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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재 Dec 17. 2021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는 마음

반납독촉


  도서 대출 기간 14일이 지난 도서는 연체 도서이다. 연체 도서가 있으면 대출할 수 없고 학교도서관업무지원시스템(DLS) 이용자 이름 아래에는 ‘대출불가’ 네 글자가 빨간색으로 나타난다. 연체 도서는 수시로 조회하고 연체한 학생들에게 반납 독촉장을 보낸다.


  1학년 1학기 초에 책 1권을 대출한 학생이 있었다. 점심시간이면 도서관에 만화책을 읽으러 오던 학생인데, 대출한 책은 자꾸만 깜빡했다. 내 얼굴만 보면 “아! 책!”, “내일은 꼭 가지고 올게요.” 하며 2년을 보냈다. 3학년 1학기가 끝날 즈음 대출했던 날짜를 알려 달란다. 대출일을 듣고 뭔가 계산하더니 “몇 달만 있으면 대출한 지 천일이네요. 천일 선물로 드릴게요. 크리스마스 근처이기도 해요.” 한다.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내 표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헤벌쭉 웃으며 한마디 더 한다. “이야, 멋지다. 천일이라니. 천일 꼭 채워야지.”

  다행인지 이 학생이 대출한 책은 인기도서가 아니었고, 수업용 도서도 아니었다. 학생 말을 믿고 천일이 되는 날을 기다렸다. 학생은 10일 전부터 예고했다. 이제 10일 남았어요. 5일 남았어요. 3일 남았어요. 내일 드릴게요.

  “샘, 크리스마스 겸 천일 선물이요.” 천일에 의미를 둔 학생은 상당히 뿌듯한 얼굴로 책을 반납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연말이면 이 학생이 떠오른다. 지금도 어디선가 책 반납일에 의미를 두는 단순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사소한 재미를 주며 지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1, 2학년이 연체하면 반납받을 시간 여유가 있지만 3학년은 다르다. 졸업하면 연체 도서를 받을 방법이 없다. 몇 번 반납 독촉장을 보내도 감감무소식인 학생들이 있다. 마음 같아서는 날마다 전화하고 집 앞까지 찾아가서 받아오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노릇이고, 다른 업무를 해야 하니 연체 학생들만 쫓아다니지도 못한다.

  이럴 때는 담임 선생님에게 부탁한다. 학부모에게 바로 연락해서 책을 반납하게 하는 선생님이 있고, 학생에게 연체 도서를 반납해야 졸업 앨범을 받을 수 있다고 독촉하는 선생님도 있다. 각 선생님 방식으로 반납 독촉을 한다. 그런데도 반납하지 않는 학생들이 있다. 이때는 끈질기게 연체 학생을 찾아간다. 연체를 오래 한 학생들이 대출한 책은 수업용 책이 대부분이다. 수업에 필요해서 어쩔 수 없이 도서관을 한두 번 왔을 뿐이다. 그만큼 이 학생들 얼굴이 다 낯설다. 학생들도 낯선 눈빛으로 나를 본다. 서로 어색한 상태에서 책을 달라고 독촉하는 처지가 한편으로 난감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반납할 때까지 찾아가고 기다린다. 끈덕지게 매달리는 나날이다.


  이 학생들이 책을 반납하지 않는 이유는 있다. 책이 어디 있는지를 모른다. 대출한 기억조차 없다. 이런 책들은 학급문고 회수할 때 그 사이에 있거나 학년말 대청소를 할 때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누군가 발견하여 도서관으로 가져다준다. 대출한 기억조차 없다던 연체 학생들이 반납됐는지도 모르게 책은 반납된다. 기다렸던 책을 돌려받으면 선물을 받은 듯이 기쁘다. 책들이 도서관에 마침내 안착한다.

회수한 학급문고


  학년말에는 개인이 대출한 도서뿐만 아니라 학급용 도서, 장기 대출한 수업 활용 도서 등을 회수한다. 도서관 밖에서 학교 여기저기를 다닌 책들이 여행을 마치고 도서관으로 돌아온다. 여행지에서 기념 선물을 사듯 도서관 밖을 여행한 책들은 그 자체가 선물이 되어 도서관으로 돌아온다.

  12월 중순, 오늘도 연체 도서 목록을 골똘히 보며 크리스마스 선물을 손꼽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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