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메모

-사랑하는 아들, 보아라-

by 이안

한 달 만에 어머니에게서 다시 소포가 왔다. 이번에도 내게 보내는 메모와, 여러 가지 밑반찬을 보내셨다. 얼마 전 부탁드렸던, 법정스님 수필집 5권과 함께. 어머니의 짧은 메모를 보고 많이 울었다. 속이 상해서, 죄송해서, 그리고 감사해서.


어머니는 내게 ‘우리 아들이 고생이 많구나’로 메모를 시작하셨지만, 나는 제주에 살면서 한 번도 내가 고생을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다만 서울에 있는 아이들 생각에 많이 외로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나의 형벌 같은 것이니, 용서를 구하는 동안에는 받아들이겠다고 마음먹었기에, 괴로움의 대상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귀찮아도 밥은 꼭 챙겨 먹어라’면서, 마늘장아찌, 더덕장아찌, 장조림, 멸치볶음, 매실진액, 오징어볶음, 깻잎무침, 쪽파 모종을 보내주셨다. 지난번에 너무 많은 음식을 보내주셔서, 어머니 고생하시는 게 안타까워 ‘서울 친구들이 보내준 음식도 많아서, 더 이상 냉장고에 넣어둘 칸이 없으니 이제 그만 보내시라’고 말씀드렸었다. 그러자 이번엔 밀폐용기가 아닌 작은 비밀봉투에 밑반찬을 싸서, 냉장고의 빈 공간에 넣을 수 있게 보내셨다.


그냥 밀폐 용기에 넣으면 편하셨을 텐데, 배송 중에 비닐봉지가 터지기라도 할까 봐, 여러 번 싸고 또 싸시고, 공기층까지 만들어서 보내준 것 때문에 더 속이 상해서 눈물이 났다. 어머니가 힘들게 음식 만들어 보내실까 봐, 냉장고가 가득 찼다고 말씀드린 건데 어머니만 더 고생스러워진 거였다.


어머니는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드시고, 배송 중에 혹시라도 비닐봉지가 터질까 꼼꼼히 비닐봉지를 묶으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제주에서 막내아들이 혼자 밥 해 먹으며 산다고, 보마 마나 또 우셨을 텐데, 어머니 생각을 하니, 죄송한 마음에 나 역시 또 눈물이 났다.


제주에서 혼자 살겠다고 서울을 떠나온 건, 내가 아내와 아이들 생각에 괴로워하지 않고,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살아보고자 한 결심인데, 어머니에게는 너무도 큰 상처가 되고 있는 거였다. 나보다 네 살 많았던 친형이 죽은 1976년의 여름 이후 어머니는 한 번도, 내가 어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오셨다. 형이 죽던 해의 일곱 살 어린 막내아들로, 나를 가슴속에 품고 사셨다.


내가 쉰 살이 된 나이에도, 어머니가 직접 챙겨주지 않으면 밥이나 제대로 먹을까, 추우면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고생하지 않을까,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차 사고 라도 나는 건 아닐까?... 일곱 살 막둥이에 대한 걱정에서 하나도 변한 게 없으셨다. 나를 일곱 살의 귀염둥이로 생각하셔야 형의 존재를 더 가깝게 느끼셨던 건지, 아니면 혹시라도 막내아들도 큰 아들처럼 사고로 잃게 될까 봐, 늘 불안하셨던 건지, 어머니는 늘 내 걱정이셨다.


어머니는 위장 장애가 있던 나를 특히 걱정하셨는데, 이번에도 매실 액기스를 함께 보내주시면서, ‘액기스는 너무 진하니까. 물 2 진액 1로 섞어서 배가 아플 때 먹으면 된다’고 적으셨다. 물과 매실 액기스를 2:1로 썩어 마시라는 말씀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벌써 만 번도 넘게 들었을 거다. 하지만 어머니는 직접 담근 매실 액기스를 내게 주실 때마다, 항상 같은 말씀을 하셨다.


‘너무 진하게 마시면 속이 쓰리니까 꼭 그렇게 마셔야 한다 알겄제?’


그리고, 반찬을 작은 종지에 덜어 먹지 않고, 큰 반찬 통째로 먹다 보면, 음식이 빨리 상하게 되니, ‘접시에다 조금씩 먹을 만큼 반찬을 덜어 먹으면 된다’ 이 말도 빼먹지 않으셨다.


-‘나도 이제 잘해요 어머니’

-‘엄마 아빠가 문방구 하느라고, 니가 혼자 밥 챙겨 먹고 국민학교에 갈 때가,

아직도 엄마 가슴에 맺혀서 그랴’

-‘굶은 것도 아닌데, 뭘 그러세요 저도 이제 쉰 살이 넘었어요’

‘그려 우리 애기, 이젠 다 컸다’


어머니는 메모의 마지막에 ‘파는 뿌리만 있으면 살아나니까 심어 보아라. 물을 자주 주면 뿌리가 썩으니 일주일에 한 번만 주어라. 자라면 잎만 따서 먹으면 된다’고 적으셨다. 제주에 살면서 내가 뿌리 없는 파를 심었다가, ‘이상하게 파가 자라지 않는 거 같다’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더니, 어머니가 뿌리가 달린 쪽파의 밑동만 잘라 보내주면서 적은 말씀이다.


-‘대파는 뿌리 있는 걸 5일장에서 판다는데, 쪽파는 여기서 못 찾겠어요.’

-‘네가 심어 보려고, 그르냐? 쪽파 뿌리 있는 것도 큰 시장에 가면 있는데

네가 잘 몰라서 그려, 직접 심어 먹으면 그것도 괜찮혀야~’


어머니는 종이컵에 흙을 담고 파뿌리를 흙에 묻어 보내주셨다. 혹시라도 배송 중에 파뿌리가 썩아 쓸모없게 될까 봐 걱정하셨던 거다. 나는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어머니가 오늘 내게 보내주신 것처럼, 사랑 넘치는 글을 보내드린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어머니께 꼭 말씀드려야 할 거 같다.


어머니!

저는 이곳 제주에 혼자 있지만, 잘 먹으면서 지내고 있어요.

어머니는 잘 모르셨겠지만 사실 제가 요리왕이에요.

혹시라도 누나가, 내 요리 솜씨를 알면,

나한테 맛있는 거 만들어 주지 않을까 봐 못하는 척했던 거예요.

그러니 먹는 걱정은 이젠 안 하셔도 돼요. 저 끼니 거르지 않을게요.


그리고 속이 안 좋을 때, 어머니 말씀대로 콜라 마시지 않고,

매실 액기스도 잘 챙겨 마실게요.

매실이 어머니한테 잘 맞았으니까,

어머니 막내아들인 제게도 잘 맞는다는 거 잘 알고 있어요.


보내주신 밑반찬도

반찬 통째 먹지 않고, 꼭 접시에 덜어서 먹을게요. 어머니가 보시기엔

늘 손도 안 씻고 다니던 꼬맹이겠지만, 저, 보기보다 깔끔한 남자예요.

그리고 보내주신 파도 죽이지 않고 잘 키워낼게요.

어머니가 제주에 오시면, 그 파를 재첩국에 넣어 맛있게 한 그릇 해 드릴게요.

그러니 이제 제 걱정은 마시고 허리가 아파 거동을 못 하시는

아버지만 챙겨주세요.


형이 죽었던 8월이 다가오고 있어요.

형이 죽은 지 45년이 되었지만,

아버지는 형이 죽은 이후, 한해도 거르지 않고,

매해 8월이면, 매일 밤을 우셨잖아요.

아버지 가슴에 쌓인 한 해의 한을, 8월 한 달에 다 토해내셨잖아요.


한해 한해 부쩍 몸이 약해지시는데

올해도 그렇게 우시다가는 어떻게 되시기라도 할까 봐 너무 걱정돼요.

형이 죽은 이후, 늘 저에게 모든 사랑을 주셨던 아버지신데,

제가 제주에 있는 동안 아버지가 어떻게라도 되시면

저 역시 마음의 한을 평생 안고 살게 될 거 같아요.


그럼,

사랑하는 어머니!

또, 연락드릴게요

아버지와 함께 항상 건강하세요.

- 막내아들 올림 -

keyword
이전 0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