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평대생활>7일째
아침을 깨우는 건 말간 햇살이다. 휴대폰 알람이 조건반사처럼 유발하는 긴장에서 깨는 것이 아니라, 아침 해가 들이치는 한가로운 이완 속에서 일어난다. 이건 축복이다.
휴대폰의 음악 앱을 연결한다. 내겐 없던 일이다. 신속히 신문을 넘겨보지도, 휴대폰으로 주요 뉴스와 날씨를 확인하지도 않아도 된다. 출근 전 허둥대던 부산스러운 시간을 음악이 대체한 것이다. 좀 심심하다고 느끼지만, 그 부분도 음악이 메워주는 것 같다. 음악의 위로는 은근하면서도 확고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 많다.
‘그간 음악도 없이 좀 삭막하게 살았구나. 그나저나 규현(슈퍼주니어)이가 노래를 참 잘하는구나.’
산책을 나섰다. 오늘 하늘은 어떤 지, 바람은 얼마나 부는지, 바다의 색과 파도는 어떤지 한 번 휘~둘러보는 것이 아침 먹기 전의 일이다. 나름의 루틴인 것이다.
바다 위로 햇살이 내렸다. 반짝이며 일렁이는 물결이 시야를 붙들었다. 바라본다. 깊이. 이걸 ‘물멍’이라 하겠지. 파도에 무수한 비늘이 일어나고 거기에 빛이 부딪치며 터졌다. 늘 거기 있던 현상일 텐데 감탄하며 섰다. 가만히 들여다보다 보면 무엇이든 특별해지는 모양이다. 특별함은 고유한 모든 것들이 품고 있는 것이고 이를 눈치채게 되는 또 특별한 상황이 있는 모양이다.
제주에 와서 일주일째 되는 날이다. 걷는 것도 루틴이 되었다. 해안을 따라 위쪽으로 걸어보기로 했다. 김녕 방향이다. 걷는 게 목적인 휴가가 아니었지만, 딱히 목적이 없는 이유로 걷는 것이다. 맨몸으로 하루를 잘 보내기 위해 걷기만한 것을 찾지 못했다. 걷기 예찬론자는 아니지만 걷는 동안 채워지는 것이 있다는 걸 며칠째 경험하는 중이었다.
우연히 시선 깊숙이 들어와 말을 거는 이미지를 발견하는 순간에 재미를 느꼈다. 시선은 나의 축적된 경험과 마음이 스며있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지금 이 순간의 내게 ‘들어오는 것’은 반갑고 소중했다. 챙기고 싶은 것이다. 또 그런 것이 이미지로 표현이 될 수 있다면 하루에 사진 한 컷만 건져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생각만으로도 설레는 일이다. 이쯤이면 직업병인가.
걸어간다는 외양을 입고 있지만 실은 사색의 시간이다. 머릿속에 잠시 스치는 생각은 몇 걸음 걷는 동안에도 증발해버리곤 했다.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생각의 꼬리를 붙들고 짧게 메모를 했다. 궁금한 것이다. 왜 지금 그런 것이 스치는 것일까. 내 안의 무의식 같은 것일까. 그냥 흘려보내면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것들이었다. 짧은 문장이나 단어로 적을 수 있는 사유의 조각들을 걸으며 모았다. 밑도 끝도 없고, 두서도 맥락도 없이 의식의 수면위로 올라왔고 그것을 채집하는 것이 걷기의 참맛이었다.
걸어야 보이고, 걷는 만큼 보이고, 걸어야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걸음의 속도에 맞춤하게 보이는 것이다. 걷는 속도에 나의 경험들이 화학작용을 일으키고 그것이 뇌를 거쳐 눈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눈에 전달된 바로 그 순간, 눈빛은 ‘반짝’하고 빛났으리라. 들여다보게 하고, 느끼게 하고, 새로운 경험을 맛보게 하는 것이 마지막 과정이다. 이 경험은 또 다른 ‘반짝’의 순간을 만드는 재료가 될 것이다. 제주에서 차를 빌리지 않은 건 참 잘한 일이었다.
풍력발전기가 곳곳에 선 행원리를 지나다 바다를 향해 뻗은 공원을 만났다. 지도에는 ‘오저여’라고 표시된 곳이다. 입구에 작은 푸드 트럭 한 대가 서 있어서, 지나가는 이들이 꽤 자주 쉬어가는 곳이라 짐작했다.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파는 푸드 트럭 사장은 ‘육지사람’ 같아 보였다. 아이스크림을 하나 주문했다.
‘제주가 너무 좋아 무작정 왔어요. 밤에는 글을 써요. 낮 시간에 뭐라도 해야지 싶어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푸드 트럭을 해보기로 했어요. 이제 6개월 됐습니다.’
아이스크림을 기다리는 동안 사장님의 인상착의와 나이대를 관찰하며 내가 추정해 구성한 사장님의 스토리 요약이었다. 그냥 조금 궁금했으나 물어볼 오지랖도 없고, 급기야 어처구니없는 상상을 하고 만 것이다. 살아오면서 이런 무리한 추정들로 얼마나 많은 이미지들을 고착시켰을까.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공원 정자에 앉아 멀리 바다 위에 설치된 풍력발전기를 바라보며 아이스크림을 빨았다. 정자 한쪽 끝에 앉아계시던 할머니 한 분이 날 힐끗 쳐다보더니 말을 걸어왔다. “큰아가 요 앞에 광어 양어장을 크게 한다 아입니까.” 아흔에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어르신이었다. 큰아들로 시작해 성공한 자식들 하나하나의 자랑을 이어갔다. 고용한 외국인노동자들이 속을 썩여서 못 살겠다며 불평을 했다. 초면인 내가 들어야 할 얘긴가 싶으면서도 “아~ 네~” “그렇습니까”하고 적당한 추임새를 넣었다. 할머니의 비슷비슷한 얘기가 세 번쯤 반복이 될 때야 인사를 하고 일어섰다. 공원을 걸어 나가다 깨달았다. 트럭에서 “아이스크림 주세요”를 제외하면 할머니와 나눈 대화가 이날 첫 대면 대화였던 것이다. 오후 5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집 가까운 골목으로 접어들 때 어제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단출하고 단조로운 하루를 보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골목길 전깃줄 위에 앉아 유난스러운 소리로 구애를 하는 이름 모를 새들과 기울고 있는 마지막 햇살이 들이치는 돌담, 그 아래서 졸고 있는 고양이들, 어제보다 색이 짙고 풍성해진 길가의 수국들이 충분히 달랐던 날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래, 한 번도 같은 적이 없었던 바다와 파도와 바람과 하늘이었지. /ya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