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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티제 Oct 24. 2021

엄마, 학교에 안 오면 안 돼요?

겨우 찾은 기억 중 하나

 이제부터는 엄마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인터뷰 내용이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엄마와 아빠가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아빠는 어린 시절에 대해 기억하는 것들이 굉장히 많았다. 반면 엄마는 그때 기억이 거의 없다고 했다. 그래서 꽤 애를 먹었다. 질문을 할 때도 엄마의 어린 시절을 짐작하면서 기억에 대한 힌트를 주기 위해 노력했다.


 엄마는 오 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위에 넷은 모두 오빠다. 큰 오빠랑 20살이 넘게 차이 나서 오빠보다 오히려 조카들이랑 친구처럼 지내며 자랐단다.      



나: 외할아버지가 엄한 타입이었잖아. 그렇지?

엄마: 엄청 엄하지. 어디 놀러 가지도 못하게 하고, 옷 단속도 많이 하셨어. 대학생이 되어서도 짧은 치마 입고 나가는 거 들키면 밖에 못 나갈 정도였으니까. 또 얼마나 깔끔하신지. 집 안에 먼지가 있는 꼴을 못 보시는 분이야. 

 

나: 그럼 엄마도 외할아버지한테 많이 혼났어?

엄마: 아버지가 엄하긴 했지만 나를 많이 혼내시진 않았어. 우리가 지금은 오 남매지만, 사실 중간에 태어났다가 죽은 남자 형제들이 몇 명 있다고 들었어. 그러다가 내가 막내딸로 태어난 거야. 그러니 얼마나 귀해. 아버지가 나 초등학교 다닐 때도 업고 다녔어. 신발에 흙이 묻은 적이 없어. 그래서 그때 나를 참 귀하게 생각한다고 느꼈어.     


나: 진짜? 할아버지가 딸바보였네?

엄마: 매일은 아니지만 자주 그렇게 업어서 데려다줬어. 그렇게 업어주면서 많은 얘기를 한 것도 아니고 별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야. 아버지는 그냥 나를 안전하게 학교에 데려다주고 싶었던 것 같아.

 ‘학교’하니까 이것도 생각난다. 내가 큰 오빠랑 20살 넘게 차이가 나니까 엄마는 나이가 너무 많은 거야. 내 친구 엄마들이랑 20살씩은 차이가 나더라고. 근데 나 챙긴다고 어머니 합창단에도 들어가서 활동하고 노력을 정말 많이 해 줬어.     


나: 엄마가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 할머니가 거의 환갑이었을 텐데, 힘드셨겠다.

엄마: 친구 중에 주영이라는 애가 있었어. 주영이 엄마가 교육에 엄청 적극적인 분이었거든. 어머니회 활동도 엄청 열심히 했어. 그리고 주영이도 엄청 예쁘게 입고 학교에 왔는데, 그런 걸 엄마가 다 따라 했어. 주영이네 엄마가 뜨개질해서 예쁜 옷을 만들면, 우리 엄마도 그거 다 짜서 나한테 입혔어.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      


나: 그러니까.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 

엄마: 근데 엄마랑 아버지 둘 다 너무 나이 들어 보이니까 애들이 많이 놀렸어. 4학년 때 임원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도 다른 반 남자애들이 지독하게 놀렸어. 정말 상처를 받았지. 엄마가 보이면 애들이 ‘야, 네 할머니 왔다.’고 했거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엄마가 학교 오는 게 싫더라고. 내가 너무 속상해서 엄마한테 그랬어.

 ‘엄마, 학교에 안 오면 안 돼요?’      


나: 할머니가 듣고 섭섭했겠다. 

엄마: 저 말을 몇 번이나 했는데, 그때마다 별다른 말을 하진 않으셨어. 지금 생각해보면 저 말 때문에 상처를 받았을 것 같아.


나: 그래도 얘기하다 보니 어릴 때 얘기들이 기억나나 봐.

엄마: 아, 어릴 때부터 노래를 잘 불렀거든. 그래서 동네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사람들이 1원, 5원씩 용돈을 주고 그랬어. 그렇게 교회에 가게 된 거야. 교회에 가면 노래를 많이 부를 수 있다고 해서. 

 교회를 다니면 수련회를 가잖아. 거기에 가서 놀고 싶은데 아버지가 절대 허락 안 하실 걸  아니까 얘기도 못 꺼냈지. 그래서 친구들은 나를 절대 수련회에 안 가는 애라고 생각했지.       


나: 그럼 수련회는 한 번도 못 가 봤어?

엄마: 고등학생 때까지는 아버지한테 말도 못 꺼내다가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 그래서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아버지한테 엄청나게 졸랐어. 그리고 교회에 있는 다른 어른들도 집에 와서 아버지를 설득했지. 절대 위험하지 않다고 계속 찾아와서 그때 한 번 갔고.

 대학교 들어가서 MT를 가고 싶었는데 못 가게 하는 거야. 그래서 수업을 빼먹고 4시간 동안 아버지를 설득했어. 그렇게 대학교 MT에 가서 요즘 말로 ‘꽐라’가 될 때까지 술을 마셨던 것 같아. 나는 너희 아빠가 부러운 게, 형제들끼리도 나이 차이가 거의 안 나잖아. 그리고 시골집에도 많이 가고 그래서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더라고.                           

  

나: 엄마, 그래도 아직까지 연락하는 초등학교 동창들 많잖아. 내가 아는 이모(엄마 친구)들도 많고. 그 이모들이 아빠 어릴 적 친구이기도 한 거 아니야?

엄마: 그렇지. 네 아빠도 같은 학교를 나왔으니까.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남녀 구분을 많이 했어. 남녀가 같은 반일 때도 책상에 선 그어 놓고 넘어오면 안 된다고 했던 것 같아. 


나: 아빠랑은 언제부터 알고 지냈어?

엄마: 초등학교 다닐 때도 알긴 알았는데, 별 기억은 없어. 언제 처음 봤는지도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아. 나중에 얘기 들어보니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3학년 때 전학 왔다고 하더라고. 

 이런 자세한 건 몰랐고, 그냥 키 작은 남자애였던 것만 기억나. 아빠가 지금은 180cm 정도 되지만 중학생 때까지는 키가 무척 작았어. 그래서 그때까지는 ‘쟤는 키가 작구나.’ 하는 정도만 생각했지. 그냥 키 작은 남자애. 그러다가 친해진 건 고등학교 때부터야.    

 



 엄마가 아빠의 첫 모습을 ‘그냥 키 작은 남자애’라고 기억하고 있는 건 나로선 좀 웃긴 일이다. 엄마의 키가 150cm를 약간 넘을 정도로 아담하기 때문이다. 저렇게 작은 엄마가 현재 180cm인 아빠를 키 작은 남자애로 기억하고 있다는 것. 조금 아이러니하다.


 아빠는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160cm 정도로 반에서 거의 제일 작은 학생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2학년이 되면서 키가 갑자기 크기 시작하더니 곧 180cm가 되었다. 지금은 꽤 훤칠한 아저씨다. 엄마 키는 150cm, 아빠 키는 180cm. 엄마와 아빠를 보면서 어릴 적부터 나와 동생의 관심사는 이거였다. 


‘도대체 우리 키는 누구를 닮게 될까? 엄마일까? 아빠일까?’


 나와 동생은 모두 아빠의 키를 닮기를 간절히 염원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일찍이 키가 크기 시작했고 지금은 170cm 정도다. 여자인 것을 고려하면 꽤 늘씬한 신장을 자랑한다. 한편 남동생은 남들이 자라고 있을 때도 잘 자라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엄마는 동생에게 키 크는 한약을 먹이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이런 말을 했다.


 “아빠도 갑자기 컸으니까 정훈이도 고등학생 되면 무조건 180cm 넘어. 만약에 정훈이가 아빠보다 키 안 크지? 아빠가 차 한 대 사 준다. 알겠어?”


 아빠는 정말로 정훈이가 나중에라도 키가 클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 말에 차 한 대를 걸어둔 것을 보면 말이다. 정훈이도 그 말을 믿고 기다렸다. 하지만 정훈이의 키는 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성인이 되는 순간에도 정훈이의 키는 170cm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희망을 잃은 정훈이는 키가 크길 바라기보다 어떤 차를 살지 고민했다. 가끔은, 외제차를 사도 되는지 묻기도 했다. 


 이제 엄마, 나, 정훈이 모두 정훈이의 키가 더 이상 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아빠 한 사람만 서른이 다 된 정훈이 키가 언젠가 더 클 거라고 생각한다. 진짜로 그렇게 믿는 건지 아니면 차를 사 줄 수 없어서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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