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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스 Oct 12. 2020

정대건 'GV빌런 고태경'

재기발랄함에서 오는 쓸쓸함

 요즘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혼자 살다 보니 자연스레 책이나 동영상을 작년 이맘때에 비해 두 배 이상 보게 된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한편으로 쓸쓸하기도 하다. 요즘 꽂힌 유튜브 영상은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진행하는 영화해설이다. 이동진은 나긋하면서 귀에 또박또박 들리는 목소리로 영화를 더 깊게, 더 재밌게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영화 스토리의 재미만 추구했던 나에게 영화해설은 영화를 다른 관점에서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영화 ‘다크나이트’에서 조커라는 인물을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한다던지, 영화의 시작과 끝에 똑같이 개가 짖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은 베트맨의 트라우마를 강조하기 위해서라는 등의 영화를 더 깊이, 더 넓게 이해한다는 느낌을 준다. 유튜브로만 이런 내용들을 듣는 게 아쉽고, 코로나가 잠잠해지는 언젠가 이동진이 진행하는 GV현장에서 이런 내용을 생생하게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 ‘GV 빌런 고태경’ 속의 GV는 내가 생각했던 즐겁고 재밌는 분위기는 아니다. GV에서 빌런의 존재로 한순간 분위기가 싸늘해지고 때로는 누군가 상처받는 분위기가 된다. 소설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나 이렇게 영화 많이 알아’유형, ‘세상의 중심은 나’유형, ‘파파라치’유형 등의 여러 유형의 빌런들이 있지만 그중 고태경은 가장 까다로운 유형에 속한다. 영화의 이음새나 촬영기법 등을 조목조목 따지면서 연출자의 대답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웬만한 초보 영화감독보다 지식이 풍부하고, 보는 눈도 날카로워 함부로 그의 의견에 반박할 수도 없다. 그의 의견에 동의하기에는 또 자존심이 상하니 소설 속 영화감독 혜나처럼 얼굴이 굳어지고 붉어질 수밖에 없다.


 혜나는 그런 고태경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로 결심한다. 처음의 목적은 영화관 빌런의 일상생활을 관찰함으로써 프레임 밖에 있던 빌런을 안으로 끌어들여 자신의 모습을 미러링 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빌런들에게 얼굴이 화끈해지도록 일침을 가하고 싶은 생각으로 시작하지만 원래 다른 사람을 자세하게 관찰하는 순간 그 사람을 이해하게 법. 그녀는 고태경의 일상에 스며들면서 영화제작에 대한 그의 한결같은 꿈과 의지를 응원하게 된다. 


 고태경의 주변 인물들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고태경의 후배 민대표처럼 고태경에게 정신차리라고 충고하는 사람들도 있고, 혜나처럼 고태경을 응원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태경이란 인물이다. 그는 주변인들이 비난을 하던 응원을 하던 신경 쓰지 않고 본인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기 때문에,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 옳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중심을 잡고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어려운지는 숱한 경험으로 이미 체득하였다. 다른 사람들의 눈 밖에 날 때의 따가운 시선이 두렵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삶을 살고 싶어 정작 내가 원하는 것은 순위에서 밀린다. 이런 분위기 속에 살고 있는 나에게 소설에서 고태경이란 인물을 꽤 현실적으로 그려냈음에도 그는 나에게 단지 소설 속 인물일 수밖에 없다.


 청소년기에는 학교 성적이 낮을 때 힘들었고, 성인이 된 후에는 취직을 못 하는 게 두려웠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따른 필요한 수단으로 성적이나 취직이 존재해야 되지만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삶을 꽤나 오래 살았다. 지금의 삶이 안정적이고 업무도 잘 맞는 편이라 나쁘지 않지만 마음 한편에는 내가 원하는 삶을 찾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어떤 방식으로 실현시킬지는 답을 찾지 못해서 ‘나도 무언가 재능이 있었다면 그 길로 나갔을 텐데’라는 공허한 생각만 가끔씩 하게 된다.


그렇다고 서른이 넘은 나이에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을 환경 탓, 남 탓만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찾으려고 노력한다. 영화나 유튜브 보는 것을 좋아하고, 가끔씩 이렇게 책 후기를 쓰는 것을 좋아한다. 글쓰는 재주가 탁월한 건 아니지만 글을 쓰며 내 머릿속 생각들을 끄집어내는 것을 좋아한다. 하나씩 내가 좋아하는 것을 축적하다 보면 나 스스로에게 확신이 서는 날이 오지 않을까.


 남들의 시선에서 실패했다고도 말할 수 있는 고태경에게 패배의식이나 자격지심 없는 점은 부럽고 닮고 싶지만 내가 그렇게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남들 눈을 의식하고 스스로의 안정감을 위해 지금처럼 계속 살겠지만 그 안에서 조금씩 나를 찾아가는 걸음을 한 걸음씩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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