었다. 오래도록 충전하면서 무슨 꿈을 꾸고 있니, 단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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