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나의 첫 집 매수기

내 집 마련


나는 20살 대학시절부터 홀로 타지역 살이를 했다.


결혼하기 전까지 10년을 넘게 홀로 생활을 했다. 혼자 생활하면서 여러 가지 주거 시설을 많이 경험했다. 원룸부터 고시원, 오피스텔, 투룸, 주택의 셋방 등 많은 이사를 다니며 살았다. 주거의 형태도 월세, 전세, 사글세 모두 살아보았다.


24살 교직에 임용이 되고, 나는 내가 원치 않던 먼 곳으로 발령이 났다. 나는 그곳에서 관사를 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근처 대도시에 집을 구했다. 내 집이라는 공간만이 주는 편안함이 좋았고 주말에는 굳이 거기까지 와서 쉬었다. 여러 명이 함께 거주하는 관사는 내 집이 갖고 있는 안정을 주지 못했다. 근무를 하면서 지역이 바뀌고 또 이사를 했다. 20대 어린 나이에 여러 번의 이사는 쉽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렇게 하면서 느낀 것은 내 집 마련에 대한 욕구였다. 정착에 대한 열망이었다.



나는 28살에 내가 원하는 지역에 근무하게 되었다. 앞으로 이곳에서 뼈를 묻으리라 생각하며 올라왔다. 그러면서 제일 먼저 살펴본 것은 집 값의 수준이었다. 내가 새롭게 근무한 지역은 경부고속도로 근처의 수도권 지역이었다. 나는 집을 사기 위해 돈을 적금, 예금으로 열심히 모았다. 치킨 안 먹고, 옷 안사고 절약하여 그렇게 몇 년 동안 종잣돈을 마련했다. 내가 그때 잘한 게 있다면, 전세로 원룸에 산 것이다. 전세로 원룸에 살면서 많은 돈을 저축했다. 번쩍번쩍한 오피스텔에 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나는 아파트에 살고 싶었다. 그동안 공공분양 같은 무주택자를 위한 청약을 무수히 넣었다. 하지만 결혼 안 한 20대에게 청약으로 집을 갖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 당시 내 또래에 친구들은 만나면 주로 차 이야기를 했다. 20대에 집을 사려고 고민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아파트를 사야겠다고 결심했던 중요한 계기가 있었다. 작년에 알아본 24평의 구축 아파트의 가격이 고작 몇 개월간 무려 몇천만 원이나 뛴 것이 아닌가? 지금의 상승률에 비하면 턱도 없이 작은 상승률이지만 그 당시 나는 충격을 크게 받았다. 내가 1년간 돈을 뭐하러 모았나 싶고, 몇 개월 만에 저렇게 많이 오르는데 내가 모으는 월급만으로는 가당치도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대출 이자를 계산해봤을 때 1년에 내는 이자만큼은 무조건 오를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럼 손해 보는 것은 아니지 않나? 어차피 내가 실거주하면 되는데.



나는 몇 달간 지역을 탐색하고 내가 가진 자금에서 적당한 곳을 정했다. 그런 다음 부동산에 들렀다. 부동산 여러 곳을 다니며 집을 보러 다녔다. 이사를 많이 다녔기 때문에 집을 구할 때 어떤 프로세스 인지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어떤 부동산 사장님은 젊은 사람이 와서 집을 산다고 하니 많이 머뜩찮게 생각했었다. 그런 집은 고민 않고 나왔다. 손님을 가려 받는 사람은 중개를 잘해줄 리 만무하다. 내가 중개수수료를 지불하면서 굽실거릴 필요가 없다. 돈을 쓸 때는 내가 가진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첫 집의 선택 기준


내가 생각한 첫 집의 매수의 기준 첫 번째는 역세권이었다. 수도권 아파트의 기준은 누가 뭐래도 역세권이다. 교통이 편한 곳이 직주근접이 가능해 상승할 때 같이 상승하고 하락할 때는 하방을 지지한다고 생각했다. 적은 금액이지만 무조건 역세권 아파트를 고집했다.


두 번째 기준은 소형평형 24평 아파트였다. 당시에는 24평 소형 평형의 아파트가 더욱 평당가가 높았다. 핵가족화, 인구 감소, 1인 가구 증가 등 다양한 인구 이슈를 보았을 때 소형평형이 투자 가치로도 좋았고, 내가 산다 해도 딱 좋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기준은 초등학교이다. 초등학교를 끼고 있는 집, 일명 '초품아'라고 한다. 초등학교를 끼고 있으면 신혼부부나 아이가 있는 사람들의 수요를 기대할 수 있다. 내가 살기에도 좋지만 나중에 팔 때를 생각해서 초품아의 기준은 정말 중요했다.


네 번째 기준은 호재가 남아 있어야 했다. 이 아파트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큰 대형몰이 공사 중이었다. 또한 지하철 노선 추가 연결의 호재가 남아있었다. 호재가 있다면 앞으로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다.



가계약과 대출 실행, 만족감


아파트를 10번 정도 보고, 결국 두 단지를 골랐다. 가격은 같고 연식도 비슷했고 구조도 똑같았다. A아파트로 결정했으나, 그 아파트 세입자가 해외에 간 상태라 한 달은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집을 들어가는 것은 안될 것 같고 말이다. 중개인은 안 보고 계약하자고 했다. 나는 처음 집이라 보고 계약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은 그 집을 보지 못하고 그날은 집에 돌아왔다. 그렇지만 몇억이나 하는 집을 보지도 않고 계약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결심한 후, 빠른 실행이 더 중요하다.)


그러다가 중개인이 추천해준 B아파트 단지로 가보니 더 맘에 드는 것이 아닌가. 인테리어가 맘에 안 들었지만 그건 내가 리모델링을 하면 되니까 괜찮았다.



그 날 바로 계약을 했다. 무엇인가에 홀린 듯 속전속결로 가계약금을 보내버렸다. 가격은 내가 가진 금액에서 무려 대출을 2억 가량 더 빌려야 했지만, 국민주택기금 디딤돌 대출과 보금자리론을 이용하여 담보대출을 실행했다. 여러 가지 우대 금리로 2.4% 정도에 빌렸었다. 처음 해보는 대출은 정말 서류도 많고 복잡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떨리는 것은 큰 금액을 대출했다는 두려움이었다. 나의 대출의 원리금은 내가 월마다 하고 있는 적금액보다 적었다. 그래서 이성적으로 결심했지만, 대출을 실행할 때는 가슴이 벌벌 떨렸다. 집에 와서 녹초가 되었다.


그 날 혼자 치킨을 먹었다. 맥주도 먹었다. 나도 내 집이 생긴다는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자동차를 샀던 날과는 비교가 안되게 행복했다.



저축과 절약 그리고 생각의 변화


그렇게 계약한 아파트는 보증금 몇 천에 월세 80을 내는 세가 끼어있는 아파트였다. 나는 1년 3개월 정도 뒤에 입주를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동안 또 돈을 열심히 모았다. 계산해보니 대출 원리금 중 이자보다 들어오는 월세가 더 많았다. 대략 40 정도? 나는 그래서 월세를 받았던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다 모았다. 또 열심히 절약해 월급이나 기타 소득에서도 많이 저축을 했다. 돌이켜보니 그때 저축한 금액이 내 평상시 2년 치 저축금액과 유사했다.



나는 기분이 울적할 때나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 그 아파트에 들러 내가 계약한 집의 밑에서 쳐다보기도 하고 주변을 둘러보곤 했다. 내 집이 잘 있나 확인도 하고, 단지 내 산책도 하면서 집에 입주할 날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내 집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은 대단했다. 안 좋은 일이 있더라도 나는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자본가라는 마음으로 잘 극복이 되었다. 누군가의 집에 집들이를 갔을 때도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었다. 나도 곧 이 사람처럼 집들이도 할 수 있고, 내 집을 갖게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더 여유로워졌다. 어이없는 민원을 받을 때도 내 집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대략 6년이 지난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잘했던 점이 있다.


첫째, 시작부터 고민, 과정, 결과까지 오롯이 스스로 해냈다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해봐야 머릿속에 시스템이 체득된다. 경험보다 값진 공부는 없다. 내가 그때 매수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막연히 어렵다고 느껴서 아파트 투자는 여전히 두려워했을 것 같다. 혼자 고민하고 임장 하고, 대출 금액을 계산해보고 나의 소득과 지출을 정비하고 모든 과정이 나의 경제생활에 필수적인 행동이었다. 집을 사면서 냉정하게 현실을 돌아봤던 것 같다. 아주 큰 경험이었다.



둘째, 결심 후 실행, 매수까지 빠른 시간 안에 진행했다.


오랜 기간 아파트를 고민하고 알아본 뒤, 아파트의 값이 적정값이라고 생각한 가격이 왔을 때 고민 않고 바로 실행했다. 급매가 나와도 그 가격이 적정 가격인지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충분한 공부가 되었을 때 가능하다. 그 당시 조급하지 않았기에 적정 가격에 매수했던 것 같다.



셋째, 세낀 아파트를 선택했다.


종잣돈이 많지 않은 나로서는 세입자가 주는 월세는 정말 꿀이었다. 그 돈을 고스란히 모아서 나중에 세입자 나갈 때 보증금을 내어주는데 큰 힘이 되었다. 또한 보증금이 끼어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의 초기 자본이 덜 들어가서 내가 지불한 이자는 줄어들었다. 전세든 월세든 세입자의 거주 기간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저축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지금 내 집 마련을 준비 중인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부린이의 생각이지만, 내 집 마련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은 다른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비록 내 지분은 작은 방 한 칸 정도였지만, 주거 스트레스를 없애서 오는 행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지금은 정부 규제에 의해 대출이 상당히 어려운 상태고, 취득세, 보유세, 양도세의 세금 정책으로 인해 매물이 많이 없어진 상황이다. 부동산 시장 전체가 정부의 사상초유의 강력한 규제 때문에 주춤하는 듯한 느낌이다.


그렇지만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한다. 요즘 전세 낀 물건이 거래가 잘 안된다고 한다. 세입자가 갱신청구권을 사용하면, 매수자가 실거주를 못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하지만 그 문제는 계약 만료기간이 6개월 이상 남은 물건을 사면 해결이 된다. 만료 6개월 이전에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하면 세입자는 갱신권을 요구해도 새로운 집주인은 실거주를 사유로 거절할 수 있다. 세낀 물건은 가격이 실거주를 바로 할 수 있는 집보다 훨씬 낮은 금액으로 거래될 것이다. 당장 실거주가 불가능하고,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런 물건을 노려서 시세보다 싸게 사는 대신 거주를 늦추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요즘은 무주택자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다주택자들은 현재 새로운 아파트로 투자를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청약과 줍줍, 그냥 매수 등 아무래도 무주택자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내 집 마련은 늘 지금이 적기다. 그리고 내가 평생 살 집이라고 생각하면 그 집의 가격 등락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오르면 감사하고, 내리면 오랜 시간 함께 거주하면 된다.


집을 사는 순간 자본주의의 자산 기차에 올라타게 된다. 요즘처럼 유동성이 폭발하는 시장에서 실물 자산을 들고 있는 것은 인플레이션을 대응하는 적당한 방법이자, 화폐가치의 하락에서 방어할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다.


내 집 마련의 타이밍은 늘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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