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난 좀 까칠한 편이다. 이 참에 찾아본 '까칠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성질이 부드럽지 못하고 매우 까다롭다'. 내 입으로 먼저 그렇다 해놓곤, 막상 단어 뜻을 찾아 써놓고 보니 불쑥 '우 씨, 그 정도는 아닌데?' 하는 마음이 올라온다. 어떨 땐 그렇지만 또 어떨 땐 아니라고 분명히 따져 구분하고 싶은 마음이 확~. 그런 걸 보면 그래, 부드러움보다는 까다로움이 좀 더 우세한 게 맞는 거 같다. 인정.
MBTI 성격유형검사로 굳이 빗대 말해보자면, 사고(T)-감정(F) 중 사고형의 선호도가 제법 뚜렷하달까. 아무래도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데 초점을 두고 결정하는 게 더 편하다.
나의 '까칠한' 모양을 그렇다고 내가 썩 좋아하지 않는가?라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개인이 가진 기질이나 성격이란 건 그 모양이 어떻든 각각의 장단점이 있는 법. 대체로 일하는 장면에서의 '까칠한' 나 자신을 난 좀 좋아하는 편이다. (이 정도면 눈치채셨을 수 있는데, 맞다. 난 좋게 말하면 자존감이 높은 편이다) 일하는 곳은 일이 되는 것에 목적을 두고(친선도모나 자기 성장이 앞서지 않는다) 효과적으로 하는 게 우선이란 생각을 가진 나는, 그래서 자주 까칠해진다. 더욱이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걸고 일하는 곳이라면 전문가답게 일을 '잘' 하는 게 우선이라 여겨지기에전문가의 기본 책무라 생각되는 지속적인 학습, 자기 판단에 근거한 의사 표명과 그 책임을 주장하는 편이다.
그래서 공부하지 않는 후배를 보면 이유불문 구박한다. 번번이자신의 고민이나 구상 없이 회의에 참석해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구걸하고 집단의 시간을 낭비하는 동료를 보면 끝내 '당신의 생각은?'이라고 물어 그 생각 없음을 스스로 토해내게 만들기도 한다. 논리가 부족한 이야기로 말도 안 되는 일을 시키려는 상사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할 말은 하는지라, 내가 속한 조직의 동료나 후배들을 지키는 데 의리가 있고 대체로는 '일을 썩 잘한다'라고 인정받는 편이다. 그러니까 이런 나의 까칠함은 분명하고 깔끔하게 일이 되게 하는 데는 좋은 무기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적당함'이란 그 얼마나 어려운 말이던가... 내가 요리를 잘 못하는 이유도 그놈의 '적당히 한 꼬집'을 끝내 못 찾아서이듯, 나의 까칠함이 그 적당함의 경계를 아슬하게 혹은 과하게 넘었을 때가 문제다. 그래서 때로 육아 스트레스로 눈이 퀭한 후배는 서운해진다. 생각 없이 회의에 왔기로서니 여러 사람 앞에서 굳이 콕 집어 면박을 주나 싶은 동료는 샐쭉해진다. 자기 말에 자주 토를 다는 나를 보며 상사는 조직 내 정치에서 자기 옆으로 바짝 당겨줄 사람순위에서 슬쩍 밀어둔다. 그러니까 나의 까칠함은 서운함이나 긴장,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장애물이 되기도 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 '까칠한 모양을 이제 버리려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제법 쓸모도 있는 편이고 갑자기 오렌지 빛깔의 사람이 블루 빛깔의 사람이려고 하면 어색하고 역효과만 나기 쉽듯(이 정도면 눈치채셨을 수 있는데, 맞다. 난 사람의 성장을 믿지, 변화를 믿는 편은 아니다. 사람은 원래 잘 안 바뀐다),'적당히 한 꼬집'을 찾아 잘 데리고 살아볼 요량이다.
그런 나이지만, 근래 부쩍 친절해지고 싶단 생각은 든다. 친절, '대하는 태도가 매우 친근하고 다정함'. 우선 나부터가 점점,친절한 사람이 좋다. 굳이 센 척 다른 척 멀찍이 있기보다는 부드럽게 먼저 눈마주치고 웃어주는 사람. 다정하게 물어봐주고 대답해주는 사람. 어차피 해줄 일이라면 상대의 편의를 좀 더 봐줘해주는 사람.
혹시나 나한테 잘해주고 내 입맛대로 해주는 게 좋은, 소위 '꼰대'가 되어가나 살짝 경계도 되었지만, 다행히도 그거완 다른 것 같다. 그거보다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사람이란 존재가 얼마나 약한지에 대한 연민이 커져가는 것에 기인한다. 약하디 약한 우리네 모두의 바람은 결국 '이렇게 약한 나라도 괜찮다 해줘요'라는 이해와 인정, 그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안심과 위로란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약한 존재가 마음의 겉옷을 벗고 속살을 드러내게 하는 데 더 필요하고 강력한 건, 매서운 칼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살임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까칠하지만 친절한 사람으로 늙어가고 싶다. 원체 까칠한 내가 친절한 사람으로 싹~변하긴 어려울 테니 생각이나 가치관은 까칠하더라도 대하는 태도는 친절하게 하는 성숙의 한 꼬집을 목표로. 지금부터 꾸준히 노력하면 60살 머리 하얀 할머니가 되었을 땐 제법 멋지게 가닿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이 글은 어제 동료에게 굳이 그렇게까지 얘기할 필요까진 없었다 짚어보는 반성문이자, 내일은 좀 더 친절해야겠다 다짐하는 선언문인 셈이려나.
그러고 보면 강아지 단지가 나보다 몇 곱절은 영리한 듯싶다. 왈왈 짖는 대신 솜털처럼 가볍고 부드럽게 착~ 제 고개를 나의 무릎 위나 팔뚝 사이에 기대어 놓곤 다정하니 나를 바라볼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주인이 되어 "오구오구~ 우리 단지. 껌 하나 먹을까, 아님 과자 하날 먹을까?" 하며 간직 통 뚜껑을 두 개나 열어젖히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