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위 >
유치환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고
희로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 년 비정의 함묵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삶은 허무 일지 모른다. 어차피 삶은 무에서 와서 무로 가기에 그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무(無) 즉 없음을 그저 없음으로 받아들일 때 허무를 극복하게 될 수 있다. 받아들임의 힘이 그렇게 크다. 이로 인해 삶의 자유를 누리고 인간의 유한성과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능동적 니힐리즘이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이제 반전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시인은 바위가 되고자 한다. 일체의 감정에 연연하지 않고, 그 어떤 외부 자극에도 아랑곳 않는 그저 존재하는 것으로 족한 그러한 바위가 되고자 한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비에 깎이면 깎이는 대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초연할 수 있는 그러한 바위가 되고자 한다.
시간이 갈수록 내면의 세계는 웅장해져 자신의 생명마저 망각할 정도가 되고,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건한 자의식은 이제 모든 것으로부터 초연할 수 있게 되었다.
바위가 되고자 하는 그 의지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으니, 이 세상은 그저 나의 의지의 세계일 뿐이다. 그 강한 내면의 힘은 이제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 결국 나의 삶을 긍정으로 이끌었다. 삶의 허무는 그렇게 극복되어 나의 존재는 우뚝 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