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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냥 Oct 15. 2020

평범함의 역설

평범함은 특별함의 일부분

“걔? 그냥 평범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 이런 평을 듣는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공동체 속에서 튀는 것을 원하지 않아 유행을 따르면서도 막상 평범하다는 말을 들으면 묘하게 감정이 상한다. 눈에 띄는 것을 딱히 원치는 않지만, 그렇다고 특징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은 심정.


사람들의 지나친 이목을 끌기는 싫으면서 마냥 평범하기만 한 것도 싫은, 딱 그런 마음이다. 평범함이란 수식어는 내가 여기 존재하고 있다는 아우성을 담아낼 수 없는 그릇처럼 여겨지는 것 같다. 또한, '특별한 색깔 없이, 특출 난 재능 없이 그저 그런 사람', '군중 속에 있으면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특징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통용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런데 평범함이 좋지 않은 표현일까? 평범한 인간과 무색무취 인간이 동의어인 걸까? 함부로 단정 짓는 시선에서 벗어나려면 평범함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 평범한 게 나쁜 표현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더 자유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이들은 평범하게 보이기를 꺼려한다. 그러면서도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어렵다고 말한다. 평범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평범하게 사는 것이 어렵다는 모순적인 말. 모양은 같지만 의미는 다른 평범함을 말하는 듯하다. 전자는 개성 없이 애매하게 사는 것을, 후자는 큰 고통 없이 먹고사는 데에 지장 없을 정도의 부와 평안함을 가지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처럼 보인다. 쓰이는 상황에 따라 다른 뉘앙스의 의미를 지닐 수 있다면 '평범함'이란 단어 자체가 평범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평범함이라는 이 단어를 우리의 일상에 입혀 보자면, 태양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매일 아침 우리를 비춰주는 햇살은 인식하지 못할 만큼 당연한 일상의 한 부분이다. 만약 태양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어떨까? 아마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너무 당연하게 여겨왔던 부분이라 평범한 빛이라고 느꼈지만 그저 우리가 그 소중함을 친숙하게 여겼을 뿐이다. 매일 그 자리에 있다고 해서, 한결같다고 해서 그 안에 담긴 의미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늘 내 곁에 있을 줄 알았던 주변 사람들이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죽음이나 이별, 유학, 이사 등으로 떨어져 보고 나서야 함께 했던 모든 날들이 소중했음을 느끼곤 한다.   사람과 함께 했던 지나간 하루하루가 당시에는 평범한 일상이었지만, 돌아보니 모두 특별한 추억이었음을 깨닫게 된. 그렇다면 평범함은 특별함의 일부이며 그저 모습을 바꾸어 표현된 단어가 아닐까? 물론, 이건 '사람'이 아니라 '상황'에 평범하다는 수식어를 입힌 예시이다. 이 수식어를 사람에게 입힌다면 어떨까.




작은 어른은 산책길에 보았던 풍경을 사진 속에 담아 언제든 꺼내 보고 싶었다. 고민하던 그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사진을 찍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작은 어른은 마을 광장에 있는 게시판을 통해 12명의 사람들을 모았다. 그들과 종종 만나 자연을 관찰하며 찰나를 담는 일은 생각보다 더 즐거웠다. 작은 어른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다른 어른들이 찾기도 하고, 그들이 관찰하지 못했던 부분을 작은 어른이 알려주기도 하면서 흥미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날도 작은 어른은 사람들과 모여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는 귀여운 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 위에서 총총 걸어가는 모습을 포착했다. 카메라에 담은 새를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작은 어른은 옆 사람에게 말을 붙였다.


“이것 좀 볼래? 엄청 귀여운 새가 찍혔어.”


말을 걸던 작은 어른은 순간 멈칫하며 생각했다.

‘어라? 근데 이런 사람이 우리 모임에 있었나?’


그때 상대방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찍고 싶었는데 날아가 버려서 못 담았어. 순발력이 대단한데? 아, 그러고 보니 우리 처음 이야기해보네. 나는 하얀 어른이라고 해.”


작은 어른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이야기했다.

“뭐라고? 하얀 어른?”


하얀 어른은 그런 표정을 자주 접한다는 듯 살짝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래 하얀 어른. 나는 하얀 어른이야. 누구는 나더러 너무 평범해서 눈에 잘 안 띄니까 색깔 없이 하얗다고 표현하던데 난 하얀 내 모습이 좋거든. 그래서 나를 하얀 어른이라고 부르고 있어.”


작은 어른은 얼마 전 뒷동산에서 만났던 마노아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렇구나, 하얀 어른이라... 내가 얼마 전에 이름이 있는 어른을 만났었거든. 지금껏 봐온 사람들은 전부 그냥 작은 어른들이라 이름이 있는 사람도 신기했는데, 별명이 있는 어른도 있다니 놀랍다.”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 날 이후 작은 어른은 하얀 어른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분명 그 전에는 있었는지도 몰랐지만 한 번 대화를 하게 된 이후로는 하얀 어른이 모임에 나오지 않았을 때마다 그 빈자리를 크게 느꼈다. 




며칠 후,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작은 어른은 카메라를 들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날은 12명 전원이 참석하겠다고 약속한 날이었다. 그는 사진을 찍기 전 삼삼오오 모여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고 있는 작은 어른들 무리에 다가갔다.

"친구들아, 오늘 하얀 어른 안 나왔어? 온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의 질문에 바로 옆에 있던 한 작은 어른이 대답했다.

"하얀 어른? 누구더라... 아, 그 친구? 저쪽! 큰 바위 옆에 있는 작은 어른들 무리 속에 있을 거야."

하얀 어른이라는 말에 잠시 생각하던 그 작은 어른은 이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을 마쳤다.


그가 알려준 곳을 쳐다보니 하얀 어른이 사람들과 어울려 재잘재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그런 하얀 어른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정말 신기했다. 하얀 어른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누구와도 큰 문제없이 둥글둥글하게 잘 어울리고 있었다. 너무 자연스럽게 융화되어 큰 존재감을 느끼지 못할 뿐이었다. 


작은 어른은 하얀 어른을 바라보다가 오늘은 그를 모델 삼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여러 친구들과 어울리며 함께 사진을 찍고 있던 하얀 어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하나둘씩 찍다 보니 어느새 수십 장의 사진이 찍혀 있었다. 찍은 사진들을 확인하던 작은 어른은 그 안에서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평범함이란 저런 거구나.’


그는 나무를 향해 열정적으로 셔터를 누르고 있던 하얀 어른에게 다가갔다.

“있잖아, 하얀 어른아. 네가 하얀 너를 왜 좋아하는지 알겠어. 내가 널 관찰해봤거든. 여기 카메라 좀 같이 봐줄래?”


하얀 어른은 자신의 카메라로 향해 있던 시선을 작은 어른에게 옮기곤 물었다.

“오늘 내가 네 모델이었어? 이거 영광인 걸. 한 번 볼까?”


작은 어른과 하얀 어른은 머리를 맞대고 사진들을 한 장씩 살펴보았다. 신기하게도 그곳에 담긴 하얀 어른은 하얗지만은 않았다. 그는 하얀색의 어른이 아니라 마치 하얀 도화지처럼 보였다. 어떤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파란색으로, 또 어떤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노란색으로, 또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초록으로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쳐다본다면 색깔이 없는 듯 하얗게 보일 수도 있지만, 카메라를 통해 유심히 지켜본 하얀 어른은 분명 주변 상황에 맞게 물들어 있었다. 작은 어른은 그 사진들을 보며 말했다.



“너는 하얀 도화지였구나!”      





평범한 사람이라는 말은 어떤 사람도 될 수 있다는 의미와 크게 모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융화되는 능력이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지금껏 평범함의 역설에 대해서는 고려해보지 않았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라는 누구나 아는 명언처럼, 일상적인 익숙함에 속아 평범함을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평범함은 색깔이 없는 상태도, 향기가 없는 상태도 아니다. 이 단어는 어떤 색깔이든 어떤 향기든 때에 따라 다르게 물들 수 있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이들을 표현해보자면 하얀 도화지 안에 그려진 라고 말할 수 있. 평범한 사람은 다양하면서도 잔잔한 색깔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해 누구와도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 하얀 도화지 같아서 어떤 색깔이든 어떤 그림이든 자연스럽게 소화해낼 수 있는 사람, 패션으로 생각해보면 가장 베이직한 아이템이어서 어떤 옷과 함께 코디에도 잘 스며드는 그런 사람. 이런 사람이 바로 무지개 빛깔의 평범한 사람이다.






평범하다는 말에 더 이상 기분 나빠할 필요는 없다. 그 말에 '내가 눈에 안 띄는 사람인가? 특별하지 않다는 건가?'라는 생각을 할 필요도 없다. 평범함이란 결국 뾰족하지 않아 둥그런 것이고, 가만히 지켜볼 때 포착할 수 있는 특별함이다. 부재할 경우 빈자리를 크게 느끼게 만드는 소중함이기도 하다. 평범함의 의미가 이렇게 다채롭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이라면 이 단어가 무색무취와 동의어라고 말할 수 없게 된다. 오히려 하얀 도화지 같은 평범함 안에 수많은 다양성을 담을 수 있다고 여기게 될 수밖에 없다.


세상에는 이런 역설을 알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그 사람들은 "걔? 평범해!"라는 말로 누군가를 함부로 평가하곤 한다. 이때 평범함의 역설을 인지하지 못한 이들이 내린 부정적인 평가는 그다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함을 기억해야 한다. 단어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하는 말에 어떻게 힘이 실릴 수 있겠는가. 그들은 도화지의 하얀 색깔에만 집중할 뿐, 그 안에 담긴 무지개는 알아차리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은 무지개를 볼 수 있게 된 사람이다. 누군가 나에게 평범하다는 평가를 내린다면 그때는 당당하게 말하자.



"그래. 나 평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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