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율냥 Oct 22. 2020

오늘을 살아

과거와 미래에 집중하는 우리, 현재에는 누가 살고 있는가.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바쁜 하루를 끝내며 잠들기 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하루를 돌아보니 나는 과거에 갇혀 있거나 미래를 쫓아 살고 있었다. ‘내가 그때 왜 그랬지.’, ‘내일모레까지 이거 다 끝내야 하는데...’ 분명 몸은 현재에 있었지만 마음은 다른 시간대에 가 있었다. 마음을 다른 시간에 둔다고 해서 현재가 달라지는 것은 아닌데. 나도 모르게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조급함으로 지금 이 순간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예전에 들었던 전공 수업에서 교수님이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과거에 있었던 일은 수정, 보완이 안 되지만 그때를 떠올리는 지금의 마음은 가능합니다.” 이 문구에 있는 ‘마음’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재라는 시간대의 마음을 뜻한다. 이 마음가짐은 과거뿐만이 아니라 미래에도 적용할 수 있다. 과거나 미래나 지금의 내가 맘대로 닿을 수는 없지만 그 시간들을 떠올리고 있는 현재의 마음은 조절 가능하다. 교수님의 말씀을 듣기 전까지는 과거와 미래에 매여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존재하는 곳과 다른 시간대를 살다 보니 놓치고 지나가는 것들이 정말 많았다. 당시에는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몇 년이 지나서야 보였다. ‘그때 조금 더 즐길 걸. 왜 그렇게 조급해했지?’ 후회와 조급함으로 얼룩진 수많은 내 오늘들이 아쉽게 느껴졌다. 어차피 내가 걱정하고 후회한다고 해서 지금 당장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는데... 활기찬 오늘이 어제를 덮어주고, 최선을 다하는 지금 이 순간이 내일을 그려준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현재를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때 이슈를 불러왔던 책, <미움받을 용기>에 나오는 구절처럼 “지금, 여기”를 살고 싶어 졌다. 






작은 어른은 모처럼 맞이하는 휴일임에도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쉴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 시작해도 늦은 밤까지 일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너무도 피곤한 나머지 그는 조금이라도 더 쉬는 것을 택했다. 물론, 마음은 굉장히 불편한 상태였다. 불편한 휴식을 취하던 그는 결국 쌓여있는 일을 하나둘씩 시작해나갔다. 


바쁘게 몸을 움직이면서도 불현듯 친구가 내뱉었던 말이 떠올라 멈칫거렸다. ‘너는 시간 관리를 정말 못하는구나. 어리석다 정말.’ 처음 하는 일이 익숙지 않았던 과거의 작은 어른은 실수를 일삼았다. 그 과정에서 친구에게 피해를 입힌 적이 있었다. 그는 지금처럼 일을 급하게 처리할 때마다 자신이 저질렀던 실수와 친구의 날 선 말들이 자꾸만 떠올라 괴로웠다.


 '내가 그때 왜 그렇게 못나게 굴었을까...'


할 일도 많은데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까지 밀려들어오자 급기야 그는 화가 났다. 생각해보면 매일이 그랬다. 무언가에 쫓기듯 살거나 무언가를 쫓아 살거나. 그 속에서 후회와 조급함이 번갈아 나타났다. 작은 어른의 오늘은 없었다. 그는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일단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리곤 발길이 닿는 대로 정처 없이 걸었다. 걷고, 걷고 또 걷다 보니 바다를 만났다. 




숨이 쉬어졌다. 탁 트인 바다를 보고 있자니 편안하게 숨을 쉴 수 있었다. 작은 어른은 빨간 등대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고 있던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웅얼거리는 작은 소리를 따라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수면 위로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는 물고기 한 마리가 보였다. 


“안녕! 내 이름은 과거의 조각이야. 너는 왜 어두운 표정으로 앉아있는 거야?” 


작은 어른은 자신을 과거라고 소개하는 물고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과거의 조각? 특이한 이름이네. 나는 작은 어른이야. 맨날 시간에 쫓기고, 쫓으며 사는 게 너무 버거워서 잠시 머리 식히러 왔어.” 


물고기는 수면 위로 튀어나왔다가 퐁당 들어가며 말했다.

쫓아가는 건... 내가 말해줄 수 없지만 쫓기는 거에 대해선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아. 난 과거의 존재니까. 과거라는 시간은 이 바닷속에 있는 나처럼 더 이상 네가 있는 곳에 가지 못해. 봐, 물고기인 내가 네 옆으로 가면 금방 죽어버리지 않겠어?”  


작은 어른은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렇지만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 후회라는 마음으로, 상처라는 아픔으로 날 쫓아온단 말이야. 조금이라도 생각에 빠지면 자꾸만 날 따라와. 그럴 때마다 숨이 막힌다고.” 


그의 말을 들은 물고기가 제자리에서 한 바퀴 핑그르르 돌더니 대답했다.

“저런...! 너는 과거에 살고 있구나. 과거의 시간은 이 바다와 같아. 물고기인 나는 바다에 속해있지만, 사람인 너는 땅에 속한 존재잖아. 그런데 자꾸 물속으로 들어와 살려고 하니까 당연히 숨이 막힐 수밖에.”


작은 어른은 어느새 자세를 고쳐 앉고 물고기가 하는 말에 잔뜩 집중하고 있었다.

“그럼 물고기야. 내가 어떻게 해야 지금을 살 수 있어?”


물고기는 꼬리로 물을 튀기며 말했다.

“바다는 바다대로 두렴. 여기는 내가 지킬게! 가끔 내가 보고 싶으면 슬쩍 와서 봐도 좋아. 네 두 발로 직접 들어오지 않는 한, 바다는 너에게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알겠지?


작은 어른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바지를 툭툭 털고 일어나는 그를 보며 물고기가 한 마디 덧붙였다. 

“해변을 따라서 쭉 걸어가다 보면 노란빛으로 물든 숲이 보일 거야. 거기 사는 미래라는 이름의 새를 찾아가 봐. 오늘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줄 거야.” 





그는 물고기의 말대로 해변을 따라 걸었다. 수평선 너머로 태양이 반쯤 가려지자, 바다에 비친 붉은빛이 반사되어 푸른 숲노란빛으로 물들였다. 작은 어른은 종종걸음으로 빠르게 숲에 닿았다. 


“미래야. 미래야. 어디에 있니?” 


그때 그의 말을 똑같이 따라 하는 앵무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미래야. 미래야. 어디에 있니?” 


작은 어른은 그를 반기며 말했다.

“안녕! 난 작은 어른이야. 과거의 조각이라는 이름을 가진 물고기한테 소개받고 왔어. 네 이름이 미래 맞니?” 


앵무새는 그의 말을 되풀이했다.

“네 이름이 미래 맞니? 네 이름이 미래 맞니?” 


작은 어른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어갔다.

“미래야. 그건 내가 했던 말이고. 네가 오늘을 살도록 도와준다고 들었어. 내가 뭘 하면 좋을까? 난 미래를 쫓아가면서 살고 싶지 않단 말이야. 매일 같이 나중을 대비하려고 열심히 달리고 있다고. 내 무릎 좀 봐. 쫓아가다가 넘어져서 멍투성이야. 네가 나 좀 도와줄래?” 


바지를 걷어 올려 멍투성이 다리를 보여주는 작은 어른에게 앵무새는 또다시 그가 했던 말을 따라 하기만 했다.

“네가 나 좀 도와줄래. 네가 나 좀 도와줄래.”  


작은 어른은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뭐야, 물고기가 말한 새가 아닌 건가?”


걸음을 돌려 다른 곳으로 향하던 그에게 어디선가 삐딱한 자세의 딱따구리 한 마리가 나타나 말을 걸었다. 

“이봐 작은 어른. 내가 아까부터 쭉 지켜봤는데 말이야. 저 앵무새가 미래 맞아. 그리고 쟤는 네가 하는 말만 계속 따라 할 걸? 네가 현재에서 하는 일들이 곧 미래가 되는 거니까.”


작은 어른은 딱따구리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런 그를 보며 딱따구리는 설명을 덧붙여 말했다.

“네가 하는 말들을 미래가 따라 하기만 하지? 미래는 앵무새야. 네가 가르쳐준 말들만 할 수 있다고. 지금 작은 어른 네가 하는 말들을 미래가 배우는 거야. 아직도 이해가 안 되니? 네가 미래를 쫓아가는 게 아니라 이끌고 있는 거야.”   


작은 어른은 그제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딱따구리야. 오늘을 사는 게 어떤 걸 뜻하는지 알겠어. 과거는 그대로 두고, 미래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것.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을 하되,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 그런 오늘이 쌓여 내일이 되는 거네!”


딱따구리는 삐딱한 자세를 고쳐 잡고 말했다.

“그래. 이제야 말이 통하네.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어. 오늘을 살려면 지금을 살아야 하지. 지금을 산다는 건,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거야. 네가 오늘 해야 할 일을 미루고 나와 이야기하고 있지만, 지금 내 말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작은 어른은 화들짝 놀라 말을 더듬었다.

“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어? 맞아 나 내일까지 끝내야 하는 일이 있어...!” 


딱따구리는 씩 웃었다.

“내가 어떻게 알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야. 이제 너의 ‘지금’은 밀린 일들을 하는 것이잖니? 늦었으니까 얼른 돌아가 보도록 해.” 


작은 어른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했다. 

‘그래. 내일까지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보자. 과거의 나는 서툴렀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으니까.’ 




<미움받을 용기>에서는 인생을 선이 아닌 점으로 표현한다. 선처럼 보이는 인생이 가까이서 보면 무수히 많이 찍힌 점들이라는 말이다. 만약 삶이 선이라면 전부 연결되어 있기에 과거가 현재를 크게 좌우할 것이고 미래에까지 큰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오늘을,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다. 어제 넘어졌더라도 오늘은 그렇지 않을 수 있으며 오늘 넘어졌더라도 내일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을 살며 내일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야 한다.



주도적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스러울 수 있다. 주도적인 삶이란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며 나아가는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를 바꾸는 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다. 미래를 지금 당장 맘대로 주무르는 것도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늘을 살며 지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전의 상처가, 후회가 내 발목을 붙잡으려 쫓아올 때,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자신을 쫓아오라며 손짓할 때 지금 집중해야 하는 일을 하며 이 순간에 집중하도록 하자. 


내가 속한 시간대는 언제나 현재니까          


이전 11화 행복안경으로세상을 바라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