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누리 Aug 28. 2023

선정릉

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시 부문 선정작

선정릉





  탁월한 산책자는 이별에도 능숙하게 대처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다. 나에게는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된 친구가 몇 있고, 오래 걷는 일에는 소질이 없다. 왕릉을 크게 한 바퀴 돈다. 비를 경험해 본 적 없는 날씨가 빛을 덩어리째 쏟아내면 빛은 각자 가장 적합한 사물과 생물에 들러붙어 최적의 계절감을 보인다. 너무 눈부셔 희게 보이는 나무 곁을 지나기도 한다. 무덤은 새로운 침략자와 능숙한 도굴꾼을 기다리고 있다. 이 모든 마음을 훔칠 뛰어난 계획을 세울 전략가 역시. 포장된 길을 걸을 때, 오른편에는 나의 선생이 있다. 우리는 냉이와 냉이 아닌 것, 봄동과 봄동 아닌 것을 구분하는 신비로운 방법론에 대해 이야기한다. 절기가 바뀌면 뚜껑이 열린다. 나는 선생으로부터 연속되는 계절을 절단하고 등분하여 시기를 예언하는 법을 배웠다. 곧 봄이 온다고 했다. 무덤은 스스로 구르지 않고. 누군가의 오른편에 설 때면 손에서 자주 원을 놓쳤다. 여전히 오래 걷는 일에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이전 01화 나의 유령 어금니 모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