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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들때 Sep 06. 2022

까칠하지만 친절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내 나이 예순이 되면

고백하자면, 난 좀 까칠한 편이다. 이 참에 찾아본 '까칠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성질이 부드럽지 못하고 매우 까다롭다'. 내 입으로 먼저 그렇다 해놓, 막상 단어 뜻을 찾아 써놓고 보니 불쑥 '우 씨, 그 정도는 아닌데?' 하는 마음이 올라온다. 어떨 땐 그렇지만 또 어떨 땐 아니라고 분명히 따져 구분하고 싶은 마음이 ~. 그런 걸 보면 래, 부드러움보다는 까다로움이 좀 더 우세한 게 맞는 거 같다. 인정.



MBTI 성격유형검사로 굳이 빗대 말해보자면, 사고(T)-감정(F) 중 사고형의 선호도가 제법  뚜렷하달까. 아무래도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데 초점을 두고 결정하는 게 더 편하다.



나의 '까칠한' 모양을 그렇다고 내가 썩 좋아하지 않는가?라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개인이 가진 기질이나 성격이란 건 그 모양이 어떻든 각각의 장단점이 있는 법. 대체로 일하는 장면에서의 '까칠한' 나 자신을 난 좀 좋아하는 편이다. (이 정도면 눈치채셨을 수 있는데, 맞다. 난 좋게 말하면 자존감이 높은 편이다) 일하는 곳은 일이 되는 것에 목적을 두고(친선도모나 자기 성장이 앞서지 않는다) 효과적으로 하는 게 우선이란 생각을 가진 나는, 그래서 자주 까칠해진다. 더욱이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걸고 일하는  곳이라면 전문가답게 일을 '잘' 하는 게 우선이라 여겨지기에 전문가의 기본 책무라 생각는 지속적인 학습, 자기 판단에 근거한 명과 그 책임 주장하는 편이다.



그래서 공부하지 않는 후배를 보면 이유불문 구박한다. 번번이 자신의 고민이나 구상 없이 회의에 참석해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구걸하고 집단의 시간을 낭비하는 동료를 보면 끝내 '당신의 생각은?'이라고 물어 그 생각 없음을 스스로 토해내게 만들기도 한다. 논리가 부족한 이야기로 말도 안 되는 일을 시키려는 상사 앞에서 기죽지 않고 할 말은 하는지라, 내가 속한 조직동료나 후배들을 지키는 데 의리가 있고 체로는 '일을 썩 잘한다'라고 인정받는 편이다. 그러니까 이런 나의 까칠함은 분명하고 깔끔하게 일이 되게 하는 데는 좋은 무기가 되는 셈이다.



러나. '적당함'이란 그 얼마나 어려운 말이던가... 내가 요리를 잘 못하는 이유도 그놈의 '적당히 한 꼬집'을 끝내 못 찾아서이듯, 나의 까칠함이 그 적당함의 경계를 아슬하게 혹은 과하게 넘었을 때 문다. 그래서 때로 육아 스트레스로 눈이 퀭한 후배는 서운해진다. 생각 없이 회의에 왔기로서니 여러 사람 앞에서 굳이 콕 집어 면박을 주나 싶은 동료는 샐쭉해진다. 자기 말에 자주 토를 다는 나를 보며 상사는 조직 내 정치에서 자으로 바짝 겨줄 사 순위에서 슬쩍 밀어둔다. 그러니까 나의 까칠함은 서운함이나 긴장,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애물이 되기도 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 '까칠한 모양을 이제 버리려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제법 쓸모도 있는 편이고 갑자기 오렌지 빛깔의 사람이 블루 빛깔의 사람이려하면 어색하고 역효과만 나기 쉽(이 정도면 눈치채셨을 수 있는데, 맞다. 난 사람의 성장을 믿지, 변화를 믿는 편은 아니다. 사람은 원래 잘 안 바뀐다), '적당히 한 꼬집'을 찾아  데리고 살아볼 요량이다.



그런 나이지만, 근래 부쩍 친절해지고 싶단 생각 든다. 친절, '대하는 태도가 매우 친근하고 다정함'. 우선 나부터가 점점, 친절한 사람이 좋다. 굳이 센 척 다른 척 멀찍이 있기보다는 부드럽게  마주치고 웃어주는 사람. 다정하게 물어봐주고 대답해주는 사람. 어차피 해줄 일이라면 상대의 편의를 좀 더 봐줘해 는 사람.



혹시나 나한테 잘해주고 내 입맛대로 해주는  좋은, 소위 '꼰대'가 되어가나 살짝 경계도 되었지만, 다행히도 그거완 다른 것 같다. 그거보다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사람이란 존재가 얼마나 약한지에 대한 연민이 커져가것에 기인한다. 약하디 약한 우리네 모두의 바람은 결국 '이렇게 약한 나라도 괜찮다 해줘요'라 이해인정, 그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안심과 위로란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약한 존재가 마음의 겉옷을 벗고 속살을 드러내게 하는 데 더 필요하고 강력한 건, 매서운 칼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살임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까칠하지만 친절한 사람으로 늙어가고 싶다. 원체 까칠한 내가 친절한 사람으로 싹~변하긴 어려울 테니  생각이나 가치관은 까칠하더라도 대하는 태도는 친절하게 하는 성숙의 한 꼬집을 목표로. 지금부터 꾸준히 노력하면 60살 머리 하얀 할머니가 되었을 땐 제법 멋지게 가닿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이 글은 어제 동료에게 굳이 그렇게까지 얘기할 필요까진 없었다 짚어보는 반성문이자, 내일은 좀 더 친절해야겠다 다짐하는 선언문인 셈이려나.



그러고 보면 강아지 단지가 나보다 몇 곱절은 영리한 듯싶다. 왈왈 짖는 대신 솜털처럼 가볍고 부드럽게 착~ 제 고개를 나의 무릎 위나 팔뚝 사이에 기대어 놓곤 다정하니 나를 바라볼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주인이 되어 "오구오구~ 우리 단지. 껌 하나 먹을까, 아님 과자 하날 먹을까?" 하며 간직 통 뚜껑을 두 개나 열어젖히니 말이다.



그렇게 말갛게 쳐다보고 있으면 말야, 뭐라도 안 주는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거 같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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