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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몰라요, 퇴사를 안 해봐서요.

퇴사 이후의 삶

by 오와나


한 직장에서 10년을 보내고 있는 나는 '입사'는 해봤어도 '퇴사'는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사실 퇴사자들에게 제일 궁금한 것이 바로 퇴사 후의 삶이 어떠한가 에 대한 것이다.

주위 퇴사자들의 삶을 여러 케이스로 분석해 보았다.



1. 너무 힘든 나머지 급작스러운 퇴사 이후 경력도 별 볼일 없고 크게 잘하는 분야도 없는 경우


일과 사람에 지쳐 한 순간에 모든 걸 다 놔버리며 급작스럽게 퇴사를 결정하는 경우가 있다. 일단 쉬고 싶은 마음이 크니까 내린 결정일테지만 사실 준비 없는 퇴사는 망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이 회사만 벗어나면 살 것 같다 느낄지라도 이 회사로 인해 내가 삶을 영위할 수 있었음을 잊는 것이다.

그래서 당장은 몇 개월 모아둔 돈으로 버티다가 다시금 취업시장을 기웃거리는 것은 필연적인 수순. 그러나 경력이 변변찮고 하던 일이 그저 그렇다면 이직도 쉽지 않다. 더군다나 애매한 직급, 애매한 나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니 단순노동의 세계로 빠지거나 자영업을 만만히 보고 카페, 치킨집 등을 도전하다 쓴맛을 보게 된다.


2. 너무 힘든 나머지 급작스러운 퇴사를 하지만 밥벌이로 쓸만한 기술이 있는 경우


이 경우는 훨씬 낫다.

급작스럽게 퇴사를 할지언정, 자기가 잘하는 밥벌이 기술이 하나쯤은 있어서 어디고 재취업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실제로 나의 동료 한 명은 심한 스트레스로 퇴사를 선언했으나, 그가 잘하는 그만의 비장의 무기가 있었기 때문에 현재는 아예 다른 직군으로 이직해서 새로운 삶을 매우 잘 살고 있다. 훨씬 더 적성에도 맞는다고 하니, 그에게 갑작스러운 퇴사는 신의 한 수였다. (이래서 어른들이 기술이 최고라고 했던가.)

그 동료가 퇴사 후 더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 친구처럼 되지 못할 거라면 퇴사를 해서는 안된다는 마음이 들었었다.


3. 단단한 준비, 마음먹고 퇴사 후 파이어족!


모든 직장인이 꿈꾸는 삶 아닐까. 이름만 들어도 심장 뛰는 마법의 단어, 경제적 자유.

우리가 회사 다니면서 일을 하는 게 자아실현의 이유도 당연 있겠지만, 10년쯤 일을 하다 보면 자아실현 한 10프로, 목구멍이 포도청이 한 80프로 될 거다. (나머지 10프로는... 이런저런 이해관계? ㅎㅎ)

그래서 동료들이 점심 먹고 그렇게들 로또를 사던가.

그러나 파이어족도 기대수명에 따라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수준의 돈, 그리고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 커버할 수 있는 여유자금을 철저하게 계산하고 마음이 넉넉하게 느껴질 때 해야 하는 쉽지 않은 길이다.

최근 읽었던 한 파이어족 관련 책을 보니, 일을 안 해서 고정적인 근로수입은 없는 반면,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평소에 하지 않던 각종 취미, 여가로 돈을 쓰게 되어 직장인 시절보다 소비가 더 늘었다고 한다.

회사를 다니고 싶지 않아 선택한 파이어족일 테지만, 최소한의 것들만 하면서 살기 위해 파이어족을 택하는 건 아닐 테니, 충분한 여유자금은 매우 필수다! 그래서 그만큼 어렵다는 점은... 당연한 이야기다.




퇴사를 결심하게 되는 계기는 다양하다.

일이 너무 힘들어서, 같이 일하는 사람이 힘들어서, 월급이 맘에 안 들어서, 다른 회사를 가고 싶어서 등등.

벼랑 끝에 매달려 있는 사람한테 '너 퇴사준비 제대로 된 거 맞아? 그렇게 막무가내로 퇴사했다간 앞길 캄캄해.'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함께 일할 땐 유능했던 동료가 밖에 나가 이런저런 이유로 직장을 잡지 못하고 전전하는 모습을 보게 됐을 때 충격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jeju-5020414_1280.jpg 회사 밖은 춥고 무섭다는 사실.


나는 3번으로 퇴사하고 싶다.

죽기 전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만큼의 돈을 만들고, 거기서 나오는 부수적인 금융소득으로 예외적인 상황에 대응할 수 있으며, 부업 하나 정도 소소하게 하며 자아실현도 너끈히 해내는 삶. 도피처로 퇴사를 선택하고 싶진 않다, 정말로.

그래서 퇴사의 마음이 꿈틀댈 때마다 나는 지금 도피를 하고 싶은 건 아닌지, 가슴에 손을 얹고 가만히 나를 들여다본다. 보통 10에 10번은 도피다.^^


캡처.JPG 그래서 일한다, 해!


퇴사 이후의 삶이 꽃길일리 없다, 절대로.

그렇지만 또 여기서 마냥 숨 막히며 살고 싶지도 않다. 스트레스는 가중되고 미래는 캄캄하게 느껴지는데, 내가 나아가야 하는 길이 어딘지는 여전히 알지 못하겠다.

현실과 이상 앞에, 직장인과 파이어족 앞에 오늘도 괴리감을 느끼며 꿈을 찾아본다.

청소년기에 해야 할 방황을 왜 지금 나는 이 나이에 하고 있는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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