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다닐 당시엔 돈 걱정을 그닥 해본 적이 없었다. 한 끼에 몇만 원씩 하는 식사도, 한 번에 몇십만 원 드는 공연도 '어차피 월급 안에서 해결되니까'라는 마음으로 펑펑 써댔다. 월급을 굳이 절약하지 않더라도 조금씩 남는 돈과 상여금만 모아도 최소한의 돈이 모이기는 했다.
하지만 프리랜서는 달랐다.
연봉 4000을 기준으로 똑같은 250을 번다고 쳐도, 야근수당도 없었고, 특근 수당도 없었다.
복지로 제공되는 얄팍한 혜택도 없었고, 회사가 내 국민연금의 반을 내주지도 않았다. 건강보험료는 지역가입자로 돌아가면서 두 배 이상 늘어났으며(프리랜서는 개인 사업자와 같은 기준을 적용받는다) 상여는 당연히 없고, 퇴직금이 쌓이지도 않는다. 회사 식당도 없으니 식대는 오롯이 내 몫이었다.
유급휴가는 당연히 없다. 내가 일한 만큼 돈 버는 세상에서 일을 하지 않는데도 돈이 들어올 구석이 있다면 아마 상당한 자본가임에 분명하다.
즉, 노동=수입이 성립하는 것.
따라서 일을 더 하면 수입도 똑같이 늘어난다. 지금 하는 일의 2배를 하면 수입도 2배, 혹은 그 이상이 된다.
하지만 행복을 손에 쥐기 위해 직장을 그만둬놓고 오로지 눈앞에 놓인 돈만을 위해 내 일상을 희생하고 싶지 않았다. 딱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수업만을 했고, 수입도 적당한 수준에 머물렀다.
예전에는 생각도 안 했던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들이 너무도 버겁게 느껴졌다. 보험료, 공과금, 전세대출 이자 등이 나가고 남는 돈으로 아끼고 아끼고 살아야 겨우 한 달에 100만 원을 저축할 수 있었다.
이 마저도 수업이 줄거나 휴가를 다녀와 월급이 줄어든 달에는 절대 모을 수 없었고, 더 많은 돈을 번다고 해도 상황이 훨씬 좋아지지는 않았다. 버는 돈은 직장을 다닐 때와 비슷하거나 더 많은것 같아도, 남는 돈은 훨씬 더 적었다.
그래도 불안하지 않았다. 필라테스를 배우러 다니면서 몇천만 원을 썼고, 모은 돈이 술술 날아가는 걸 보아도 아무렇지 않았다.
'돈을 위한 삶'이 아닌 '삶을 위한 직업'
우리는 아주 어려서부터 숫자를 좇는 것이 아주 당연시되었다. 그 숫자의 맨 앞에 서있지 않는다면 뒤처진 사람처럼 느껴지도록 사회에 의해 조장당했지만대체로 그 믿음에 대한 의문조차 갖지 않는다.
100억 자산가
1등 / 상위 1%
월 1000만 원
연봉 1억
이런 숫자들을 목표로 살아야 한다고 배워왔고 나는 그 시스템을 착실히 따라왔다. 물론 목표로 했다고 모두 이루지는 못했지만 남들이 보기에 나쁘지 않은 위치들에 올라섰다.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연봉을 받고 돈 많은 남자를 만나면 성공한 건가? 그것은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가?
실상은 반대였다.
남들에게 보여줄 그럴싸한 '숫자'가 있을 때의 난 늘 초조했고, 아팠으며, 우울했다. 그 숫자들을 놓으면 안 된다는 압박에 어떻게든 그것들을 붙들고 있었지만 정작 진짜로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는 알지 못했다.
마치 쓸모도 없는 물건들이 집안에 가득 차 집안이 쓰레기장이 되고 내 몸을 뉘일 공간조차 사라져 버린 사람들처럼 내 마음속 공간은 내게 필요하지 않은 것들로 가득 차고 있었다.
내 마음속 쉴 공간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일본 드라마 [집을 파는 여자]에서도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물건을 하나씩 버리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홀가분해진 한 남자가 갖고 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사는 장면이 나온다. 갖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책임질 것이 줄어든다는 것이 된다.
집을 정리하듯 인생을 정리했다. 내가 진짜 원해서 하고 있는 게 아닌 '직장'을 우선적으로 정리했다.
그럴싸한 남자친구들도 정리했다. 번듯한 직장을 갖고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스펙을 가진 사람이 아닌 사람의 성품과 마인드를 보기 시작했다.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여기저기 연락을 하던 것을 멈추니 자연스레 친구들도 정리가 되었다. 진짜 친구들은 가만히 있는 나에게 먼저 연락을 해오거나 내가 오랜만에 연락을 해도 받아주었다.
인생에 '빈 공간'이 생겨나니 새로운 것들로 채울 여유가 생겼다.
글을 쓰고, 요리를 하고,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다.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땐 키우기만 하면 죽어나가던 식물들이 쑥쑥 자랐다. 마음의 여유와 함께 행복도 점차 커져갔다.
지금은 또다시 이것저것 채운 것으로 인생이 가득 차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내가 감당 가능한 수준 안에 들어있다. 일도 적당히, 운동도 적당히. 뭐든 적당히 할 수 있는 딱 알맞은 상태.
언젠가 이 삶이 지겨워지면 또다시 내 인생을 새롭게 디자인해서 행복을 위한 새로운 플랜을 시작하게 되겠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
난 이제 더 이상 행복이 뭔지도 모르던 학생도, 뭘 위해 삶을 사는지 모르고 일만 하던 직장인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