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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듕쌤 Jun 01. 2023

내 인생 최악의 연애 끝에 우울증이 찾아왔다.

나를 되찾기 위한 여정.

2019년 9월 13일.

나의 장거리 연애가 끝이 났다. 나를 괴롭게 하던 날들을 종결짓고 싶었고 오랜 고민 끝에 이별을 통보했다. 상대도 힘들었는지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나는 그와 '언어교환'을 하며 만났다.


당시에도 영어를 곧잘 했지만 더 잘하고 싶은 마음 2할과 영어를 하는 남자친구를 만나고 싶은 마음 8할을 더해 외국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언어교환 어플로 친구도 만들고 남자친구도 만들었다.


남자는 순수 한국인의 핏줄로 태어났지만 어릴 적부터 캐나다에서 자라고 한국말도 거의 할 줄 모르는, 말 그대로 검은 머리의 외국인이었다.


당시 그는 로스쿨을 준비하며 잠시 한국에 들어와 있었는데, 그저 그를 좋아하는 마음에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초긍정 파워로 정말 내 모든 걸 쏟아낸 연애를 했었다. 거의 매일을 함께했고, 미래를 약속했다. 그도 같은 마음인 듯했다.


하지만 그가 캐나다로 떠나고 상황은 180도 변했다.


13시간이라는 시간차는 도저히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일을 끝마친 시간에 그는 자고 있었고 그가 일어날 시간에 통화를 못하면 그의 인턴십이 끝날 시간까지 기다려야 했지만 그땐 이미 내가 자야 할 시간을 한참 넘긴 다음이었다.


그에게 나는, 더 이상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계속해서 연락을 요구하고 싸우는 날들이 계속됐다. 한국에서와 달리 캐나다엔 친구들도 잔뜩 있었고 할 것도 많으니 자연스레 나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나는 결국 기다림에 지친 끝에 그를 만나러 직접 캐나다로 날아갔다.


하지만 역시, 잠깐의 만남이 상황을 돌려놓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때 헤어지는 게 맞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고 해야 할까? 나는 그를 위해 뭐든지 할 준비가 되어있었지만 그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고 텅 빈 마음으로 한국에 돌아와야 했다.



진짜 지옥의 시작.


이별을 고한 뒤, 힘든 시간은 끝이라고 생각했던 건 큰 오산이었다. 눈물 없이 그냥 지나가는 날이 없었고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은 나의 일상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연애를 하며 상대에게 많은 의지를 하던 나였기에 와 헤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건지, 아니면 그 사람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던 건지(이별통보는 내가 먼저 했지만 상대가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버림과도 같았다) 우울증은 하루하루 더 심해져만 갔다. 난생처음으로 심리상담도 받아보았지만 나아질 기세는 보이지 않았다.



최후의 수단으로 택한 여행


그렇게 일주일.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가만히 있어서는 나아질 것이 없다고 생각했고 일하고 있는 센터의 원장님에게 한 달 쉬겠다며 휴가를 얻어냈다. 일반적인 직원이라면 할 수 없었겠지만 당시의 나는 원장의 전폭적 신임을 얻고 있었기에 한 달 후 꼭 돌아온다는 약속을 하고 무급 휴가를 받아냈다.


'근데... 어디를 가야 하지?'


사람이 아닌 자연을 보고 싶었다.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스위스 등 자연경관으로 유명한 나라들이 모두 나의 후보지였지만 혼자 여행이라 언어가 통하는 영어권 국가가 좋을 것 같았고, 나의 우울함의 원인이 된 그 사람이 있는 캐나다는 제외하니 호주가 나의 최종 목적지가 되었다. 그렇게 티켓만 끊고 무작정 호주로 날아갔다.



이제 뭐 할까?


도착해서 뭘 할지 찾아야만 했다. 정말 아무런 계획 없이 떠난 여행이었기에 첫 이틀 숙소 외에는 정해진 것이 없었다. 혼자 무작정 걷기도 하고, 1일 관광 패키지를 신청해 다니기도 했다.


여행 2주일 차, 출발 전부터 관심을 가졌던 타즈매니아 Tasmania라는 거대한 섬의 현지 투어를 신청했다. 아무 생각 없이 5일짜리로 신청했는데 1일 1 트래킹(등산)이 포함된 생각보다 고된 스케줄의 투어였다. 하지만 애초에 많이 걷고 보겠다는 마음으로 새 트래킹화를 사 신고 간 나에게는 힘든 일정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첫날 마주한 Cradle Mountain.


어려서는 아빠를 따라 산에 다니는 게 그렇게도 싫었다. '뭘 보겠다고, 뭐가 좋다고 자꾸 오르는 거지?' 그렇지만 서른이 넘어 산 정상위에 오른 나는 비로소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호주 크레이들 마운틴 정상에 오른 나


자연 속 나를 느끼다.


거대한 자연 한가운데, 불어오는 바람 속에 서 있자니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런 게 살아있다는 느낌이구나.'


지금껏 수많은 취미들을 가져봤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그냥 재밌고 좋다의 차원을 넘어서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나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나이 서른이 넘으면 싫어하던 산도 좋아하게 된다고들 하던데.


사람에 질려서일까? 복작복작한 도시에서 사람에 치여 살던 우리는 온전히 나를 안아주는 무언가가 그리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산을 만났고 혼자인 게 두렵지 않아 졌다.


삼각대 하나 들고 혼자 산에 가던 시절


그리고 이듬해. 나는 1년 동안 78회의 등산을 했다.


하루에 두 개의 산을 오르기도 했고 일주일에 세 번씩 산을 찾기도 했다.


그런 열정 덕분에 인플루언서가 되었지만 그보다도 더 큰 소득은 따로 있었다. 바로 혼자서도 잘 살게 된 것.


이때부터 난 더 이상 나를 그럴싸해 보이게 만들 무언가(명품이나 돈많은 남자친구 같은 것)를 찾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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