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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제이 Oct 22. 2021

내일 죽는다면

오늘 나는 무엇을 할까?

싱가포르는 차 값이 어마 무시하게 비싸다. 차 자체 비용보다도 차에 달아야 하는 소위 번호판을 사는 비용이 엄청나서 우리나라 국민대표 차 아반떼 한 대가 이곳에서는 우릿돈으로 일억 원은 족히 내야 탈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싱가포르는 내가 태어나서 최고급 차들을 가장 많이 본 곳이기도 하다. 


값이 비싸니깐 2억이든 3억이든 그 차이는, 우리가 한국에서 2천만 원이든 1억이든의 차이보다 절댓값은 더 크지만, 그 비율은 3억이 50% 더 비싼 것뿐인 데 반해, 한국 차 1억은 5배나 더 비싸다. 5배가 더 비싸니깐 진짜 더 비싼 거 같다. 이러한 직관적인 비율에 대한 우리의 감성적인 리액션, 그리고 그에 기반한 의사 결정은 굉장히 비합리적이지만, 우리 인생은 그렇게 상대적인 것투성이다. 차값이 비싼 싱가포르에 최고급 차들이 더 많이 굴러다니는 것처럼. 


기준이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 방금까지 누구한테 뺏길까 손에 꼭 움켜쥐도록 좋았던 게, 개나 줘라 싶게 짚어 던질 만큼 싫어지는 것도 한순간이고,  나만큼 불운한 사람이 없겠다 싶다가도 내 밑으로 더 한 없이 떨어지는 누군가의 사연을 듣다 보면 또 그저 살아지는 것처럼. 그래서 니 인생에서 뭣이 젤 중헌데?라고 누군가 물으면 내 머릿속은 백지가 되고 선뜻 대답이 힘들었다.


14년 커리어 끝에 어쩌다 전업맘이 됐던 나는 잘하고 싶은데 잘 되지가 않는 육아라는 새로운 직무가 힘들고 적응이 되지 않는 그런 날들로 전업맘 경력 5개월에 접어들었고, 하루에도 몇 번씩 행복과 불행을 오가는 그런 상대적인 자기 평가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카톡.

'지영아 시간 날 때 혜진이(가명)한테 카톡 좀 보내놓을래? 정신이 들 때는 문자 확인도 한다고 하니깐 다른 말 없이 그냥 너 사는 거 짧게 문자로 보내 놓으렴. 지난번에 니 안부를 묻더라.'


대학 동아리 선배 언니의 문자다. 혜진이 선배는 나랑 좀 각별한 사이였다. 서로 다른 시기지만 프랑스라는 나라로 유학을 떠나 오고, 또 싱글녀로 일하며 자유롭게 살다가 늦스구리하게 외국 남자랑 연애해서 서로 한 달 차이로 결혼식을 올린 처지가 비슷했던 탓일 게다. 일 년 전에 갑자기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치료를 받았는데, 다행히 예후가 좋아서 일상생활로 복귀한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재발이 된 모양이다. 


나는 그렇게 경력 오 개월 차의 전업맘 일상 중 선배 생각났다는 짧은 문자를 남겼다. 그리고 한 일주일쯤 지났던 거 같다. 첫 돌을 앞두고 고집도 세지고 시도 때도 없이 떼쓰기를 실행하는 아이 덕에 어디 멀리 가는 바깥출입도 겁이 나기 시작했던 나는 주구장창 폭염의 싱가포르 날씨에도 개의치 않고 집 주변을 걷고 걸었던 시기였다. 정오의 퇴약볓에 삼십 분 넘게 목적지 없이 걸은 끝에 유모차에 달린 건전지 나간 미니 선풍기 밑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씹다 만 비스킷을 입에 한 가득 물은 채로 기절하듯 잠들어 버린 아이. 그 옆에 서서 다시 확인한  내 문자 옆에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숫자 1.  길거리에 주저앉아 그렇게 나는 울었다.  가슴속 깊이 커다란 바위가 내려앉은 듯 숨이 턱 막히고 바가지로 부어대듯 울음이 쏟아져 나왔다.


결국 선배는 내 문자를 끝까지 읽지 못했다. 다시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고 그렇게 아무런 인사말 없이 안녕을 고했다. 


만약 내일 당장 죽는 다면 오늘 난 무엇을 할까? 


그 순간 모든 게 선명해졌다. 나는 내일 죽는 다면 오늘도 폭염 속에 아이를 들쳐 매고 걷고 걸어 낮잠을 재우고 싶다. 징그럽게 해도 끝이 나지 않는 지겨운 기저귀를 갈고 또 갈고, 젖병을 씻고 또 씻고, 잠투성에 떼쓰기에 아이랑 실랑이를 하는 그 일상적인 날을 보내고 싶다. 한 치의 고민도 필요 없는 대답이었다..


이런 깨달음도 하루하루의 노동 집약적이며 무기력을 동반하는 독박 육아를 즐겁게 하도록 도와주진 않았다. 결국 인간이란 동물은 죽음에 상대적인 삶이 아닌, 어제에 상대 적인 오늘을 살게 되더이다.


요즘은 코비드로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고 생이별을 한 많은 가족과 친구들을 본다. 나도 역시 마찬가지로 싱가포르에서 코비드가 창궐했던 작년 락다운 상황에 낳은 둘째가 17개월이 되도록 아무도 만나지 못하는 그런 생이별을 경험했다. 시간은 실제로 무한하고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을, 만나도 싶은 사람을 내일, 다음 달, 내년에 하자고 보자고 미룰 수밖에 없는 코비드 시대를 살고 있다. 너도 나도 코비드에 걸릴까 조마조마하며 생존에 집중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하루 더 살겠다는 생존 본능은 내일 죽으면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의 생존의 의미를 무색케 한다.


아이들이 잠이 들고 난 고요한 밤. 

엄마로 살기 전의 나에 상대적인, 회사를 관두기 전의 나에 상대적인, 링크드인에 누군가의 승진 소식 알람에 상대적인, 완벽 육아하면서 사업도 잘 해내는 듯한 인스타 속 이름도 보르는 그녀에 상대적인 나를 또 평가하며 불행을 음미하다가 애써 기억해낸 본질적인 질문.


만약 내일 죽는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할까?


발꿈치를 들어 까치발 딛고 아이들 방문을 열어. 잠이 든 아이들의 반쯤 벌린 입 옆으로 흐르는 침을 닦아주고 양볼에 사랑한다 사랑한다 쪽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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