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런 곳에서 혼자 사느냐?

-신비의 섬 제주에, 가을이 오고 있어요-

by 이안

외삼촌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네 생각하며 매일 우신단다. 한번 찾아뵈면 좋겠다’


이제 아흔을 바라보는 아버지는 건강도 예전 같지 않고, 걱정도 많고, 마음이 많이 약해지셨다.

아버지는 오랜 세월 직업군인이었다. 내가 태어나던 해, 월남전에 참전했고, 육군 장교로 20년을 살다, 10.26이 있던 그해, 79년 말 퇴임하셨다.


평생 자존심과 우직함으로 살아왔던 아버지는 생계가 막연해지자,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우리 가족이 살던, 13평짜리 연탄을 때는 서민 아파트촌에서, 작은 문방구를 시작했다. 그때는 그런 세월이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면, 결혼을 하고 자식이 셋이나 낳았으면, 사람을 죽이고 죽는 전쟁에라도 참전해 돈을 벌어야 했다.


전쟁이 끝나고 육군 장교로 오랜 세월을 살았어도, 막둥이가 아직도 초등학생이면,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동네 꼬맹이들의 코 묻은 돈을 손에 쥐는 문방구도 성실히 해내야 했다. 그렇게 아흔 세월을 산 아버지가, 막내아들 걱정에 잠을 못 이루신다.


나의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때,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이었다. 집이 너무 가난해서, 13살에 무작정 집을 떠나, 전라남도 담양에 정착해서 돌산을 일궈 밭으로 만들고, 소작농을 함께 하며, 4남 2녀를 키워냈다. 학교 교육은 소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


필자의 대학시절 월북작가 ‘이기영’이 해금되고 읽은 장편 대하소설 [두만강]을 보면, 지주에 저항하던 농민 박 곰손이 돌산을 일구는 장면이 나오는데, 말이 쉽지, 돌산을 밭으로 만든다는 게, 얼마나 고되고 초인적인 인내가 필요한지에 대해서 자세한 묘사한 대목이 나온다.


하기야 농토가 될 땅이었으면, 수백 년을 그냥 돌산으로 묵혀뒀겠는가? 나의 할아버지는 열세 살에 담양 차정리에서, 수백 년을 감히 누구도 손대지 못하고, 돌산으로 버려진 땅을 밭으로 일궈냈다. 그리고 할머니와 결혼을 하고, 장남인 나의 아버지와 세분의 작은아버지, 고모 세 분을 키워냈다. 또 다른 고모 한 분은 사고로 젊은 나이게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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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제주도에서만 자생하는 나무 [담팔수]는, 서귀포시의 거의 모든 마을 입구에서 수호신처럼 마을을 지키고 있다. 담팔수의 여름꽃이 지고, 가을이왔지만 잎은 더 윤기를 더한다. >


작년에 회사에서 폭언을 했다고 징계를 받았다. 업무회의 중에 화를 참지 못하고 흥분해서, 타 부서 직원에게 ‘그렇게 일하고 월급을 받느냐’는 상당히 부적절한 말을 했고, 이 일로 징계를 받았다. 그 후 내가 방송국 PD를 계속할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음악 PD, 피터팬의 확고한 입장은, 폭언으로 회사에서 징계를 받은 사람은 방송국 PD의 자질이 한참 모자란 사람이었고,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하지만 아내와 의견이 달랐고, 1여 년 동안 고민하던 중 아내와 아이들과도 심하게 다투고 가족과도 헤어지게 되고 회사도 떠나게 되었다.


아버지는 내게 ‘회사를 다닐 수 없다는 네 입장도 이해할 수 있고, 가족과 헤어진 것도 이해할 수 있으니, 제발 멀리 제주에 혼자 살지 말고, 어머니 옆으로 오라’는 부탁이셨다. 하지만 난 서울엔 다시 가고 싶지 않았고, 이곳 외딴섬에서 남은 생을 살겠노라 말씀드렸다.


아흔 살의 노쇠한 아버지가, 잠을 못 이루고 막내아들 생각에 매일 우신다니, 나의 할아버지와 나의 아버지가 견뎌온 지난 삶에 대해 생각하며 나도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 할아버지는 이기영의 소설 [두만강]의 박 곰손처럼, 일제에 대항하는 테러리스트는 아니었지만, 돌산을 일궈 가족을 돌본 강인한 분이었다.


아버지는 막내아들이 아내의 뱃속에서 채 백일이 되기 전, 돈을 벌러 전쟁에 나갔고,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독재정권으로 이어지는 90년의 세월을 버텨왔다. 필자는 가족과 나 자신, 그리고 부모님을 모시며 어떤 삶을 살아왔던가? 내게도 그런 강인한 의지가 있었나? 고된 삶을 사셨던 할아버지와 아버지라면 지금 어떤 결정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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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가을엔 [흰색 나도 샤프란]이 들판을 가득 메우고 있다 >


어젯밤, 유난히 밝던 제주 밤하늘의 별빛 속에서, 북두칠성이 2시 방향에서 10시 방향으로 자리를 옮기는 동안의 여섯 시간을, 잠을 못 이루며 지켜봐야 했다. 아버지가 ‘왜 그런 곳에 혼자 사느냐’는 제주엔 지금, 동백나무의 열매가 지천에 떨어지고, 가을을 넘어 겨울의 하얀 눈 속에서도 붉은 꽃을 피우기 위해서, 나무는 힘을 비축하고 있다.


검푸른 현무암 돌담 아래에서는 흰색 샤프란이 꽃을 피우고, 해풍 속에서도 문주란은 푸른 잎과 하얀 꽃의 빛을 더해 가고 있다. 표선 해수욕장 주위를 길게 둘러치며 자라는 돈나무들은, 무더운 여름에도 말라버리지 않고 열매를 틔워냈다. 제주라는 신비의 섬에 가을이 온 것이다.


수 천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초하루와 보름을 반복하며 파도가 육지를 거칠게 몰아붙이고, 방파제 푸른 파도 위로 당장에라도 몸을 띄워버릴 것 같은 강한 바람은 , 먼 과거 속 고된 시간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도 같다.


이 신비로운 섬에서 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그러셨던 것처럼,

세월의 모진 바람을 버텨내고, 견뎌내는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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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진 해풍과 여름의 무더위를 이겨낸 바닷가의 돈나무들은 가을의 열매를 틔워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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