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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가장 큰 모험을 앞둔 사람

꽤나 떨고 있는 사람의 글

by 오와나


4월 24일의 글을 마지막으로 강제 브런치 휴식기를 가졌다.

그것은 바로 나의 인생의 가장 큰 모험이자, 큰 선물이기도 한 임신이라는 장벽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글을 기다렸던 분께는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입덧이 심하여 가만히 앉아 도저히 글을 쓸 수 없었다는 핑계를 덧붙여봅니다...)


10년을 일하면서 여러 명의 동료직원들의 출산을 겪었다.

입사 초반 함께 일했던 직원들 대부분은 고작 3개월의 출산 휴가 이후 아직 덜 풀린 몸을 이끌고 복직을 했다. 그리고 1년여의 시간을 채 버티지 못하고 일보단 육아를 선택하며 퇴사의 수순을 밟았다.


안타까운 일들이 많았다.

함께 일할 땐 꽤 유능했던 동료들은 아이와 씨름하며 자신의 경력을 포기하고, 아이가 어느 정도 커서 보육기관에 맡기고 안정될 때쯤, 나의 경력을 이어서 써줄 곳을 찾지 못하며 붕 떠버린 신세가 되었다.




저출산 정책이 공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일반 사기업의 출산휴가, 육아휴직에 대한 정부의 압박이 커지고, 총대를 메고서 1년씩 육아휴직을 써내는 직원들이 많아지자, 우리 회사의 분위기 역시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육아휴직을 쓴다면 돌아올 너의 자리는 없다는 말을 빈번하게 해대던 상사는 사라지고, 육아휴직을 얼마나 쓰겠냐는 말을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상사가 남았다.


그렇지만 여전히 임신을 회사에 알리고 나의 출산계획과 육아휴직에 대해 논의하는 일은 꽤 어려웠다.

임신을 알게 되자마자 바로 들었던 생각은 '아 팀장님한테 어떻게 말하지'였다.

결혼한 지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고 딩크라고 선언한 적 또한 없었기 때문에 내가 '임신 예정자'라는 것은 팀장님 또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공백으로 인해 남은 팀원들에게 가중될 업무와 다시 고민해야 하는 업무분장 등의 부담이 나로 인해 기인했기에, 나에게도 피할 수 없는 무거움으로 다가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1년의 육아휴직을 제안했다. 그리곤 어떻게든 빨리 복귀를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돌아왔다.

물론 그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회사는 대직자를 채용해주려 하지 않았고 남은 인원을 쥐어짜서 팀을 굴려야 했기에 그런 말을 해야만 하는 팀장의 위치를 이해했다.


나 때문에 일이 늘어 다른 직원이 나를 원망한다면, 그것 또한 내가 짊어져야 할 몫이다. 나 역시 그랬기 때문이다. '저 사람이 임신하는 바람에 내가 일이 늘었구나' 하고 생각했던 적이 많았다.

그래도 작은 바람이 있다면 이런 일들이 자연스러워지면서 흔한 일이 되고, 복귀 후 원래보다 더 단단해진 몸과 마음으로 일을 할 수 있다면, 경력을 잠시 쉬어가는 것이지 단절되는 것이 결코 아님을 많은 여성 직장인들이 증명했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 아기를 낳으려면 수개월이 남았고 내가 마주할 육아의 난이도 또한 예측불가하지만, 기를 쓰고 복직을 해서 일하는 여성이 되고 싶다.

10년 동안 이런저런 힘든 일도 많았고 그래서 더더욱 파이어족을 꿈꾸며 회사 밖의 경제적 자유를 상상하기도 했지만, 적어도 애 낳고 육아휴직 후 연기처럼 사라지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다.


woman-6516839_1280.jpg 일하는 나 자신, 화이팅이다.


17주 차 애송이 임산부는 일과 육아 둘 다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을 한껏 부풀리며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신생아를 육아하며 이 글을 보는 사람이 있다면 '어디 한 번 해봐라, 그게 쉬울 것 같니?'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애송이는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싶다.


아가야, 엄마에게 힘을 줘! 우리 같이 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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