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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냥 Oct 19. 2020

행복안경으로세상을 바라보다

작은 어른이 묻습니다. 당신은 행복한가요?

“아, 진짜 짜증 난다.”, “너무 힘들어.”, “이걸 내가 왜 해야 돼?”

사람들의 일상적인 대화에 귀 기울여보면 부정적인 말들이 참 많이 쏟아져 나온다. “나 정말 행복해.”라고 말하는 사람보다는 힘들고 괴롭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더 많다. 우리는 왜 행복하지 않은 것일까. 내게 주어진 행복은 왜 다 증발해 버린 느낌이 드는 것일까. 행복이 대체 뭔데...?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봤다.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인가요?”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했다. “내 명의로 된 건물이 있었으면 좋겠어. 가만히 앉아서 돈 벌고 그걸로 여행 다니면 진짜 행복할 것 같아.”, “내가 목표하고 있는 직장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행복할 것 같아.”,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게 행복 아니야?” 모두 “~한다면 행복할 거야.”라는 대답이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를 둘러싼 환경이 ~이라는 조건을 충족한다면 행복할 거야."라는 대답이었다.


주변에 내 행복을 기대다 보면 대체 언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걸까. 기대하던 대로 되지 않는다면 행복하지 않은 것일까? 우리가 기대고 있는 이 행복의 기준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내부가 아닌 외부로부터 무언가를 가져야만 한다는 것. 이것들이 있다면 진정으로 행복할까? 모두가 입 맞춰 말하는 것처럼 돈이 많고, 좋아 보이는 자리를 얻어야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행복’의 기준마저 사회의 잣대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닌가. 





작은 어른이 사는 마을에서 요즘 유행하고 있는 물건이 있다. 바로, 행복안경. 그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면 행복해진다고 한다. 도시의 중앙에 위치한 안경점에서 팔고 있는 그 안경은 큰 이슈를 끌고 있었다. 건물 위의 커다란 전광판도, 버스나 택시의 광고판도 모두 행복안경을 홍보하는 내용들로 가득 채워졌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그 안경을 사서 끼곤 행복하다고 말했다. 작은 어른의 옆집에 살고 있는 이웃집 작은 어른도 역시 유행에 맞춰 그 안경을 끼고 다녔다. 하루는 그가 작은 어른의 집에 놀러 왔다.


“이봐, 작은 어른. 이 안경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참 행복하고 좋아. 너도 어서 하나 사도록 해. 다 품절되면 어쩌려고 그래?”


작은 어른은 의아하다는 듯 답했다.

“그 안경 하나로 세상이 행복해 보인다고? 그게 가능할지 난 잘 모르겠어.”


이웃집 작은 어른은 그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쯧쯧. 네가 안 써봐서 그래. 밖에 나가 봐. 다들 이 행복안경을 쓰고 다닌다고. 너만 없을 걸?”


작은 어른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이웃집 어른이 하는 말을 흘려들었다. 하지만 내심 신경 쓰이는 상황에 놓이곤 했다. 산책을 나갔을 때도, 모임을 나갔을 때도 심지어 직장에 나갔을 때도 대부분의 작은 어른들이 행복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안경을 착용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나도 한 번 사볼까...’



결국 작은 어른도 도시의 중앙에 위치한 그 안경점에 가서 행복안경을 샀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안경을 썼는데도 뿌옇게 보일 뿐, 별 다른 변화는 없었다.

‘행복을 볼 수 있는 안경이라면서... 왜 안 보이는 거지?’


작은 어른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안경을 쓰고 이웃집 작은 어른에게 찾아갔다.

“친구야. 이 행복안경 말이야. 행복을 볼 수 있는 거 맞아? 나는 뿌옇게만 보이는데...”


잠시 정적이 흐르고, 이웃집 어른은 그의 말에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는 대답했다.

“... 너도 그래? 사실 나도 그래. 근데 다들 그 안경을 쓰면 행복하다고 하니까. 나도 그냥 그렇다고 한 거야. 나만 튀는 어른이 될 순 없잖아.”


그의 말을 잠자코 듣던 작은 어른은 목소리를 낮추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근데 말이야. 우리가 이상한 거면 어떡하지? 사람들은 그 안경 덕분에 다들 행복하다잖아. 어쩌면 너랑 내가 행복안경으로 행복해질 수 없을 만큼 불행한 걸 수도 있잖아.”




작은 어른은 이웃집 어른과의 찝찝한 대화를 마치고 나오면서 뒷동산의 마노아를 떠올렸다. 마노아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는 뒷동산으로 한달음에 달려갔고 역시나 그곳에는 마노아가 나무 위에 올라앉아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마노아! 이리 내려와 볼래?"


마노아는 노래를 멈추고 작은 어른을 바라봤다.

"안녕 친구! 멋진 안경을 샀구나."


작은 어른은 해맑게 웃으며 답하는 그에게 숨 쉴 틈 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있잖아, 이건 행복안경이라는 건데 혹시 들어봤니? 너는 없는 것 같은데 이게 요즘 유행하고 있는 물건이거든. 행복을 불러오는 안경이라서 모두들 사서 끼고 있어. 근데 나는 이걸 써도 하나도 안 행복하단 말이야. 대체 왜 그럴까? 내가 너무 큰 불행을 가지고 있어서 그럴까? 아니면 너무 수준이 낮아서 그런 걸까? 내가 이상한 거면 어떡하지?"


마노아는 나무에서 내려와 숨이 넘어갈 듯 말하고 있는 작은 어른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진정시켰다. 그리고 행복안경을 끼고 있는 그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친구야, 너 하나도 안 이상해. 근데 이거 네 시력에 맞춰서 나온 거 맞니?


작은 어른은 그의 말에 한풀 꺾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이건 모두 똑같은 도수로 되어있는 안경이야. 다들 그렇게 쓰더라고. 그런데 나랑 이웃집 어른만 좀 이상한 것 같아. 오히려 앞이 뿌옇게 보인단 말이야."


마노아는 작은 어른이 쓰고 있는 행복안경을 벗겨내며 빙그레 웃었다.

"봐, 이제 잘 보이지? 안경은 각자의 시력에 맞춰 써야 하는 거잖아. 어떻게 모든 사람이 똑같은 도수의 안경을 끼고 잘 보인다고 말하겠어? 행복은커녕 앞도 제대로 안 보이겠는걸. 저 안경 도수와 네 시력이 안 맞을 뿐이야."


작은 어른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을 지우지 못한 채 답했다.

"그럼 그 안경에 내 시력을 맞춰야 하나? 사람들은 모두 그 도수가 맞는다고 하잖아."




마노아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작은 어른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무언가를 쫓아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을 가지면 여유는 사라지고 눈 앞에 보이는 문제에만 집중하게 되지. 그럴수록 그 문제는 더욱 문제가 되고 말 거야. 다른 사람들이 어떻든 무작정 따라갈 필요는 없어. 너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가야 여유를 되찾고 너의 행복을 마주하게 될걸?"


작은 어른은 입을 삐죽이며 물었다.

"그렇게 하면 정말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 나도 행복이라는 거 찾고 싶은데."


그의 말에 마노아는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행복안경을 만지며 이야기했다.

"내가 얼마 전에 관찰에 대해 이야기했었지? 행복은 너의 일상을 관찰하며 발견할 수 있어. 간간이 쟁취해서 얻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무언가를 채워 넣어서 행복을 느끼려고 하면 계속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을 걸. 일상에서 행복을 발견할 줄 안다면 외부에서 채워 넣지 않아도 행복을 느낄 수 있지."


그의 말을 곱씹고 있는 듯 보이는 작은 어른에게 마노아는 몇 마디 말을 덧붙였다.

"그러려면 행복안경이 아니라 너의 주관이라는 마음의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봐야 해. 그 주관은 여유를 가질 때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거야. 여유주관이 합쳐지면 주변 사람들의 말을 쫓지 않더라도 불안함을 느끼지 않게 되거든. 그렇게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으면 내 일상에서 감사한 것들도 많이 보이게 되지. 그 감사가 행복으로 변하기도 하고."


작은 어른은 비밀이라도 들은 듯 소곤소곤 말했다.

"여유, 주관, 나만의 속도와 방식이라... 행복은 그 길에서 발견할 수 있고! 얼른 이웃집 어른에게도 알려줘야겠어."


마노아는 걸음을 옮기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소리쳤다.

"처음에는 마음의 창에 집중하는 게 잘 안 될 수도 있어!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매일 조금씩 연습해나가면 점점 그 힘을 느끼게 될 거야!"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행복은 규격화된 행복을 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누구나 우러러보게 되는 화려한 삶, 돈이 많아서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 삶, 내가 원하는 자리를 이른 나이에 쟁취하는 삶, 누가 봐도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살아가는 삶.’ 이 규격화된 행복을 파헤쳐보면 결국 타인의 시선이나, 단단하지 않은 가치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마음이 숨겨져 있다. 타인이 나를 인정하고 우러러봐야 행복하다고 느끼는 마음. 돈이나 명예처럼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가치를 붙들어야 행복하다고 느끼는 마음. 외부로부터 나를 채워가려는 그런 마음들이 규격화된 행복에 내포되어 있다.


행복을 외부로부터 쟁취하려고 한다면 아무리 애써도 진정한 만족감을 느낄 수 없다. 규격화된 행복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얼마 가지 않아 또 다른 부분이 눈에 들어올 것이고, 그것을 채워 넣지 않는다면 행복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채워지지 않는 마음속에서 허우적 대며 잔뜩 주고 있던 힘을 서서히 풀어보자. 온몸을 경직시켰던 그 힘을 풀고 내 삶을 바라본다면, 쟁취하지 않더라도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나도 모르게 세뇌된 기준을 따라가지 않고 나의 속도로 여유를 찾게 되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일상의 행복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에서 말하는 행복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더라도 괜찮다. 그 기준은 절대적이지 않다. 모두가 말하는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더라도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님을 기억하자. 우리는 저마다 다른 상황에 놓여 있기 에 행복을 느끼는 순간들도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내 시력에 맞는 주관을 통해 세상을 선명하게 바라본다면 그 속에서 감사할 부분들이 보이게 될 것이다.


감사는 내가 가진 것에 집중하게 만들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 받은 친절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미 가지고 있는 것과 누리고 있는 것에 집중하여 행복을 발견하도록 해준다. 행복은 이렇게 힘을 풀고 여유를 가진 채 감사할 때 발견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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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행복안경 없이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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