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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들의 직장생활

연민이 가득해진다

by 오와나


얼마 전 친한 선배의 청첩장 모임에 갔다.

주말 저녁의 약속이었으나, 그때 매우 바빴던 시기였기에 원래대로라면 주말 출근을 했어야만 했다.

청첩장 모임에 가뿐하게 참석하고 싶었던 나는 금요일 야근을 선택했고 그날 밤 11시경에 집에 갔었다.




오래간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들은 여전했다.

결혼이라는 인생의 중차대한 일을 앞두고 있어도, 이미 결혼을 하고 애가 있는 '부모'여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금방 22살의 시절로 돌아간다.

대학생 때 그들은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먹고 놀았다. 밤새 술을 먹고 술냄새 잔뜩 풍기는 퉁퉁 부은 얼굴로 9시 수업을 잘도 참여하곤 했다. 대학교 정문 앞 벤치에서 술 취해 잠들기도 하고, 동아리 방 한편에서 추위에 떨며 잠들어도 그건 그저 무용담처럼, 전설처럼 내려오는 구전설화였을 뿐, 뉴스에나 나올법한 그런 사건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두들 그렇게 살아도 멀쩡하게 직업을 구하고 취업을 했다.


추억은 방울방울,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이야기 끝에 나누게 된 이야기는 '사실 나는 오늘 오전에 일하다 왔다', '나는 요즘 회사에서 일이 힘들어 이직을 고민한다', '아내가 난임휴가를 냈는데 복귀를 하려니 마음고생이 심하다', '최근에 몸이 안 좋아 장기간 병가를 냈는데 복귀를 하니 다시 몸이 안 좋아지는 느낌이다' 등과 같이 서글픈 대화의 연속이었다.

나는 나만 전날 야근하고 이 모임에 온 줄 알았는데.

다들 자기 몫의 일을 감당하느라 바쁘고 치열하게 살고 있었다.


대학생 때 그렇게 치열하게 놀고 청춘을 태우던 그 기세들은 이제, 밥벌이를 치열하게 하느라 뒤도 돌아보지 못한 채 경주마처럼 앞을 향해 달려가는 기세만이 남아 있었다.


졸업 후 멋진 어른이 되고싶다는 꿈은 어디까지 왔는지.




우리는 참 꿈도 많았다.

감정은 풍부했고, 작은 일에도 기쁨과 슬픔은 휘몰아쳤다.

연극 한 편으로 인생을 논하고, 사회면을 장식한 뉴스를 보며 참된 어른이 되고자 했다.

돈 없고 지질한 대학생이었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단단하게 시대의 역군으로 자리 잡고 싶어 했다.

그 당차고 푸르렀던 청춘들은 어느새 청년이라고 말하기 머쓱한 세대가 되었고, 고깃집 한편에서 청첩장을 손에 쥐고 현실의 버거움을 말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열심히 살고 있는 내 모습을 스스로 격려하며, 다독이며 10년의 직장생활을 버텨왔다.

물론 어떤 시간은 버티는 시간이었고, 어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마냥 버티면서 힘들게 보내온 10년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조금은 감성적이고 싶어진다. 끝맺음은 '파이팅을 다지며!'가 아니라 서글픔을 느끼고, 한껏 서글퍼하고, 씁쓸해하며 마무리하고 싶다.


내 옆에서 오늘도 씩씩거리며 일을 하고 있는 동료 직원들을 보며 사실 그들의 청춘도 나와 같았으리라 생각한다. 꿈도 많고, 푸르렀고, 감정에 소용돌이에서 허우적거렸으리라. 인생을 산다는 것이 뭐가 이리 고난의 연속인지, 사실 우리 모두는 다른 모습으로 버티고 있는 중일 것이다.


조금은 서로에게 더 친절해져도 될 것이다. 더 따뜻해져도 될 것이다.

연민이 샘솟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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