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70점짜리 내가 너무 싫었다

사랑받기 위해 완벽해지려 했던 나의 어린 시절

by 구월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지금의 완벽주의 성향이 그때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 작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란 완벽에 대한 갈망이

어떻게 나를 만들어왔는지 되짚어보고 싶다.








지금도 그렇듯 어릴 적부터 책을 굉장히 좋아했다.

읽는 것도 좋아했지만, 사실은 책 그 자체를 더 좋아했던 것 같다.

네모난 책 안에 가지런히 정렬된 글자들,

손끝에 스치는 종이의 질감,

그 종이를 넘길 때 풍기는 책 특유의 은은한 냄새까지.

그 공간에서 나는 안전함을 느꼈다.


나는 이런 책을 늘 깨끗한 상태로 유지하고 싶었다.

그래서 책을 열 때도 조심스럽게, 마치 보물상자를 다루듯 열었다.

누군가 첫 장을 펼치고 손으로 꾹 누르는 행동을 볼 때면 속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모서리가 접히거나 표지가 살짝이라도 구겨지면,

그 완벽했던 세계에 균열이 생긴 것만 같았다.


그런 나에게는 정반대 성향을 가진 장난꾸러기 오빠가 있었다.

오빠는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고, 책을 구기고, 낙서하고, 험하게 다뤘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그 질서를 무너뜨리는 오빠를 보고 있으면 속이 끓어올랐고, 늘 싸움으로 끝났다.


"이것 좀 봐! 왜 이렇게 했어?"


울고불고 소리치는 나를 향해 어른들은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책 좀 구겨진 게 뭐가 어때서 그래."


하지만 나에게는 그 '좀 구겨진 것'이 정말 견딜 수 없었다.


이런 일은 책에서만 벌어진 게 아니었다.

삶의 다른 부분에서도 반복되었다.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날 때도 많았다.

색칠하다가 색이 조금 선 밖으로 나가면 종이를 찢어버리고 싶었고,

글씨가 조금 삐뚤어지면 지우개로 문질러 종이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지웠다.


이렇게 완벽주의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 나는 이 성격 때문에 많이 혼나기도 했다.

나도 내 자신이 왜 그러는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왜 나만 이렇게 예민한지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완벽함이 무너질 때 보이는 내 반응이 '이상한 것', '나쁜 것'이라는 점이었다.






또 하나의 선명한 기억이 떠오른다.

엄마와 관련된 기억이다.

엄마는 내가 '완벽하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특히 학업에 있어서만큼은.

그래서 늘 좋은 성적을 받아오기를 기대하셨고,

나 역시 그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다.


엄마의 환한 미소를 보고 싶었고,


"우리 딸 참 잘했네"

"넌 정말 똑똑해"


이렇게 말하는 엄마의 따뜻한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아마 그래서 내가 그날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골목길을 맴돌았을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

수학 시험을 봤는데 70점을 맞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결코 나쁜 성적이 아니다.

하지만 그때의 나에게 70점은 재앙 같은 숫자였다.

엄마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90점이나 100점을 받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그 시험지의 빨간 점수를 보는 순간, 심장이 쿵쾅쿵쾅 세게 뛰기 시작했다.

'이걸 엄마한테 어떻게 말하지? 실망하실 텐데.' 진심으로 무서웠다.


나는 어릴 적 작은 주택에 살았는데,

집으로 가려면 좁은 골목길을 지나야 했다.

그날 나는 그 익숙한 골목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고, 돌멩이를 발로 차며 서성였다.


"애야, 무슨 일이니?"


지나가던 동네 할머니가 물어보셨다.

그만큼 내 얼굴이 심각했던 게 분명하다.


그렇게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용기를 내어 집 문을 열었다.

두려운 마음을 꾹 눌러 담고 엄마에게 시험지를 건넸을 때,

예상과는 다른 반응이 돌아왔다.

크게 좋아하시지는 않았지만, 혼내지도 않으셨다.

그저 "다음엔 더 잘하자"는 담담한 말씀뿐이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두려움이 얼마나 컸는지를.


그리고 어른이 된 뒤에야 알게 되었다.

그 두려움의 진짜 정체는 '점수' 자체가 아니라,

그 점수로 인해 내가 덜 사랑받을까 봐 생긴 불안이었다는 걸.







지금은 책에 집착하지 않는다.

모서리가 접힌 책도 괜찮고,

밑줄이 그어진 책이 오히려 더 좋다.

그리고 더 이상 엄마의 기대에만 맞추려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왜냐하면 그 어린 마음의 뿌리가 내 안 어딘가에 조용히 남아,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완벽주의 성향을 강점으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나를 가두는 감옥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작은 나는 사랑받기 위해 완벽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 순수한 마음이 어떻게 지금의 나를 만들어왔는지, 그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