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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들때 Jul 22. 2022

최고의 경청왕은 내 강아지

자기 말만 하는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안다. 강아지가 제 인간의 말에 집중할 때 하는 그 갸우뚱의 고개짓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안다. 그것이 얼마나 사랑스운지, 그래서 지켜보는 이의 기분마저 얼마나 좋게 만드는지를. (지금 울적한 인간이여, 강아지 갸우뚱 영상을 1분만 보시어라)


그러니 자꾸 자꾸 그 녀석 이름을 부르고 이말 저말 늘어놓게 된다. "단지?" 왼쪽으로 갸우뚱. "단지?" 오른쪽으로 갸우뚱. "날씨 좋지?" 왼쪽으로 갸우뚱. "누나 공부하기 싫어. 어쩌지?" 오른쪽으로 갸우뚱.


이때 물론 조심해야 한다. 제법 나이 먹은 강아지란, 제법 눈치도 빤한 강아지'님'(!)이신지라 서너번의 부름에는 갸우뚱으로 응해주지만, 그 이상으로 적절한 용건이나 보상(간식, 산책 등)이 없는 인간의 말엔, '적당히 하라'며 앞발 어택을 날리니까.


그럼에도 자꾸 자꾸 부르고 싶다. 이말 저말 건네고 싶다.  녀석이 보이는 그 갸우뚱을 보고 싶어서. 아니, 그 행위에 담겨있는, 지금 이 순간 온 나에게만 집중하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궁금해하며 한껏 이해해보려 하는 그 마음을 보고 싶어서. 이게 경청, 뜻 그대로 '남의 말을 귀기울여 주의깊게 듣는 행위' 아니면 뭘까. 정혜신 박사 말대로 '충조평판', 즉 '충고/조언/평가/판단' 하지 않아 공감할 수 있기까지, 그 시작이 되는 경청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주머니는 열라, 고 했던가. 우스갯소리에 일면 씁쓸한 구석도 없잖아 있지만, 나이 들면서 경험치가 많아지고 그 속에서 안전하게 쌓아올린 자기 틀이 미더워 말이 많아지는 것 또한 일면 사실이다. 하물며 상담자로 살면서 경청을 잘 해야하는 나도 여전히 상담실에서 그(녀)를 향한 온전한 경청이 쉽지만은 않다. 그만큼 경청은 어렵고, 나이들수록 어려울 수 있다.  


그러니 자기 말만 하는 꼰대가 되고 싶지 않다면, 종종 들여다보고 배울 일이다. 최고의 경청왕 강아지로부터, 그 갸우뚱 경청법을.  그(녀)에게만 집중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궁금해하며 한껏 이해해보려 하는 그 마음을.


래서 오늘도 내가 자꾸 부르는 거다, 그 녀석의 이름을. 그리고 이말저말 하는거다, 적당히 시덥잖지만 적잖이 진심인 속내를 툭. 배우려는 거다, 경청을.  

(*절대 절대로 너무 귀여워서, 갸우뚱이 또 보고 싶어서, 앞발 어택에 무너지는 척 장난치고 싶어서가 아니구)


그렇다고 화장실 앞까지 쫓아와 듣겠다 그럴 건 아니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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