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평대생활>9일째
낮은 구름과 안개로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흐릿했다. 본격적으로 비가 올 모양이었다. 아침 바닷가엔 인적이 드물었다. 날씨가 꾸물꾸물하고 시간이 어정쩡해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합당한 이유인지는 모르겠다.
길가 해녀작업장에 해녀어멍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주의보’만 없으면 물질을 한다는데 무슨 일인가 싶었다. 파도는 높지 않았고, 바람은 어제와 다를 바 없었다. 물때가 아니어서 인가. 아니면 ‘금어일’이라도 있는 건가. 뭍에서 온 자가 바다와 해녀의 일을 짐작하는 것은 그저 공허할 뿐이다.
바다로 뻗어 있는 방파제로 걸어 들어갔다. 주인이 메모해 둔 집 사용 설명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해안가 빨간 등대 앞서 서 있으면 바다 한가운데 있는 기분이 들어요.”
파도는 잔잔했다. 등대의 바다를 향한 쪽 표면에 세차게 뿌려진 물 자국이 보였다. 키 높이쯤 되는 부분에 남겨진 파도의 흔적으로 보였다. 비바람은 내내 잠잠했는데 파도가 그렇게 딱 한 차례 수면보다 훨씬 높은 등대를 때렸을 수 있을까. 여러 차례였다면 등대 주변이 물기로 흥건했을 텐데…. 탐정이 된 심정으로 이래저래 추리해 봐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등대에 남겨진 파도의 흔적을 카메라에 담은 건 '불가사의'라는 선언이었던 셈이다. 방파제를 빠져나오며 ‘그런데 그게 그리 중요한가’하고 내게 물었다. 별게 다 궁금해지는구나. 심심한 건가. 감각이 열리는 건가.
“비 오면 뭐하지?”
비가 올 듯 말 듯했다. 나설까 말까 하다가 나섰다. 살까 말까 할 땐 안 사는 거, 할까 말까 할 땐 하는 게 대체로 옳다는 건 누가 맨 처음 얘기했을까. 이런 말이 행동을 결정하는 기준이 될 줄이야. 오름에 한 번 올라보자. 그제 아침에 등대에서 오름이 바라보였다. 마을 뒤쪽으로 볼록하게 솟은 오름이 선명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거리가 가늠되지 않았지만 꼭 마을을 감싸 안고 있는 것 같았다. 오름은 위엄과 신비를 뿜어냈었다.
오름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다랑쉬오름’이란다. 낮고 짙은 안개에 숨은 오름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안 보이는 것도 신비로움을 더하는 것 같다. 휴대폰 앱으로 도보 경로를 검색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길로 안내했다. 골목골목 돌담이 길을 잇고 있었다. 돌담으로 만들어진 미로를 걷는 기분이었다. 안개가 걷히면 저만치 오름이 있을 거라 가늠했다. 앱 속 경로의 대략적인 선을 머릿속에 넣(었다고 믿)고 휴대폰을 껐다. 폰에 의지해 고개를 묻고 걸으면 무슨 소용인가. 길을 잃고 말았다. 방향감각이 싹 사라져 버렸다. 걷다 보면 길도 만나고 안개도 걷히고 오름도 보이겠지. 인생의 은유와도 같은 말들을 새기면서 초긍정 마인드로 걸었건만.
결국 걸었던 길을 한참 되돌아오고 말았다. 맑은 날에 다시 올까. 유혹이 살짝 고개를 들 때 뭔가 잘 짜인 극본처럼 오토바이를 탄 어르신이 지나갔다. 다랑쉬오름으로 가는 길을 물었고, 어르신은 오토바이를 세우고 서서 가장 간단하게 갈 수 있는 길을 참 쉽게 설명해 주었다. 안 갈 수 없게 만들었다. 미로의 마을길은 포기했지만, 다랑쉬로 가는 길은 포기하지 않았다.
마을을 빠져나가자 2차선 도로를 만났다. 곧장 가면 오름이었다. 비자림으로 가던 도로와 달리 차가 거의 없었다. 5km 정도를 걷는 동안 지나간 차량은 서너 대 정도가 다였다. 평온한 찻길을 보행로처럼 걸어도 될 정도였다. 길 가 곳곳에는 메밀밭이 펼쳐졌다. 상투적인 표현 ‘하얀 소금을 뿌려놓은 듯’ 그렇게 꽃이 피었다. 검은 돌담과 대비가 또렷했다.
뿌연 안개에 갇혔던 오름이 살짝 윤곽을 드러냈다. 딱 고만큼만 반기는 것 같았다. 마구 쉽게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안개를 거느리고 있는 것처럼 오름은 다가갈수록 신비로웠다. 두려움도 조금 일었다. 다랑쉬는 스스로 감추며 그런 느낌들을 극대화하고 있었다. 아주 가까이 갔을 때야 비로소 오름은 모습을 드러내 보여줬다. 오름 정상으로 향했다. 이 신비감을 올라타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상에 서니 이번엔 바로 아래 오름 주변 말고는 뿌예서 잘 보이지 않았다. 포구 방파제 등대에서 보던 이쪽에서 평대 쪽의 바다를 보고 싶었지만,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또렷이 보이지 않는 풍광은 상상을 하게 하고 그림을 그려보게 한다. 그런 맛이 또 있긴 하다. 긍정의 힘이다. 쨍하게 보이면 시각이 여타 감각을 억누르지 않겠는가. 동원되는 감각의 총합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바람을 찍어볼까. 오름에 정상에서 만난 여린 풀들이 바람에 누웠다 일어났다. 제주에서 매일 바람을 맞았다. 항상 있는 바람은 물성을 지닌 것처럼 느껴졌다. 바람이 흔드는 것에는 바람이 들어있다. 드러눕고 일어나는 풀이 곧 바람이다. 쪼그려 앉아서 셔터를 느리게 조정하고, 풀의 흔들림이자 바람의 형체를 담아보려 애썼다.
‘바람을 찍는다’는 문장이 머릿속에 지나갈 때 반사적으로 김영갑 사진가가 떠올랐다. 제주의 자연을 죽기 살기로 카메라에 담았던 사진가다. 그가 대상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는 태도와 일생의 작업 앞에서, 카메라로 밥벌이를 하는 나는 한 없이 작아지고 만다. 김영갑 선생의 생전 작업들이 전시된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코로나 이전에 찾았었다. 그의 작품을 들여다볼 때 사진에서 바람이 이는 것 같았다. 바람소리가 났고, 바람이 뺨에 와닿는 환각을 경험하기도 했다.
다랑쉬에서 돌아오는 길. 걷다 뒤돌아보면 그때마다 오름은 조금씩 또렷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안개가 걷혀가고 햇살이 쏟아졌다. 아침에 확인한 일기예보는 비 올 확률이 가장 높게 표시된 시간이었다. 바다 쪽에서도 두꺼운 구름이 밀려났고, 파란 하늘이 점점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ya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