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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Jul 27. 2021

서울에서 여름나기 VS 제주도에서 여름나기

-에어컨 없이35도의 여름을 보내는 우리의 자세-

서울의 중심 광화문 주변을 돌아보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어있는 서울의 구도심은 계절에 관계없이 언제나 고색창연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 필자의 브런치에도 겨울의 광화문이 주는 소중한 추억의 힘에 대한 글을 쓰기도 했지만, 광화문과 경복궁 그리고 소격동 일대가 주는 문화의 힘은 참으로 크다.      



600년 전에 이곳을 도성으로 정할 때 무학대사와 태조 이성계가 이곳 땅의 신비로운 힘을 미리 알아챈 걸 수도 있고, 아니면 지난 수 백 년의 세월 동안 우리 선조들이 쌓아 올렸던 문화의 힘이 이 일대를 이토록 넉넉한 아름다움으로 채워왔던 건지도 모른다.      


어쨌든 필자는, 북악산을 배경으로 밤 풍경을 뽐내는 광화문, 그리고 봄의 신록과 여름 궁궐의 무성한 나무들, 가을 경복궁의 은행나무 잎들이 만드는 황금빛 융단과, 눈 덮인 궁궐 지붕과 알록달록 단청을 하지 않아도 단아한 아름다움을 뽐내던 연경당의 그늘진 처마 밑을 걸을 때에 무한한 아름다음을 느꼈었다.


또한 가을의 높은 하늘과 겨울의 낮게 드리운 눈구름 아래, 혹은 여름날의 하얀 뭉게구름을 띄워놓은 파란 하늘 아래 놓인 북촌 한옥의 지붕들이 만들어 놓은 정답고 아름다운 곡선에 쉽게 취하곤 했다. 물론 경복궁 주위의 많은 미술관들이 주는 다양한 문화적 혜택에 대해서도 늘 감사했었다.    

  

<무더운 여름 하루를 보낸 광화문과 경복궁이 북악산을 배경으로 밤의 어둠 속으로 들어왔다. 광화문 3거리를 달리는 차량들과 횡단보도를 건너는 시민들은 한낮의 더위에 지쳤는지 발걸음이 느릿느릿하다.>


올 겨울에 제주도에서 서울로 올라오고 나서 첫여름의 무더위가 2주째 계속되자, 어지간해서는 ‘이까짓! 서울 더위쯤이야~’ 하며, 무시하던 필자도 광화문 일대의 힘을 빌려 더위를 피해보려는 유혹을 뿌리칠 수 없게 되었다. 필자가 월세를 내며 머물고 있는 빨간 벽돌집의 3층 방은, 외관에서 볼 때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서 가장 예쁜 집중의 하나이지만, 여름의 무더위를 피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곳이다. 특히나 나처럼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오전 9시가 되기 전부터 이미 30도가 훌쩍 넘어가는 요즘의 여름 기온에, 필자의 방은 오전 10시부터 슬슬 달궈지기 시작해서, 오후 3~4시경엔 절정에 이른다. 잘 달궈진 빨간색 벽돌들의 온도가 실내 벽까지 타고 들어와서 겨울철 장작을 잘 지펴놓은 온돌처럼 밤새 따끈 거리는 게 군고구마도 구워낼 정도이다.     

 

덕분에 필자의 하얗고 예쁜 얼굴과, 마동석 뺨치는 굵은 팔뚝의 근육들은 숯불구이 위의 삼겹살처럼 익어갔다. 이렇게 찜질방 못지않은 환경에서 선풍기 하나로 버텨내고 있다 보니, 선풍기가 고맙다기보다는 마치 불꽃을 더 크게 키우려는 밑 바람 같아서 오히려 선풍기를 미워하게 된다.      


작년 여름을 제주도에서 에어컨 없이 지낼 때도 이렇게 덥지는 않았다. 그래서 필자는 제주도보다 서울의 여름이 훨씬 덥다는 걸 체험으로 알게 되었다. 물론 자연환경이 만드는 객관적인 기온이나 습도는 제주도가 더 높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도심의 빽빽한 빌딩들에서 쏟아내는 냉방기계들의 열기와 아스팔트 위의 차량들이 만들어 내는 배기가스로 인한 열섬현상으로 인해서, 서울의 여름을 견뎌내는 건 제주도 서귀포시보다 훨씬 더 어렵다.      


제주도의 경우 여름 한낮에 기온이 많이 올라서 견디기 힘들다 싶으면, 어디선가 바닷바람이 불어와서 더위를 데려갔고, 이어서 바닷바람이 그친다 싶으면 다시 오름과 동네 숲을 지나온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서 열기를 식혀주었었다. 특히 심야의 열기를 비교하면 제주도가 서울보다 확실히 더 낮았는데, 서울 도심의 열섬현상은 밤에도 강남의 아파트 단지를 비롯해서 모든 집들이 에어컨을 틀어대니까 좀처럼 식지 않는다. 하지만 제주도의 경우 인구밀도가 상대적으로 훨씬 낫다 보니, 서귀포시 표선면의 여름밤에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틀지 않고도 더워서 잠을 못 이뤘던 기억은 없다.   

 

<한여름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항에 밤이 오면 바다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고, 낮에는 한라산에서 오름이나 동네 숲까지 내려온 바람이 더위를 식혀주었다>


서울 평창동은 북한산 아래 동네라서 그나마 시원하다는 평을 듣지만, 지난 일요일 밤부터 월요일 새벽까지는 안의 온도가 떨어지지 않아서 밤새 필자가 누워있는 침대 위로 샤워기의 온수 같은 땀을 흘렸었다. 오후 내내 용광로 같은 열기의 태양볕을 고스란히 받아서 찜질방처럼 달궈진 집안의 열기는 이튿날 새벽 5시까지 이어졌고, 새벽 어스름에 열기가 빠져나가서 좀 살겠다~ 싶으면, 다시 태양이 떠올랐다.     

 

서울 더위와의 싸움에서 마침내 항복을 하고, 필자는 광화문의 경치 좋은 카페로 작업 공간을 옮기기로 했다. 아마도 8월 셋째 주까지 한 달만 더 이렇게 카페 생활로 버티면 여름이 지나지 않을까? 하지만 광화문 일대는 서울 중심지라서 주차비가 걱정되었다. 어제 하루 나름의 방법으로 실천한 주차비를 아끼는 묘안(?)은 아래와 같다.         

            

1. 경복궁 주차비는 최초 2시간에 3,000원
(국가시설이라서 저공해 차량에 대한 50% 감면 혜택을 받아 1,500원으로 할인)
2. 광화문 테라로사 카페 음료 주문 시 2시간 무료.
3. 광화문 폴 바셋 음료 주문 시 2시간 무료.
4. 이렇게 6시간을(경복궁 + 테라로사 + 폴 바셋) 주차비 1,500으로 버텨내면,
오후 6시 정도가 되어 기세 등등하게 쨍쨍하던 해도 7~8월 깻잎처럼 늘어진다.  
5. 이어서 광화문 일대는 직장인들이 퇴근한 이후, 오후 5시 30분이 넘어서 입차를 하면
3시간 무료 주차 시간을 주는 건물들이 몇 있으니 해당 빌딩으로 저녁을 먹으러 다시 이동.
6. 오후 6시부터 주차비 걱정 없이 저녁 9시까지 업무를 보고 난 후, 서울 무더위로부터 나를 지켜준
광화문에서 퇴근해서 에어컨이 없는 평창동 빨간 벽돌집 3층으로 향한다.


쉽게 말해서 광화문 근처 카페와 식당을 2시간마다 돌아다는 거다.

이렇게 하면 주차비를 거의 내지 않고 무더운 오후와 오후와 별반 다르지 않은 도심 속 밤의 열기를 피할 수 있다.    

  

오늘 하루도 무더위와의 전쟁에서 잘 버터 냈다.

그런데 코로나 19 상황 속에서 이렇게 카페를 옮겨 다녀도 되나?

잘 모르겠네...ㅠㅠㅠ


<한라산 뒤로 뉘엿 뉘엿 저녁 해가 넘어가던 서귀포시 표선면 우리 동네의 일몰은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밤은 고요하였었다>

<도심의 열섬현상과 차량의 배기가스 속 무더운 여름밤이긴 하지만, 그래도 광화문 일대의 밤이 아름다운 건 어쩔 수 없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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